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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메스 11화
게시물ID : readers_113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떠돌이참견꾼
추천 : 0
조회수 : 11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21 19:16:32

“회장님, 때가 왔습니다. 의료법인건과 관련해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법을 어기는 일이라도 상관 없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지금은 전시상황입니다."

 

신 박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의 작정한 듯 과감한 발언에 회의장이 시끄럽게 술렁거렸다. 그는 마치 결사항전의 결의로 칼을 빼든 무사같았다. 임원들은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 사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활발히 나누기 시작했다. 격변기의 중심에 선 동물들이 자주 보이는 일종의 본능적 행동이었다. 회장은 일거의 외침으로 좌중의 소란을 잠재우고는 신 박사에게 말을 계속 이어나갈 것을 요구했다.

 

 

“곧 의료산업은 영리화되고 말 것입니다. 무상의료를 제공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부분적으로 허용되던 의료영리화가 곧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수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수명은 늘어났고 출산율은 감소했습니다. 고령화사회가 도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건강은 당연히 세계적 화두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오늘날의 과학은 아주 중요한 경계선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대격변이죠. Trans-humanism. 인간은 곧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진화시킬 수 있을것입니다. 자연선택에 의한 수동적 진화가 아닌 과학에 의한 능동적 진화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죠.

 

이 거대한 두 흐름이 만났습니다. 저는 이 둘의 결합이 곧의학혁명일 것이다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8000년 경의 농업혁명,18세기 중엽의 산업혁명의 뒤를 잇는 세 번째 혁명일 것이라고 단언하겠습니다. 인간이 더는 진화할 수 없을 때까지 의료산업은 이제부터 아주 강력해질 것입니다.”

 

 

신 박사의 일장연설이 끝난 뒤에도 회의장은 소란 없이 고요했다. 혼란 속의 평온이었다. 참석자들은 앞으로 세계에 벌어질 일들과 그 세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고민했다.

 

송 회장이 그 평온을 깨뜨렸다. 그는 정적인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항상 변화 속에서 살았고 변화를 추구해왔다. 그에게 의료혁명이라는 것은 그저 하나의 좋은 기회에 불과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엔 앞으로 펼쳐지게 될 거대한 전장에서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책들 뿐이었다.

 

 

“윤 변호사, 계약서 검토하고 우리 쪽에 최대한 유리하게 공식적인 최종 계약서 작성해 와. 전략기획본부장은 향후 의료산업 전개방향 예측 보고서랑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면 좋겠는지 제안서 제출하고. 송은주, 넌 앞으로 세세한 것까지 모두 나에게 말해야 한다. 콜록콜록..

 

모두들 잘 들어. 뱃사공이 파도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설사 그것이 집채만한 쓰나미 일지라도 말이야!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황금의 섬 엘도라도로 가자! 도착하면 너희들은 모두 공신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걱정 말고 나만 믿고 따라와! 알겠어?

 

매주 이 시간 이 곳에서 긴급회의를 연다. , 앞으로 할 얘기 있는 놈들은 언제든지 날 보러 33층에 들러. 오늘부터 회장실은 24시간 오픈이다. 모두 각자 맡은 임무들이 있을 거야. 차질없이 확실히 하도록. 이상.”

 

회장은 상징적인 말로 자신의 굳건한 결의를 나타냈다.

 

이제 의료산업과 관련한 그 어떤 논의도 언제든 회장과 직접 할 수 있다. ‘비상근무체제의 선언이었다. 30여 년 전 첫 해외진출을 앞두고 선언했던 것과 더불어 기업 역사상 두 번째 일이었다.

 

 

“네, 회장님!”

 

선원들은 선장의 출항지시에 통일된 구호를 외쳤다. 그들은 선장의 굳센 의지에 안정감을 느꼈다. 되려 희열을 느끼는 자들도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금 덩어리를 두 손에 푸짐하게 거머쥐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의 눈앞에 장애물은 없었다. 격랑의 바다는 그저 그들의 삶이었을 뿐이다. 그들의 시선은 비로소 황금의 섬 엘도라도에 집중되었다.

 

 

긴급회의가 해산되고 회장과 은주는 회장실에 함께 들어갔다. 은주가 할 말이 있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회장은 비서의 도움을 받아 옷 매무새를 점검하면서 은주에게 물었다. 은주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서 대답했다.

 

 

“국내 의료진, 연구진의 구성은 모두 끝났습니다.”

 

은주의 목소리가 무슨 이유인지 조금 떨렸다.

 

 

“그거 참 잘된 일이구나. 콜록콜록..”

 

회장은 기침과 동시에 껄껄 웃었다. 하지만 은주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회장은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딱 한 자리 빼고요.."

