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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종상은 예상된 대로 ‘망했다.’ 제대로 망했다. 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9명이 전원 불참하고, 조연상, 신인상 등의 노미네이트된 배우들 역시 대다수 불참했다. 감독과 스텝 역시 마찬가지다. 딱히 성명을 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로 영화제가 진행되었다. 어떻게 진행은 된 대종상 영화제는 그야말로 코미디였다. 신인 감독상을 수상한 <거인>의 김태용 감독 대신 같이 후보에 오른 <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대리수상 했다. 참고로 둘은 일면식도 없다고 한다. 미술상과 의상상은 MC를 맡은 배우 신현준이 대리수상 했으며, 후보들이 불참한 인기상은 ‘택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논란의 봉사상은 후보가 불참했다는 이유로 택배수상조차 건너뛰었고, 남녀주조연상은 모두 대리수상으로 진행되었다. 이준익 감독의 이름을 이익준으로 잘못 표기하거나 공로상을 받은 윤일봉을 대신해 무대에 오른 사람에게 “윤일봉 선생님이 오셨네요.”라고 소개하는 등 소소한 실수들도 있었다. 그리고, <광해, 왕이 된 남자>의 15관왕에 이은 <국제시장> 10관왕으로 공정성 논란에 불이 붙었다. 이쯤 되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를 정도이다. 올해뿐만 아니라 시작부터 꾸준히 논란의 중심이었던 대종상 영화제,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시작부터 살펴보자.
-제52회 대종상 영화제 포스터
대종상 영화제는 1958년 문교부에서 주최한 ‘국산 영화상’이 근본이다. 지금의 ‘대종상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은 62년 시상식부터다. 신상옥 감독이 <연산군>으로 최우수 작품상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감독상을 수상한 1회부터 20일 진행된 52회까지 꽤 역사가 길다.
긴 역사만큼 논란의 역사도 길다. 시작은 70년대 10월 유신시대이다. 정부 주도로 상을 수상했고, ‘우수 반공 영화상’을 따로 개설하여 정부친화적인 반공영화들에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정부의 맘에 드는 영화에만 상을 주고 그런 영화들만 만들라는 취지의 영화상이었다.이후 90년대로 넘어가면 거의 매년 논란이 가득했다. 91년 미군에 성폭행당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은마는 오지 않는다>가 미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작품상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당시 영화지 로드쇼에서 대종상 관계자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윗사람 눈치 보느라’ 그랬다고 한다. 94년에는 대박 흥행을 이끌어낸 <투캅스>와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한 <화엄경>대신 흥행과 평 모두 ‘망작’에 가까운 <두 여자 이야기>가 수상했다. 이때부터 논란과 함께 대종상의 권위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96년도에는 가히 역대급 사건이 발생한다. 아마 세계 영화상 역사 속에서 이런 사건은 유일무이할 것이다. 바로 ‘애니깽 사건’이다. 일정한 기간 내에 개봉한 영화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대종상 영화제에서 아직 개봉도 하지 못한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사건이다. 사건의 조짐은 예선 심사부터 시작되었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예선에서 탈락하고, 박철수 감독이 자신의 작품 <301, 302>가 예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선 심사를 넣은 영화 <학생부군신위>를 수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 아직 개봉은커녕, 편집조차 끝나지 않은 <애니깽>이 본선 후보에 오른다. 그리고는 당시 경쟁작인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장선우 감독의 <꽃잎> 등을 제치고 3관왕에 오른 사건이다. <애니깽>의 감독 김호선은 논란과 항의에도 불구하고 당당하다는 듯이 수상소감을 말해 충격을 주었다. 충격의 시상식 이후, <애니깽>은 개봉하지만 200명이 채 안되는 관객수를 기록했고, 안기부의 후원으로 제작된 영화라는 사실이 밝혀져 “대종상은 어용 영화제이다.”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충격과 공포의 ‘애니깽 사건’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되었다. 2004년에는 출연작이 각각 19편과 6편이나 되는 공형진과 김래원이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2009년에는 시상식 1주 전에 개봉한 <하늘과 바다>의 장나라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논란이 되었고, 2011년에는 <써니>의 심은경이 불참통보를 하자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시켜버렸다가 논란이 되자 <로멘틱 헤븐>으로 여우조연상을 주는 헤프닝도 있었다. 2012년엔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가볍게 무시하고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에 무려 15개의 상을 주며 ‘광해 영화상’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시상식 후반부에는 상을 받으러 나와 사과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이 시상식 중간에 시상식장을 나가는 헤프닝도 있었다. 그리고 2015년, 최고의 병맛 영화제가 탄생한 것이다.
-영화제 불참을 선언한 9명의 주연상 후보 배우들
논란이 계속됨에도 대종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대종상을 주관하는 ‘한국 영화인 총 연합’이 원로 영화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의 정부친화적인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애니깽 사건’부터 <국제시장>10관왕 등의 황당한 사건들이 계속되는 이유이다. 대리수상과 유료투표 논란에 대한 조근우 본부장의 인터뷰가 정점을 찍었는데, “배우들의 불참은 국가적 손해이며, 이런 태도는 후진국적인 태도”라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서 공정성이 느껴지는가? 영화 평론가 듀나의 말처럼 ‘늙은 조폭의 논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영화 시상식이라는 것이 공정성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다. 대중과 평단의 평이 갈리기도 하고, 사람마다 취향과 선택이 다르기 때문이다.하지만 논란을 해쳐나가려는 노력과 개선을 하기 때
문에 권위와 공정성이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헐리우드의 아카데미 시상식 역시 매년 논란이 일지만, 심사위원이 6천명 가까이 되고 그 명단을 공개하는 등 투명한 운영방식이 있기에 그 권위가 80년이 넘도록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대종상 영화제는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몇 명이나 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운영 방식부터 공정성과는 거리가 먼 시상식인 셈이다.
-[극한직업-대종상 MC편]을 마친 신현준과 한고은
사실 ‘대종상 영화제’라는 이름에서부터 그 정체성이 의심된다. 상이면 상이고 영화제면 영화제지, OO상 영화제는 어디서 튀어나온 발상일까.대종상 영화제와 비슷한 형식의 아카데미는 아카데미 ‘시상식’이다. 애초에 ‘영화제’라는 이름이 붙은 행사의 목적은 감독과 배우들이 자신의 영화를 홍보하고, 제작사와 배급사들은 영화를 팔고 사고, 관객들은 영화를 즐기는 데에 있다. 칸 영화제든 부산 영화제든 시상식은 부가적인 행사일 뿐이다. 대종상 영화제와 가장 많이 비교되는 청룡영화상도 청룡영화‘상’이지 ‘청룡상 영화제’가 아니지 않은가. 대종상 영화제는 자신이 ‘대종 영화제’인지 ‘대종영화상’인지 그 정체성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2015년 제52회 대종상 영화제는 끝이 났다. 논란은 계속되고 있으나, 일단 시상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허나 여러 논란에 뒤이어 대종상 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이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고, 그마저도 행사 후 지급이라는 방식으로 바뀌어 2016년에도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니, 내년에 진행한다고 해도 올해보다 나아진다는 보장조차 없으니 이대로 사라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대종상이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시상식이라면, 없는 편이 났다. 한국의 그래미를 노리는 ‘한국대중음악상’을 보고 배웠으면 한다. 투명한 운영과 중견가수부터 아이돌, 방구석 인디 뮤지션까지 모두가 함께하는 현장을 대종상 관계자들이 보고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
출처 | http://blog.naver.com/dsp9596/220545979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