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생활 11년차인 미국인 남편은 일본 치과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갖고있습니다.
실력이 떨어지고, 마취제나 진통제를 잘 쓰지 않아 환자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불신이 깊어진 게, 8년 정도 전인데,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가도 의사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일단 이거이거 해보고 안되면 다른 걸 시도해보자"는 식으로 진단을 내려서 신뢰가 가지 않았던데다가
미국의 강한 마취약에 길들여진 사람이라 그런지 마취제를 몇방을 맞아도 마취가 잘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꾀병아니냐"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일본인들은 참을성이 많은데, 외국인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식으로 얘기를 해서 엄청 화가 났었습니다.
물론, 치료 후 처방받은 진통제도 그닥 효과가 없었구요.
병원을 옮겨봤지만, 거기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도쿄 출장간 김에 "대도시 병원은 나을지 몰라"라는 기대를 갖고 찾은 한 치과에서는
'니들 외국인들은 약쟁이들이라 강한 진통제를 처방받으러 아프지도 않으면서 치과에 온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마취도 안하고 입안을 휘저어 놓아서 치과에 대한 공포심까지 생겼습니다.
그 때 남편은 "차라리 돈이 얼마가 들든, 미국 가서 치과 치료를 받고싶다"고 할 정도였어요.
아직 연애할 때였는데 '야... 이녀석 미국가서 치과진료 받고 오면 알거지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말 아프지 않고서는 치과에 안가게 되고, 그러니 치아 상태는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일단 검진이라도 정기적으로 다니라고 했지만, 들어처먹질 않습니다.
4년 전에 어찌어찌 전체적으로 충치 치료를 했는데, 그 뒤로는 전혀 치과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두 달 전, 남편이 식사 도중에 돌을 씹어서 사랑니 하나가 깨졌고, 그렇게 미루고 미뤄왔던 치과에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제가 작년부터 다닌 치과인데, 평판도 아주 좋고 저도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기에 추천했지만 남편의 경계심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치료를 시작한 후에는 "지금까지 다녀본 일본 치과 중 가장 맘에 든다"고 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몇년동안 치과검진을 받지 않았던 탓에 많은 치아에서 충치가 심해져서 사랑니 치료가 끝나면 대대적이자 장기적인 충치치료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늘이 치과진료가 있던 날이라,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치료가 어땠냐고 물어봤더니 "음... 치과 의사에게서 가장 듣고싶지 않았던 말을 두 개나 들었어"라고 합니다.
1. 남편의 치아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의사샘이 자기도 모르게 속삭인 혼잣말.
"하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2. 가장 심각해보이는 윗어금니 충치 치료를 위해 이를 깎던 중, 의사샘이 또다시 자기도 모르게 속삭인 혼잣말.
"헉. 이렇게 안쪽까지 들어간 충치는 내 평생 처음 봐..."
(신경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구멍을 뚫었다고 하네요)
이런 말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의사샘이긴 하지만, 충분한 마취가 된 것을 확인한 후에 치료를 시작하기 때문에 아픔에 대한 공포가 없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와도 바로 환자에게 설명한 후 간호사들과 빠르게 대처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남편의 평입니다.
다만, 일본 치과 특유의 느린 진행만은 이 병원도 피해갈 수 없나봐요.
오늘 이를 갈고 임시로 막아놨는데, 실제로 떼우는 건 2주 후입니다. 그다음 예약은 또 2주후겠죠.
남편은 워낙 충치가 많아서 이대로 가면 아마 내년 12월에도 아직 충치 치료 받고 있을 것 같다고...
충치 치료를 마치고 나면 금속으로 떼운 이가 멀쩡한 이보다 많을거라고...
그럼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기는 "아빠는 사이보그야?"라고 물어볼 것 같다고... 그러네요.
남편 노후 치아 치료용으로 적금 하나 들어야 하나 고민되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