 

 

"그게 무슨 말이냐?"

 

 

"실은 최 박사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것이 있었습니다. 왕립대 의대 줄기세포연구소 연구원 이현을 반드시 데려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 놈이 그런 제안을 한 것이냐?"

 

 

"직접 얘기를 들은 바는 없지만 제가 생각해보았을 땐 이현의 연구를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두려워한다?"

 

 

"이현은 줄기세포로 치매를 치료하고자 하는 자입니다. 그의 연구가 성공하면 최 박사 자신의 연구실적이 기대했던 영향력을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라 예상하는 것 같습니다."

 

 

"계약내용 중에 향후 개발될 모든 기술들에 대한 수익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있었습니다."

 

 

"단순히 견제만이 아니다! 이현을 사업적 파트너로 삼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거지.

그 일은 잊거라. 내가 직접 해결하마."

 

 

"? 그렇지만.."

 

은주는 회장의 뜻밖의 대답에 어리둥절했다. 임무수행에 실패한 부하는 가족이라도 과감하게 쳐내는 것이 회장의 철학이었다. 또 회장은 절대 부하직원의 임무를 돕는 일이 없었다.

모두 회사의 기강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일개 대학 교수를 만나는 일에 회장이 직접 행차한다니..

성가시긴 해도 긴급상황이라 좋은 것도 있는 모양이다.

 

 

"그만 나가보거라."

 

 

건물 밖에는 뜻밖의 손님이 은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전 자민당 기사로 일대의 대박을 친 바 있는 노튼통신의 다크호스 에이든이었다. 에이든은 짙은 갈색의 가죽 옷을 입고 담배를 꼬나물며 자신의 애마인 빨간색 오토바이에 앉아 스마트 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휘버! -야압!

 

에이든은 건물 밖으로 나오는 은주를 발견하고는 전조등을 그녀의 눈에 비추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은주는 뜬금없는 하이-빔 세례에 신경질적으로 눈을 보호하며 에이든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에이든은 오토바이의 시동을 끄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때 이 광경을 목격한 만복이 차에서 급히 내려 에이든을 제지했다.

 

 

“잠깐 스톱. 당신 누구야?”

 

 

에이든은 주머니에 넣고 있던 오른손을 꺼내 들어 만복에게 자신의 명함을 주었다. 만복은 괴한인가 싶어 순간 흠칫했으나 이내 에이든의 오른손에 들린 것이 명함임을 알아채고는 멋쩍은 듯 헛기침을 했다. 에이든은 이런 만복의 태도를 가만히 보더니 풉하고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노튼통신.. 기자?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 하세요. 의원님 갑시다.”

 

만복은 에이든을 거칠게 밀며 은주가 무사히 차량에 탈 수 있게 유도했다. 만복의 육중한 몸에서 끌어낸 엄청난 에너지에 에이든의 공든 근육들은 전혀 저항해내지 못했다. 에이든은 그래도 꾸준히 운동했던 몸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나 싶어 실소했다. 은주를 위해 만복이 차 문을 열었을 때 에이든은 혼잣말 하듯이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이렇게 취급하면 안될텐데.. 나 그거알고 있는데..”

 

 

그 말을 들은 은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만복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은주를 재촉했다.

 

“타시죠.”

 

 

은주는 그 자리에 서서 몇 초간 고민을 더 했다. 발 앞에 놓인 작은 돌멩이조차도 조심해야 할 예민한 시기였다. 만복은 은주가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 지알 수 없어 어리둥절하게 은주를 바라보았다. 은주가 결국 돌아서더니 에이든을 향해 걸어갔다.

 

 

“사람이 많은 곳이니 조용한 곳에서 함께 얘기 나누죠.”

 

은주는 애써 미소 지으며 에이든에게 응했다. 에이든은 은주가 손짓하는 대로 은주와 함께 차에 동석했다. 만복은 에이든을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고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 짜증 섞인 행동임이 분명했다. 에이든은 이런 취급이 불쾌해서 만복을 째려보았다. 두 남자는 마치 당장이라도 서로를 향해 달려들 것처럼 뒷발을 차대는 거친 황소들과 같았다. 에이든과 은주는 차 뒷자석에 만복은 조수석에 앉았다. 곧이어 차가 출발했고 은주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절 찾아오신 이유가 뭐죠?”

 

 

“나 다 알아요. 진성그룹 지금 하고 있는거.”

 

에이든은 창 밖의 풍경을 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에이든이 말할 때 그의 얼굴을 반쯤 뒤덮고 있는 갈색 수염들도 멋대로 함께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콧털도 갈색.. (이건 넘어가자)

 

 

“도대체 뭘 알고 계시다는 거죠?”

