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을 감았을 때는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눈을 떴을때의 광경은 아직도 기억한다.
검은 테의 안경을 쓴 한 트롤 의사가 내 앞에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옆에 서큐버스 복장을 한 간호사 또한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놀란듯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니 당신 용개형."
어떻게 된거지? 대체 그는 나의 정체를 어떻게 아는 것이지. 내가 누워있는 동안 나에게 무엇인가를 한 것이 분명해. 난 그에게 적대감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더러운 트롤새끼에게는 한마디 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 C foot 트롤새끼!"
조금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 어디인지 알 것도 같았다. 그래, 이 곳은 언더시티가 분명하다. 하지만 왜 내가 누워 있는지, 그리고 왜 그 말을 들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용개형, 저와 성 관계를 해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지. 언제고 되짚어봐도 상상할 수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같잖은 트롤새끼와 신성한 언데드는 절대 성 관계를 할 수 없다. 그건 내 할머니도 그랬고, 엄마도 그랬다. 이모는 안그랬지만.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뭐라고? 조금전에 뭐라 그랬나."
나는 그 말을 딱 잘라서 거절해 주었다. 이런 것은 확실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곤란해지니까.
"이 병신새끼가 뒤질라고!"
그러자 그 트롤새끼는 나를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한마디 하였다.
"아니 전 용개형 기분을 풀어드리려고."
내가 그런 같잖은 변명에 넘어갈리가 없다. 나는 분노가 극에 달해 한마디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살해, 유서에! 내 이름... 쓰고!"
그러자 그 트롤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날 응시하더니, 상처입은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 아니 용개형 너무 심하세요."
절대, 심하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그와 나는 태생이 다르다. 난 지금까지 포세이큰의 긍지를 갖고 살아온 언데드다. 비록 그의 그 송아지같은 눈망울에 조금은 마음이 기울어지긴 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나를 포기할 순 없다.
"꺼져 씨방새야!"
그는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안돼, 가지 마. 지금 나를 혼자 두지 말란 말야. 마음이 조금 기울어졌다고는 했지만, 실상 내 맘속에 그는 꽤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그가 나간 후에 나는 중얼거리듯이 가만히 내뱉었다.
"취...취소."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나는 My plug in baby~
갑자기 병실 문을 열어젖히고 의사양반 트롤과 함께 한 무더기의 병신냄새를 풍기는 트롤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마치 나를 구경거리라도 된 듯이 훑어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극도로 소외감과 불안감을 느낀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 병신새끼들! 모두가 한패들이야!"
일말의 기대마저 그는 저버렸다. 그래도 그는 나를 그만의 것으로 봐주길 바랬는데, 결국은 다른 트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역시 더러운 트롤새끼들...
"이 사람이 용개형 맞소 의사양반?"
제발, 내가 생각한 게 틀렸어야 해. 나는 토렌트가 아니야. 공유하지 말란 말야. 난 너만의 것이고 싶었어. 너만이 나를 가져준다면, 옆에서 서큐버스가 뻘짓을 해도 난 너만을 바라볼 수 있었어. 제발. 그 말만은 하지 말아줘.
"...예."
"이 C foot새끼가!"
아, 아니다. 틀렸다. 이미 늦었다. 이 트롤은 더 이상 내 마음속의 그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다른 길을 이미 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한가하게 생각을 하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그 떼거지로 온 트롤 중 한 새끼가 내 옷고름을 풀어헤치며 외쳤다.
"용개형은..., 내꺼야!"
이미 그 앞에서 잘 보이려는 모습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어쩔 수 없다. 전장을 누비던 나의 전 모습을 감출 이유는 없다. 나의 청년막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난 그래도. 너만의 것이니까.
"부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