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좁은 촌동네에서 자랐다.(거의 대부분이 초,중,고 셋 다 동창)
중학교때까진 친구가 많았다. 성격도 활발했다.
(반에서 목소리 크고 일진-왕따 두루 친한 애.
수업시간에 웃긴 농담 잘하고 공부도 그럭저럭하고 피구여왕st여자애. 그게 저였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 터졌다. '낙태'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를 뒤덮었다.
동네에서 질 나쁘기로 유명한 오빠랑 사귄게 잘못이었다.
그리고 그 오빠는 인기도 많고 어장관리도 잘해서 소위말하는 일진 애들한테 찍혔다.
(엄마아빠 귀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아셨을거라 생각한다.)
애들이 다 나를 걸레 보듯이 봤다. 심심하면 그 일진들한테 불려가서 욕먹었다.
일진들에 대한 나쁜얘기가 퍼지면 무조건 내가 퍼트린거였다.
나중엔 해명도 안하고 미안하단 말도 안하고 그냥 내가 안그랬다는 말만했다.
알고보니까 애초에 소문 퍼뜨린애가 '이미' 미움 받고 있던 내 핑계를 댔던거였다.
그래도 자존심은 세서 고개 빳빳이 들고 다녔다.
그 오빠랑은 진작에 헤어졌고, 그 오빠는 일본으로 날랐다.
지긋지긋해서 동네 벗어나려고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로 대학교를 왔다.
엄청나게 작은 촌동네라 같은 학교 출신이 단 한명도 없었다.
너무 행복했다. 졸업하고 난 다음에야 낙태소문은 사그라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애들이 내 이름을 대면 아 그 걸레? 낙태한 애?라고 되묻는다는걸 안다.
나를 믿어주는 친구는 단 세명 뿐이었다.
근데 한명은 고3때 전학가서 연락이 끊겼고.
다른 한명은 유학가면서 끊겼다. 알고보니 일진들이랑 다시 친하게 지내더라.
(그 일진들 마음에 안들어서 나랑 논 케이스.)
그리고 어제 남은 한명이 자살했다.
낙태하고..자살했다.
장례식장에 동창들이 많이 왔는데, 다 나를 대놓고 피했다.
그냥 그러려니 하려다가 화가났다.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낙태소문은 정말 주홍글씨처럼 퍼져서, 나조차 가끔 내가 진짜 낙태한 사람인가,싶다.
대학와서 출신학교 절대 안밝혔다. 혹시나 겹치는 사람 있을까봐.
나 낙태한애라고 말 할까봐.
고등학교때 느낀건데. 사람들은 스캔들은 잘 믿으면서 해명은 잘 안믿는다.
그래서 나도 해명을 잘 안한다. 포기 상태랄까.
근데도 무섭다. 누군가가 대학교에 내가 낙태했다고 소문 낼까봐.
나는 중고등학교 친구가 한명도 없다.
이 동네에 친구가 한명도 없는데 학교는 졸업하고 이 좁은 촌동네로 다시 돌아왔다.
일부러 동네 후미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
길가다가 가끔 동창들 마주치면 먼저 피한다.
좁은 동네일수록 인간관계가 거미줄 마냥 더욱 얽혀있다.
내 위로 두살, 밑으로 세살까지 내가 낙태했다는 소문을 들었거나,믿고있거나 둘 중 하나다.
이 동네를 빨리 떠나고싶다.
나중에 결혼식 생각하면 막막하기도 하다.
왜냐면 올 사람이 없고 청첩장 보낼 사람이 없거든.
지금 장례식장에서 술 좀 마시고 와서 뭐라고 쓰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친구가 없다.
이 동네가 무섭다. 죽은 친구가 원망스럽다. 왜 하필 낙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