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가 책을 추천해 줘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의 취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별 기대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잭팟을 터트려서 정말 몰입감을 가지고 완독했습니다. 제목은 던전 디팬스입니다. 처음에 텍스트본을 받고 제목을 보자마자 덮으려 했지만 그가 바지 끄댕이 잡고 끝까지 보라고 설득해서 속는샘 치고 봤습니다. 세간에 이 소설에 대한 평가를 '제목이 모든것을 망친다.'라는 평가가 십분 공감이 될 정도로 가벼운 타이틀에 비해서 내용은 묵직합니다. 주인공은 사고를 당해 게임속에서 살게됩니다. 문제는 엄청 강한 능력치나, 돈이 많거나, 명성이 높은 케릭터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힘도 없는 멸치에, 상거지에, 현상금 걸린 악당으로 태어납니다. 그가 현실 세계로 돌아갈 유일한 방법은 대륙을 이 눈물나게 약한 케릭터로 정복하는 것입니다. 저 게임속 세상이나, 현실이나 약자로 산다는 것은 힘든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면서 어떻게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꾸역꾸역 힘을 기릅니다. 약자에겐 어떤 무기가 있겠습니까? 어떤 무기를 휘둘러야지 더 많은 부와 명성 그리고 힘을 손에 넣을수 있겠습니까? 현실에 충실한 우리는 노력,연대,희망,끈기 같은 단어가 머리에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목숨을 너무나 사랑했고, 너무나 약해서 의심이 많았기 때문에 약자가 쓸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거짓과 정치를 선택합니다. 교묘한 언변으로 자신을 공격한 도적단을 몰살시키고, 타인에게서 선의를 의도적으로 얻은뒤 거하게 사기를 쳐서 자금과 인재를 얻습니다. 누군가의 계략에 빠졌을때는 약점을 잡은 사람에게 방패가 되어 비난의 화살을 막을 것을 강요하고, 견고한 정치판에 뛰어들어 의심의 싹을 뿌려 전쟁을 일으킨 뒤 자신의 군세를 불립니다. 애인의 감정을 이용해서 실리를 얻으며, 남의 나라에 가서는 민초들을 단결시켜 지도층과 분열되게해 나라를 산산조각냅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그보다 계략에 능하지 못했던 이들은 죽게되고, 많은 목숨이 장기말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읽는 내내 법가, 육도삼략, 유명한 고대전쟁의 내용들이 잘 녹아 들어 있음을 느꼈고 저가 이미 알던 내용도 예컨데 민중에게 법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는 방법을 커다란 돌을 자발적으로 옮긴 사람에게 천금을 하사하는 내용을 정말 유쾌하게 녹여 낸 부분에서는 아는 것도 활용못하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정치적 언변이나 표현을 얼마나 뛰어나게 적용했는지, 수학에 익힘책이 있으면, 이 소설은 군주론의 익힘책으로 쓰여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정치의 기본인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과정을 오직 언변이나 추론을 통한 승부수 로만으로 이루어 내는 주인공을 보면서 고대 그리스의 휘황찬란한 언변가들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가끔씩 어거지를 써서, 작중에 그는 절륜한 정력을 가졌기 때문에 때론 여성을 오직 성적 쾌락으로만 정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약간 불편했습니다. 완독을 하니 생각할 거리가 꽤나 많이 떨어 졌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언제나 강자가 되기를 꿈꾸는거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 의미 있었으면 좋겠고 때문에 일상이 보람 찬 일들로 가득했으면 합니다. 허나, 현실에서는 슬픔이 우후죽순처럼 구서구석에서 돋아나고 기쁨은 가뭄에 콩나듯 보입니다. 그래서 더 더욱 돈이 많았으면, 인기 있었으면, 사랑받았으면, 재능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사는거 같습니다. 만약 강자가 되는 것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면, 덜 정치적이고 덜 교활하게 행동하는 것은 삶에대한 무례 아닐까요? 삶을 너무나 소중히 여겨 작중의 그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 남고 올라갔습니다. 그가 타인의 희생을 발판삼아 올라 갔다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작중에서 단 한번도 부당한 무력을 사용해 뜻을 이루지 않았고 순전히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추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고 그 과정속에서 희생이라 불릴만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무례하던지 타인에게 무례하던지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까? 위선자나 악당 둘다 매력적인 직업은 아닌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