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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게시물ID : readers_228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느하루
추천 : 2
조회수 : 2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1/25 15: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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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길게 늘어진 시간의 그림자를 따라서....

  해가 저물기 전 창가에 비친 나뭇가지의 그림자는 유난히 길다. 아마도 해가 지기 전 마지막 여운을 한껏 느끼기 위해 그림자는 자신의 몸을 길게길게 늘어뜨리는 것이리라. 소중한 것일수록 오래 간직하기를 원하듯이, 그림자는 그렇게 그 시간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음미의 시간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쳐다볼 새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자신의 그림자가 저물어가는 태양빛에 길게 드리워진 모습을 본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시간을 음미하며 하루를 마무리 짓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는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 다가올 시간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늘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한다. 언제나 빠르게 지나쳐버린 순간들에 대한 후회들로 ‘지금’이라는 시간을 살아간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답장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은 안다. 자신 앞에 놓인 시간의 소중함을 안다. 해질녘 노을의 감동을 알고,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도 그 시간을 함께 한다는 걸 안다. 
  편지의 고통. 우체부의 손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기 전까지의 인내와 고통을 알아야 한다. 모든 의미가 너무나 빠르게 퇴색되어 버리는 지금. 기다림의 의미는 더 절실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내의 고통을 피하려고만 한다. 기다림을 무의미한 일이라고 단정 짓는다. 사람들은 결말만을 원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빨리 마무리되길 원한다. 그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편지가 우체부의 손을 떠나 전해지는 과정 또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소소한 의미들이 우리에게 따스하게 전해질 때 편지에 마음이 담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순간적인 데이터의 교환만으로 우리의 마음이 충분히 그 안에 담길 수 있을까. 시간이 ‘돈’ 이라는 사람들의 차가운 마음조차 데이터에는 담길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죽은 문자가 아닌가. 어디든지 빨리 가기위해 차갑게 식어버린 죽은 문자들이 아닌가.
  우리는 여유를 되찾아야 한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빠르게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인간만이 빨라지기 위해 발버둥 친다. 마치 태어나서 죽기위해 사는 것처럼. 죽음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빨리 가기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가고 있다. 너무나 중요한 가치들을 버리면서 말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리고 걸어왔는가. 남들보다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아름다운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단 몇 시간 만에 도시를 넘나들고, 단 몇 분 만에 메일을 보내고, 단 몇 초 만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가야 할까.
  길게 늘어진 시간의 그림자를 따라서 걸어가자. 시간을 너무 앞서갈 필요는 없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전해질 수 있는 시간. 그 시간만큼만 천천히 세상을 걷고 또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가 버리고 온 가치들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출처 예전에 대학 과제로 썼던 글을
오랫만에 다시 봤습니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건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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