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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인지는 모름] 축구협회 대단하네요....홍명보감독도 대단하고....
게시물ID : wc2014_113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컬컬한그맛
추천 : 8
조회수 : 109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7/02 09:45:41
[출처] http://sports.news.nate.com/view/20140630n10395

'무자격자'를 '꼭두각시 감독'으로 앉힌 축구협회

김현희기자 칼럼

중·고등학교 감독 자격증으로 월드컵 나간 홍명보 코치 

2005년 8월 당시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이사는 2급 지도자 강습회에 참가했다. 원래는 초등학교 및 유소년 축구교실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는 3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2년을 경과한 사람이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수 있지만 아무런 지도자 자격증도 없던 홍명보 감독에게는 예외 조항이 있었다. 국내 프로경기에 100회 이상 출전한 경력이 있거나 A매치에 20회 이상 출전한 선수 출신은 3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도 바로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다른 여러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축구 행정가가 되겠다던 홍명보 협회 이사가 갑자기 지도자 자격증 수업을 받는다는 게 의아했지만 이런 자격증 하나 따놓는 걸로 의문을 가졌던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바로 한 달 뒤 협회의 꼼수가 드러났다. 

2005년 9월 협회는 “홍명보를 성인대표팀 코치로 선임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제 막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사람을 한국 축구 최고 레벨의 지도자로 선임하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아무런 자격증도 없었던 이가 불과 3주 만에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성인 대표팀 코치로 간다는 건 초고속 승진이었다. 회사로 치면 이제 막 인턴 과정을 끝낸 뒤 부장으로 승진하는 셈이다. 더군다나 2급 지도자 자격증은 대학 및 실업, 프로 및 각급 대표팀을 지도할 수도 없는 아주 초보적인 자격증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축구팀만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증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자격증 하나로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 코치에 부임한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제 막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초보 코치’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팀은커녕 중학교 팀도 맞아본 경험이 없다. 참고로 대한축구협회 규정은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1급 자격증이나 아시아축구연맹 A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자’만이 대표팀 지도자로 일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협회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웠다. “지휘권을 갖지 않는 보조 지도자 역할이기 때문에 홍명보 코치의 1급 자격증 취득 여부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는 건 물론이고 이제 막 지도자 수업 3주를 받은 게 전부인 이에게 전폭적인 힘을 실어줬다. 더군다나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팀을 2년 이상 지도했거나 2급 지도자 자격증 시험 성적이 상위 5% 이내인 사람 중에 자격증 취득 1년이 넘은 이에게만 1급 지도자 자격증 취득 조건을 주기 때문에 홍명보 감독은 아무리 성적이 상위 5% 안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2급 지도자 자격증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 스스로 “실제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100%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라고 밝혔지만 그는 중·고등학교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불과 한 달 만에 우리나라 모든 축구 지도자들의 꿈과 같은 성인대표팀을 지도할 수 있게 됐다. 무자격자가 버젓이 월드컵에서 대표팀 벤치에 앉아 있던 것이다.

기사 이미지 
홍명보 감독은 불과 10개월 만에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핌 베어벡 감독을 보좌하는 대표팀 수석코치에 임명됐다. 물론 이는 편법이었다. (사진=연합뉴스) 

홍명보 위해 자격증 강습회 일정도 바꾼 협회 

2006년 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협회는 아드보카트 감독 후임으로 핌 베어벡 감독을 선임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홍명보 코치를 위해 편법을 썼다. 2005년 9월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던 홍명보 코치는 아직 자격증 취득 기간이 1년을 넘지 않은 상황이어서 여전히 1급 지도자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협회는 1년에 두 번 열리는 1급 지도자 강습회의 하반기 일정을 앞당겨 버렸다. “하반기 신청자가 많아서 인원배분 차원에서 일정을 앞당기기로 조정했다”고 했다. 베어벡호가 출범하는데 여전히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 무자격 논란에 휩싸여 있는 홍명보 코치를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하반기 지도자 강습회는 보통 10월이나 11월에 열리지만 홍명보 코치가 빨리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기 위해 그 일정을 7월로 당겨버렸고 홍명보 코치는 2006년 7월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4~5년은 족히 걸리는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아무런 지도자 자격증도 없던 이가 불과 10개월 만에 각급 대표팀까지 지도할 수 있는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대표팀 수석코치에 임명됐다. 말 그대로 대표팀에서 감독 다음으로 힘을 보유한 막강한 자리까지 초고속 승진한 것이다. 당시 국내 축구 지도자들의 불만은 상당했다. 2006년 10월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가 조사한 자료를 살펴 보면 현장 지도자들이 얼마나 협회의 홍명보 코치 밀어주기에 불만을 가졌는지 잘 알 수 있다. 설문에 응답한 현직 지도자 중 78.9%인 266명이 “2급 자격증을 가진 홍명보 코치가 자격 규정을 위반하면서 독일월드컵 대표팀 코치에 선임된 것에 대해 잘못”이라고 답했고 “허용되어야 한다”고 답한 지도자는 7명 뿐이었다. 협회의 인사에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을 낸 이들은 “협회가 능력과 자격을 무시한 채 지명도(128명), 측근(121명), 학연과 지연(71명), 무자격자(44명) 위주의 정실인사를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두가 협회와 홍명보 코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하지만 협회는 이런 불만 섞인 목소리를 찍어 누르기에 바빴다.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들의 입맛에 꼭 맞는 홍명보 코치를 밀어줄 생각 뿐이었다.