 

은주는 보이지 않는 쪽의 손으로 주먹을 움켜쥐며 에이든에게 물었다. 그녀는 두려움과 화남 두 가지 감정을 모두 느끼고 있었다. 자칫 잘못 너무 이른 시기에 언론보도가 시작되면 이번 프로젝트가 완전히 물거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두려움과 오늘의 휴식을 방해한 에이든에 대한 화남이었다. 에이든은 여전히 은주에겐 관심도 없다는 듯 창 밖만 응시하며 대답했다.

 

 

“평양, 그리고 33.”

 

 

‘평양은 의료 영리법인이 세워질 곳.. 역시 우리가 의료산업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군.. 그런데 33층은 뭐지?’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모르겠네요.”

 

은주는 까딱 잘못 말했다간 자신이 이번 프로젝트를 말아먹은 원흉으로 지목 받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일단 모른 척 잡아뗐다. , 에이든의 대답을 유도해 ‘33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듣고 싶었다.

 

 

“뭐, 상관없어요. 어차피 오늘은 그림 하나 따려고 온 거니까. 잡아 떼는 그림, 익숙하잖아요. 큭큭. 그대로써드릴게요. ‘진성그룹 관계자 송씨는 그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이라 잡아떼었다.’ 송씨라 하면 국민들이 의원님이 아닐까 의심할까 봐 걱정되긴 하네요. 큭큭..”

 

에이든은 이제서야 은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밝은 갈색의 눈동자가 돋보였다.

 

 

Hey driver, 나 저기 bike 있는 데서 좀 세워줘요.”

 

O.. Okay.”

 

 

차는 진성그룹 본사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에이든과 은주가 만났던 그곳에 다다르고 있었다.

 

 

“저기 근데, 33층은 뭡니까..”

 

은주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생각으로 에이든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에이든은 이 말을 듣고 은주의 속내를 완전히 추리해 낼 수 있었다. 은주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Oh my god! 당신 몰라요? 아버지가 얘기 안 해줬어요?”

 

에이든은 일부러 휘둥그레한 눈과 과장된 손동작으로 은주를 놀려댔다. 그는 자신이 진실을 좇는 사명감으로 기자를 하는 것인지 사람들을 골탕먹이는 재미로 기자를 하는 것인지 순간 헷갈렸다.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잖아요.”

 

은주는 화를 참으려 눈을 질끈 감고 어금니를 꽉 깨물며 다시 한 번 에이든에게 물었다. 차는 이미 멈춰 에이든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랑 사이 안 좋으시구나. 헤헤, anyway, thanks! See you later.”

 

 

“야이 씨 잠깐만! 에이든!! 야이 개…”

 

에이든은 은주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도망치듯 나갔다그는 오토바이에 올라타 얼른 시동을 걸더니 그 길로 곧장 쌩하고 달렸다. 기사 쓸 생각에 들뜬 모양인지 유난히 몸이 가벼워 보였다.

 

 

“아가씨.. 출발할까요?”

 

기사는 은주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후… 출발하세요.”

 

은주는 심호흡으로 자신의 감정을 달래려 애썼다. 태생이 다혈질이라 쉽지는 않아 보였다.

 

 

“의원님, 오늘 술 한 잔 하실래요?”

 

만복은 은주가 걱정되어 물었다.

 

 

“술은 무슨 술이야. 그냥 집에 들어가.”

 

은주가 귀찮은 듯 대답했다.

 

 

“차 기사님 MBC로 가주세요.”

 

만복은 은주의 거절을 무시하고 기사에게 지시했다.

 

 

“예엡!”

 

 

“야 이씨 누가 네 맘대로..

그나저나 개성에 MBC가 있었어?”

 

 

“에이 누나 가보시면 알아요!”

 

 

“차 기사님 MBC가 어디에요?”

 

 

MBC가 MBC지 어디에요 아가씨.. 헤헤..”

 

기사는 시치미를 뚝 떼었다. 기사는 만복과 여러 번 MBC에서 놀았던 경험이 있었다. 주로 은주 때문에 열 받을 때 둘이 함께 가 그곳에서 마음껏 울분을 토하곤 했었다.

 

 

그렇게 차는 20분을 더 달렸고 작은 골목앞에 멈춰 섰다. 은주는 이 상황이 황당해서 만복에게 따지듯 물었다.

 

“야, 여기가 MBC?”

 

 

“네! 누나 일단 내려보세요! 죽인다니까요!”

 

만복은 얼굴에 철판이라도 이식한 듯 뻔뻔했다.

