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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각 재던 노인
게시물ID : cyphers_1291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리집열쇠
추천 : 5
조회수 : 39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1/24 21: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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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벌써 40여일 전이다. 내가 갓 배치 본 지 얼마 안 돼서 브론즈에 내려가 살 때다. 맞타워 하고 가는 길에, 원딜들 사거리가 크게 밀리기에 언덕에서 일단 한 놈을 물어야 했다. 언덕 근처 1자 골목에 앉아서 1분 립을 먹는 원딜이 있었다. 적팀 원딜을 한 놈 물어 가지고 가려고 백업 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립을 굉장히 느리게 먹는 것 같았다.

"좀 빨리 와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딜각이 그래 가지고 백업하겠소? 늦다거든 장갑 찍어 가 따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원딜이었다. 키배를 벌이지도 못하고 늦게나마 와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각을 재고 있었다. 처음에는 궁이나 주력기 각만 재는 것 같더니, 2번이 조금씩 까이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평타 각까지 잰다. 내가 보기에는 이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각을 재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와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2번 타워가 깨질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재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와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각 아닌 게 재촉한다고 각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적팀 딜각이 안 잡힌다는데 무얼 더 잰다는 말이오? 외고집이시구먼, 2번이 다 털려간다니까요."

원딜은 퉁명스럽게,

"장갑이나 찍으시우. 난 딜 안하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2번 타워는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재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불안정해진다니까. 딜각이란 제대로 재야지, 막 쏘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재던 것에 숫제 등을 돌리고 태연스럽게 센티넬을 먹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미니맵을 보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와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딜각이다.
 2번을 놓치고 다음 한타를 준비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해 가지고 한타를 이길 턱이 없다. 팀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철거반 라인마저 뒷전이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원딜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원딜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2단 박스 위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브론즈다워 보였다. 20도 못 찍은 레벨과 철거반에게도 빗맞추는 명중률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원딜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출처 픽션은 픽션일 뿐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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