편법 답습한 홍명보, 협회와 싸운 조광래 

편법과 밀어주기식 인사로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오른 홍명보 감독은 청소년 월드컵 8강이라는 성적을 낸 뒤 서정원을 자신의 팀으로 불러 들였다. 하지만 과거 홍명보 감독과 마찬가지로 서정원 역시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었다. 유럽에서 은퇴한 뒤 현지에서 연수를 받으며 지도자 자격증을 딸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나 협회로부터 편법을 전수받은 홍명보 감독은 그대로 이를 써먹었다. 기술분석관이라는 이름으로 서정원을 아시안게임 대표팀 스태프에 합류시킨 것이다.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이 2급 지도자 자격증으로는 대표팀 코치라는 타이틀을 달 수 없던 그를 기술분석관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데려온 것이다. 서정원은 자격증이 없어 코치로 합류하지 못하고 전력 분석에 집중하다가 같은해 7월 1급 지도자 임시 자격증을 얻은 뒤 코치 자격으로 홍명보 감독을 옆에서 보좌하게 됐다. 그는 무려 4개월 동안이나 자격증이 없어 전력분석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일단 먼저 자격도 없는 이를 대표팀에 불러다 놓고 그에 맞는 자격증 취득을 협회에서 도와준 것이다. 서정원은 당시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기 전까지 대학 선수들의 경기를 자주 보면서 새로운 재목을 발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월드컵 참사’ 협회와 감독의 합작품 

그는 결국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려 놓고 다시 전북으로 돌아가겠다는 조건부 계약에 합의했다. 전북의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와 현대산업개발 회장이자 당시 프로축구연맹을 맡고 있는 정몽규 총재의 관계 때문에 그가 원치 않던 대표팀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그렇게 최강희 감독은 독이 든 성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실망스러운 경기력 속에서도 가까스로 한국을 월드컵 본선 무대로 이끈 뒤 전북으로 돌아갔고 이 사이 홍명보 감독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자신의 짧은 감독 경력 중 최고의 성적을 일궈냈다. 협회는 최강희 감독이 전북으로 돌아가자 여론의 눈치를 봤다. 여러 외국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언론에 흘렸지만 결국 협회의 선택은 애초부터 홍명보 감독이었다. 조광래 감독 시절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이를 선임했다가 낭패를 봤고 대표팀보다는 자신이 속한 클럽팀에 더 애정을 쏟는 감독을 거치고 나니 홍명보 감독이 더 절실했다. 편법으로 그 자리까지 앉혀줬고 누구보다도 협회의 말을 잘 듣는 감독이 바로 홍명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프로팀 한 번 맡아보지 않은 홍명보 감독은 그렇게 한국 축구 지도자로서는 최고의 자리인 성인 대표팀 감독이 됐다. 

‘무자격자’를 ‘꼭두각시 감독’으로 만든 협회가 책임지길 

협회는 이 절대적인 권력을 멈출 생각이 없다. 조광래 감독과 그렇게 대립하던 이회택 기술위원장이 사임하자 그의 충실한 ‘하수인’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임명됐고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협회 부회장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는 기술위원장이라는 직함만 없을뿐 여전히 그 이상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더군다나 협회는 지금껏 문제가 생기면 ‘꼬리 자르기’에만 열중했다. 승부조작 사건 당시 숱한 선수들이 철퇴를 맞았지만 이 일에 책임진 수뇌부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번 월드컵 참패 역시 표면적으로 보이는 몇 명에게만 철퇴를 가할 뿐 아마 협회 수뇌부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책임을 진다고 해도 그저 직함만 바꿔달 뿐 그들의 권력은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자기 식구들 챙기기에만 바쁘고 편법을 일삼는 부패한 협회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대표팀이 개혁될 리 만무하다. 권력에 눈이 먼 ‘무자격자 감독’과 그런 감독을 ‘꼭두각시’로 이용하는 협회가 유지되는 한 우리는 또 4년 뒤 이런 참사를 보며 죄 없는 선수들만 욕하고 있을지 모른다. 벨기에전이 끝나고 흘린 손흥민의 뜨거운 눈물은 축구계 어른들이 만든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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