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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dit] 저는 몸이 두 개에요. 혹시 저랑 같으신 분?
게시물ID : humorbest_11278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기분♡전환
추천 : 40
조회수 : 10957회
댓글수 : 1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10/03 11:56:51
원본글 작성시간 : 2015/10/03 02:39:39
*퍼가지마쎄용~
*오늘도 장편입니다^^ 
 
 
 
 

 
저는 두 개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그래요, 나도 알아요. 이게 설명하기가 좀 어렵네요.
내 말을 믿는 사람도 없고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헛소리 그만하고 검사를 한 번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누군가 도움을 줬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몸이 두 개라 가족도, 집도, 인생도 각각 따로 있어요.
양쪽 둘 다 저는 16살이지만 안드레아라는 이름을 가진 나는 엄마, 아빠 그리고 여동생이랑 살고 있어요.
검은 웨이브 머리에 녹색의 큰 눈을 갖고 있고요. 스킵이라는 강아지도 키워요.
밀리라는 이름을 가진 나는 짧은 금발에 키도 작고 교외에 있는 작은 연립주택에서 엄마랑 둘이 살아요.
저는 두 가지 인생을 사는 두 사람이에요.
어떻게 몸 두 개를 유지하며 사는지, 각 장소에 어떻게 동시에 존재하는지 궁금하실텐데.
사실 그게 진짜 골칫거리랍니다.
 
양쪽 몸 둘 다 심각한 질병을 가지고 있고 저만 원인을 알아요.
어릴 때 이미 발견된 상태였고요.
남이 보기에는 예고 없이 갑자기 망상형 정신 분열증을 일으키는 환자가 되요.
누가 내 이름을 불러도 대답도 안하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아요.
가끔은 숨을 쉬는지조차 분간이 안 될 정도에요.
온가족에게 상당히 충격이었지요.
안드레아의 부모님은 병원으로 급히 저를 데려가서 울며불며 소리를 지르고...
돈이 없는데도 할 수 있는 검사란 검사는 죄다 해요.
검사로는 아무런 원인이 나오지 않았고요.
증세가 해로워보이지는 않지만 주의해서 관찰해야 한다고 의사들이 말했어요.
 
밀리의 엄마는 약간 침착한 편이였어요.
과하게 감정적이었다면 대기업 CEO가 되지 못했겠죠.
나를 전문의에게 데려가고 주치의도 붙여줬어요.
검사도 더 많이 하고 돈도 더 많이 쓰며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라고 요구했어요.
하지만 언제나 늘 변함없이 의사들의 대답은 같았어요.
 
자 그러면, 왜 이런 증상이 발생할까요?
의사들은 모르지만 저는 그 답을 알고 있답니다.
실은 제가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할 수가 없어서요.
밀리나 안드레아가 될 순 있어도 둘 다 한 번에는 못해요.
내가 안드레아가 되면 밀리는 분열증을 일으켜요.
밀리로 다시 바꾸면 안드레아는 숨만 쉬는 인형이나 다름없게 되고요.
 
어렸을 때는 정말 너무 어려웠어요.
양 가족 모두 너무 사랑하는데 어느 쪽에 머무를지 선택 할 수 있었겠어요?
완전히 한쪽만 택해서 쭉 살까도 고민해봤는데 어느 쪽이든 하나를 잃는 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결국 번갈아가며 한 달 씩 살기로 나름 절충을 했지요.
기분이 내키면 일주일이나 하루 간격으로 바꿀 때도 가끔 있었고요.
저한테는 이 방법 뿐 이었어요.
 
당연히 단점도 있어요.
예를 들면 운전 면허증을 딸 수가 없어요.
밀리 쪽 엄마는 꼬박꼬박 저한테 약을 먹여서 어떻게든 병을 고치려고 하고 제가 아무리 빌어도 절대 멈추는 법이 없어요.
번갈아가며 사느라 학교를 빠졌어도 수업에 뒤쳐지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양쪽 부모님 모두 이상하다고 생각하세요.
안드레아네 부모님은 저를 약간 천재라고 믿고 계시는 듯 하구요.
밀레네 엄마는 제가 열심히 해서 그렇다고 여기세요.
 
