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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 터지는 날씨, 황량한 마음의 백수가
게시물ID : freeboard_11781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뮈의권총
추천 : 0
조회수 : 12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1/29 01:16:31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백수인생. 사는 것도 아니고 안 사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데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 잉여인간.

모든 것이 싫고 모든 것을 욕하고 싶다. 사람들이 싫다. 날 좀 건드리지 마. 걸리면 시비 걸어 버린다.

사람들 안 만나고 산지가 벌써 몇년 째인지.


요즘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상태로 나는 다시 백수의 겨울을 맞이한다. 

씨발스럽게 갑자기 추워진 날씨.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선다. 신호가 바뀌고 걸음을 내지른다.

밤 10시의 어두운 오거리에 차들도 많이 다닌다. 길 건너에는 폐품을 한가득 실은 구루마를 밀고 오는 아줌마가 보인다.

한달 전에 재수없게 접질러진 발목은 좀체 낫지를 않는다. 노가다 뛴다고 제대로 치료도 못해서 그렇다.

그런 발목으로 불안정하게 기우뚱 거리며 걷는다.  바람이 내친다. 칼날이다. 이렇게 추울수가. 

구제시장에서 오천원 주고 산 방한 점퍼의 후드를 올리고 지퍼를 잠그며 중얼댄다.  씨발. 


기우뚱 거리며 걸어간다. 바람이 들이친다.

바로 그 때.

폐품 아줌마의 구루마가 바람에 휘청인다. 맨 위에 실어 놓은 약수터 물통이 우당탕 거리며 떨어진다.

때마침 공사중인 도로위에는 철판 구조물이 깔여있다. 아줌마의 구루마 바퀴가 그 철판 틈에 걸려 우쭉우쭉 거린다.

밀어도 밀리지 않는 구루마.


0.5초간 멈춰선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그대로 아줌마에 다가간다. 약수터 물통을 주워 구루마에 담는다.

허리를 숙이고 구루마 밑둥을 들어올리며 아줌마에게 소리친다. 차들이 빵빵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 밀어요. 자. 하나 !!  두울 !!  "

덜컹. 덜그덕덕

구루마가 어렵사리 철판을 기어 오른다. 고개를 들어 신호등을 보니 이미 빨간 등.

차들이 쏜살같이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얀 선들이 더 이상 우릴 보호하지 못하는 그 순간

구르마에 손을 얹고 아줌마에게 말한다. 

" 자 같이 밀어요. 갑시다."  

허둥거리던 아줌마가 그제야 손잡이를 밀며 되받는다.

"고맙습니다."

구루마를 밀면서 나는 손을 치켜 들었다. '좀 지나가자. 기다려라'

그들은 나를 아줌마의 일행으로 봤을까. 아니면 오지랖 넓은 행인의 참견을 혀를 차며 지켜봤을까.

어찌됐든 더 이상 튀어나오는 차는 없다. 고맙게도 우리가 밀고 지나가는 그 시간 그들은 멈춰서 기다린다.

하나 둘, 하나 둘, 차분히 밀어 나온다.

"잠깐 스탑 !!"

버스 한대가 아랑곳 않고 회전을 돌아 쉭 하고 우리 앞을 지나간다.

"자, 이제 다시 밀어요."

하나 둘, 하나 둘, 

그렇게 이 칼날같은 밤의 횡단보도를 아줌마와 나는 함께 탈출했다.

" 아이구, 정말 고맙습니다."

" 이제 괜찮아요. 저 쪽 차 없는 쪽으로 해서 올라가세요."

덜컹, 덜거덕 덕덕  끼익끼익

아줌마는 그렇게 밀고 올라간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인도 위로 올라가 그 구루마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본다.

뭐 대단한 업적이라도 세운 사람 마냥 나는 함께 지옥을 탈출한 동료를 배웅하는 기분이라도 된 듯 그렇게 한참을 서서 지켜본다.


마음이, 마음이 이상하다.

나는 흠칫 놀란다. 순간 눈물이 나오려 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온기, 따뜻한 온기를 내뿜을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던 것일까.

나같은 놈도 인정이란 걸 베풀 여유가 남아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그런 여유 따위 그런 에너지 따위 내 맘 속에 원래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떨어진 약수터 물통을 향해 발길을 내딛었던 그 순간

바로 그 순간부터 솟아난 것이었다.



그렇게 계속 걸어간다. 그날 밤만큼은 구제시장 오천원짜리 점퍼로도 

나는 춥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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