 

 

“아니 얘가 오늘따라 왜이래..”

 

은주는 만복의 성화에 못 이기겠다는 듯 투덜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골목 안에는 떡볶이 집, 파전 집 등 다양한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MBC 간판도 있었다.

 

 

MBC... 노래방? 야 이씨 누가 이런 곳에 오래!”

 

은주는 걸걸한 목소리로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만복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만복은저 기특하죠라고 묻는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은주를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은주는 오랜만에 놀 생각에 내심 기분이 날아갈듯 들떴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예약곡 11개에 두 남자의 것들은 고작 2~3개에 불과한 일들이 반복되었다. 은주의 노래실력이 들어줄만 한 것이었다면 또 몰랐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한 마디로 두 남자에게 이 자리는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차 기사는 결국 못 버티고 맥주 한 캔에 땅콩 몇 알 집어 먹고는 마누라랑 약속이 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했다. 평소 마누라 전화라면 질색하며 받지도 않던 사람이었다. 만복이 떠나는 그를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지옥의 두 시간이 흐른 후 만복과 은주는 한껏 흥에 겨운 채 노래방 앞 파전 집으로 향했다. 이미 해는 완전히 내려 앉아 하늘엔 별빛과 달빛뿐이었다. 밤 바람이 차서 숨을 쉴 적마다 뿌옇게 수증기가 떠 올랐다. 골목은 그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운 간판들의 불빛으로 환했다.

 

 

“누나 요즘 힘들죠?”

 

 

“힘들긴..”

 

은주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동동주를 벌컥벌컥 마셔댔다만복은 이런 은주의 모습이 귀여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투덜대긴 해도 절대 힘들다고 불평은 안 하네.. 옛날 수능 준비할 때도 그러더니.. 자존심인가?'

 

 

그렇게 한참을 마시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후딱 지났다. 은주는 취했는지 머리를 테이블에 박았다.

 

!

 

만복은 그런 은주의 모습을 안쓰러운 듯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막걸리 한 사발을 더 들이켰다. 그때 뻗은 줄만 알았던 은주가 헤롱헤롱한 상태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머리가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었다.

 

 

“야.. 근데.. 너 그때 왜 모른 척 한 거냐?”

 

 

은주의 말을 들은 만복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만복은 말없이 막걸리 한 사발을 더 떠서 마셨다. 곧이어 바로 만복이 또 한 사발을 더 뜨려고 했을 때 은주가 만복의 팔목을 잡아 제지했다.

 

 

“이씨.. 너 그때 왜 그런 거냐고!!! 이 뚱땡아!!!

얌마, 나 취했다고 지금 무시하냐?

나 송은주야! 송은주!!”

 

은주는 혀가 꼬일 대로 꼬인 채로 만복에게 성냈다. 그 순간의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만복과 은주의 테이블로 집중되었다. 개중에는 은주를 알아보고 핸드폰을 꺼내 들어 은주의 망가진 모습을 찍으려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만복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이 찍히는 것을 막았다. 잠시 후 사람들의 관심이 잦아들었을 때 만복이 대답했다.

 

 

“제가 그래서 누나 이렇게 극진히 모시잖아요. 미안해서..”

 

은주가 제대로 알아들었을 리 없었다. 만복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식이 가출한 은주는 다시 테이블에 머리를 찧으려 했다. 이번에는 만복이 포동포동한 손으로 그것을 막았다. 그의 폭신한 몸매도 때로는 쓸모가 있는 모양이다.

 

 

“여기 파전 하나 더요! , 막걸리도 한 통 더 줘요.”

 

만복은 애써 웃었다.

 

'고마워요. 그래도 버티며 살아줘서. 그렇지 않았다면 난 따라 죽었을 거에요. 저도 그만큼 괴로웠어요..'

 

 

다음 날 아침 은주는 늦잠을 잤다. 숙취에 속이 뒤틀렸다.

 

“아웅..”

 

늘 그렇듯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달렸던 어제의 일을 반성했다.

 

 

은주는 뒤틀린 속을 부여잡으면서도 노트북이 있는 서재 책상으로 어렵사리 향했다. 노트북을 키고 노튼통신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하지만 그곳에 진성그룹 내지는 자민당, 의료영리화와 관련된 그 어떤 기사도 없었다. 은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 전화가 온 기록은 없었다.

 

 

“아 이씨.. 사람 긴장되게.. 올릴 거면 빨리 올려라 에이든..”

 

은주는 초조함에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은주에게 지금 이 순간은 폭풍전야와도 같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이제 웃대 연재 속도를 따라 잡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정상 연재 속도대로 이틀에 한 화씩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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