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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인간의 '촉'이라는 게 궁금한데
게시물ID : bestofbest_1129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부
추천 : 522
조회수 : 50311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3/06/04 01:54:05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6/03 19:50:25

나는 신을 믿지는 않지만 인간의 초능력(?)에 대한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믿음이 크게 가는 게

내가 어릴 적, 어렴풋이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나?

유괴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 인간의 감각은

특별한 경우에는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믿게 되었어.

당시 할매가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내가 할매 밑에서 자란 놈이라

애미 없는 설움 없게 키우신다고 정말 애지중지 하셨었지.

그런 연유로 상당히 버릇도 없었고 땡깡도 자주 부렸던 턱에

별명이 소방차였어. 지 맘에 들지 않으면 한 시간도 넘게 앵앵 거리다고.

 

각설하고, 그 날도 어김없이 갖고싶은 장난감이 생각난거야.

정확히는 하교 후 장난감집 앞을 지나다 보었던 

회색 장난감 총이었고 요일은 확실히 일요일이었고 비는 척척할 정도로 부슬부슬 내렸어.

아 그리고 밤이었고-

당연히 할매는 이 와중에 게다가 일요일 밤에 장난감집 문 다 닫았을텐데

어딜가서 총을 살 거냐고 화를 내셨지만 나는 결국 만원짜리 한 장을 받아냈지.

(내가 아직도 고치지 못한 버릇 중 하나가,

갖고싶은 게 생기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내 손에 쥐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스무리)

요일과 그 장난감 물품과 날씨등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정신적 충격이 컸던 사건이라 거짓말 같겠지만 생생히 기억나.

 

여하튼 그렇게해서 돈 만원을 들고 신이 난 나는

속초 동명동 시장통을 잰걸음으로 걸으며 그 장난감집으로 가는 와중

오른편에서 어떤 젊은 남자가 나를 뒤로 힐끗 보는 느낌이 들었어.

거기까지는 그냥 아무렇지않게 생각했지만 몇 걸음 더 가지않아서

나를 한 번 더 힐끗 보는거야. 그때 느꼈지. "뭔가 이상하다.

저 시선은 이제 '힐끗'이 아니라 '확인'의 차원에 가까운 시선이다."라고-

지금의 나이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래.

 

그때부터 무서워지기 시작한 나는 장난감이고 뭐고 그 자리에서

바로 뒤로 돌았어. 그래도 어린 나이에 약아빠져서는 뛰지는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잰걸음 보다는 조금 빠르게 걸었던 것 같아.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같은 방향으로 걷고있던 그 남자 역시 방향을 바꿔서 나랑 비슷한 속도로 걸어오더군.

직감했지. "이것은 유괴다 ㅅㅂ"

그 젊은 놈 역시 티를 내지않고 나를 데려가려고 했는지 바로 뛰어와서 잡지는 않았어.

그렇게 한참을 모른 척하며 걷다가 할매의 식당에서 이십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을 때쯤

"이때다!!" 생각하며 냅다 뛰었지.

근데 뛰어야 벼룩이지. 젊은 놈과 초등학교 2-3학년 또래의 남자애가 달리기 하는거나 마찬가지인데.

당연히 붙잡혔고 질질 끌려가며 바로 울음크리 터지면서 별의 별 헛소리를 다했던 것 같아.

나는 엄마가 없고 할매랑 둘이 살고 있으며 할매는 아프다는 둥 어쩐 둥 살려주세요 블라블라..

젊은 놈은 아무런 대화도 없이 그냥 묵묵히 나를 질질 끌고갔어. 그게 더 무섭더라야.

(그 와중에 거리에서 말리는 사람 하나 없었냐 할 수도 있겠지만 80년대 당시의

속초 거리는 밤이 되면 거의 모든 상점가들이 영업을 끝냈어.

게다가 우리 할매 식당은 시장통이었는지라 행인 같은 건 거의 없었지. 

내 기억으로는 24시 상점(?) 뭐 그런 류의 영업도 없었던 거 같아.)

 

결국엔 별 희망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냥 나는 질질질질 끌려가고 있던 와중

갑자기 저어쪽에서 할매가 딱!

빠른 걸음으로 오시더니 자초지종 따위는 없으시고 젊은 놈 등짝을 짝짝 내리치시면서

당장 놓으라고 하시고는 그 놈의 손아귀에서 나를 떨쳐놓으셨지.

그랬더니 할매도 조금 이성을 찾으셨는지 그 놈에게 무슨 일이냐 물으셨는데

내 기억으로는, 자기가 문방구 가게를 운영하는데 요새 자꾸 물건들이 없어져서

이 꼬마가 의심스러워서 혼내려고 데리러 가려고 했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나.

 

 

나는 그 당시 멘붕은 당연지사고 어린 나이에 그게 말이 된다 안된다 따위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지만 할매는 말이 안된다는 걸 아시면서도

당신께서도 나름 무서우셨고 놀랬고 당장은 이 손주새끼를 다시 식당으로 데려가셔야 한다는 생각에

신고 할 정신도 이성도 없으셔서 그냥 그 놈을 보내셨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요즘 같은 시대였다면 그 놈이 우리 할매에게도 뭔 짓을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직도 가끔 악몽을 꿔.

 

어쨌든 그러고나서 식당으로 들어간 후 할매는 혼내시지도 않고

조용히 육계장(내가 가장 사랑하는 메뉴가 육계장임. 5년 내내 먹었음)을 주셨지만

벌벌 떨면서 한 수저도 못먹고 있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겨서 할매한테 여쭸음.

 

"할머니, 근데 나 끌려가는 거 어떻게 알고 달려왔어?"

"그르게야..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느낌이 싸-한게 희한타해서 올라왔더니

니 그래 끌려가고 있뜨라야..."

 

그 어린 나이인데도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어.

울 할매 식당은 요즘 시대의 '지하'라는 개념에 빗대어봐도 상당히 깊다(?)고 여길 수 있는 지하식당이었고

당시 그 시간 손님이 많았는지 적었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내가 울부짖는 소리가 닿을 수 있는 거리는 절대 아니였거든.

가끔 할매 뵈러 가서 그 날의 얘기를 숱하게 여쭤봐도, 어떠한 소리를 듣고 올라오신 건 절대 아니라고 하셔.

해서 나는 그게 인간에게는 종종 신기(?)에 가까운 어떤 촉이라는 것 정도는 분명히 있다고 믿게 되었지.

그렇다고 무당의 헛소리라든지 귀신의 존재 따위 같은 건 믿지않아.

신을 안믿는데 그걸 믿겠냐만은.

 

별로 와닿지도않는 개쓸데없는 얘기를 주구장창 늘어놓기는 했다만

나 말도 이런 경험 한 사람들이 혹시 또 있나해서 말야.

오유에서 헛소리만 찍찍 싸기만하고 이런 시덥지도않은 장황한 글 같은 건

전혀 올린 적 없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날 밤의 일이 자꾸 떠올라서.

할매 생신이 다가오는지라 유난히 보고싶기도 하고..

결론은 할매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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