그런데 반 년 전부터 일이 꼬여버렸어요.
밀리가 레오를 만났거든요.
레오는 완전 제 타입이에요.
약간 범생인데 갈색 눈과 너무 잘 어울리는 따뜻한 미소를 지녔어요.
키도 크고 호리호리한 편인데 제가 몸집이 작아서 레오의 팔을 두르면 딱 맞아요.
똑똑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잘 맞춰줄 줄도 알아요.
치기어린 소리로 들리겠지만 몇 달 만에 정말 진짜로 완전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그래서 계획을 바꿨죠.
 
썩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해야 했어요.
안드레아의 가족을 평소보다 오래 떠나 있었어요.
분명 힘든 일이었고 동생도 그리워할 줄 알고 있었지만 레오가 저를 너무 행복하게 해줘서 오랫동안 떨어져서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밀리로 무려 6개월이나 살았어요.
그 시간 동안 삶은 너무나 완벽했고 하루가 다르게 점점 인생이 온전한 내 것으로 바뀌는 기분이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분열증을 겪지 않고 산 적이 없었으니 엄마도 너무 기뻐하셨고요.
스트레스는 완전히 사라지고 레오와 저는 점점 가까워져 마침내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몰래 계획을 짜기 시작했어요.
삶이 안정적이고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안드레아를 완전히 놓아버릴까도 싶었어요.
저쪽 가족과의 작별은 힘들겠지만 분명 오래 떨어져 있을수록 더 쉬워질 거에요.
아마도 안드레아의 가족에게도 그 편이 낫다고 봐요. 아마도. 진짜 아마도.
마침내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었어요.
 
근데 6개월이 지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며칠이나 향수병에 시달렸거든요. 심각하진 않았지만.
거의 하루 종일 피곤하고 기침도 나고 간간히 열이 났어요.
엄마는 제가 공부를 너무 심하게 해서 그런 줄 알고 침대 밖으로 절대 못나오게 했어요.
책이나 티비를 보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죄책감이 들면서 가슴이 너무 아파왔어요.
안드레아와 저쪽 가족이 계속 생각났거든요.
나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나를 깨우려고 얼마나 노력할지 너무도 잘 아니까.
한숨을 쉬며 저쪽 편으로 넘어가기로 결심했어요.
어느 한쪽을 택하는 짓은 못하겠어요. 도저히.
아마 레오한테 얘기해주면 다 괜찮아지겠죠.
어쩌면 나의 두 가지 인생을 이해해 줄지도 몰라요.
제발 내 말을 믿어주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에요.
눈을 감고 안드레아로 넘어갔어요.
 
근데 눈을 뜨니까 여전히 밀리에요.
바뀌지가 않았다니 좀 이상했어요.
계속 시도를 하고 또 했는데도 안 바뀌었어요.
밀리에게 갇힌 상태에요.
살짝 힘만 주면 금방 됐었는데 마치 근육이 사라져버린 느낌이랄까.
이주일 동안 안드레아로 돌아가려고 노력해봤는데 허사였어요.
하루하루 몸이 약해져서 엄마가 지난주에 저를 입원 시켰어요.
솔직히 무서워요.
안드레아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을 줄도 몰랐고 내가 밀리로 살고자 했던 선택이 사형선고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어요.
 
어제 안드레아 이름을 검색해보니 뉴스 기사가 하나 뜨더군요.
그토록 딸이 깨어나기를 기도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어요.
담당의 소견이 있었는데 읽고 나니 가슴 속 깊숙히 한기가 전해졌어요.
 
"어떻게든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현재 상태로는 안드레아가 다시 깨어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여겨집니다.
안드레아의 가족은 자녀분의 앞날을 위해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울어도 돌아갈 수 없어요.
이미 안드레아의 몸은 내 것이 아니고 밀리마저도 빠르게 잃어가고 있어요.
왜 자꾸 병세가 악화되는지, 왜 자꾸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 진행되는 중이고 무얼 해야 할지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최악의 경우 안드레아의 생명 유지 장치가 제거되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출처 I have two bodies - does anyone else?
https://redd.it/3mmnvh by sleepyhollow_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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