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고래(벨루가)가 움직이는 제2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수조를 보던 환경부 김종률 생물다양성과장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자유로이 북극해를 누비고 다녔을 흰고래가 낮은 수조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 것이다.
지난 10일 제2롯데월드 아쿠아리움. 흰고래와 해양동물의 사육 환경과 관리실태를 점검한 정부 관계자와 시민단체들 사이에선 "동물에게 주어진 공간이 지나치게 좁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몸길이 3m가 넘는 대형 흰고래의 덩치에 비해 수조의 높이는 7m에 불과했다. 현장조사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과 한강유역환경청 담당자, 국립생물자원관·국립생태원의 포유류·어류 전문가,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핫핑크돌핀스 활동가가 참석했다.
정부·전문가 현장조사단이 제2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을 찾은 지난 10일 흰고래(벨루가) 두 마리가 수조에서 헤엄치고 있다.- 몸길이가 4m 이상 자랄 수도 있는 흰고래를 얕은 수조에 가둬둔 이유가 뭡니까.(조사단)
"…"(수족관)
- 굳이 러시아에서 포획된 야생 흰고래를 수입해 데려온 이유가 뭡니까.
"연구와 보호를 위해서입니다."
- 예산상의 문제로 동물의 본성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군요.
"…"
수족관 측이 군색하게 "연구를 위해"라고 설명했지만, 전시 목적으로 수입한 돌고래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규상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다. 흰고래 세 마리는 제2롯데월드가 서울시로부터 임시개장 허가를 받기 1년7개월 전인 지난해 3월 수입한 개체들이다.
환경부가 작성한 현장점검 결과보고에는 소음·조명·휴식공간 등 다양한 지적사항이 포함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전문가들은 흰고래가 휴식할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국제적 멸종위기동물은 전시공간과 관람객에게 공개하지 않는 휴식공간을 연결해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흰고래들이 담겨 있는 수조는 관람객의 눈을 피할 공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현장을 본 대다수 전문가들이 '수족관이 작아 동물복지 측면에서 문제가 많고 시민들의 볼거리로도 실망스럽다'는 평가"라며 "롯데그룹이 광고에서 흰고래가 있는 대형 수족관을 강조하던데, 실제로는 복합쇼핑몰 광고에 흰고래와 수족관 동물들을 이용하는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지적한 것은 지나친 소음과 강한 조명이었다. 카라의 전진경 이사는 "관람객들이 내는 소음 외에도 음악소리와 퀴즈게임 소리 등 불필요한 소음이 너무 많고, 해양동물들이 강한 빛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소리에 민감하고 초음파로 대화하는 돌고래들을 수조 속에 가두는 것은 큰 고통을 주는 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국립생태원을 방문한 동물학자 제인 구달 박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돌고래 연구의 권위자인 로저 페인 박사의 말을 빌려 "돌고래에게 좁은 수조는 소리 감옥"이라며 "특히 자신들끼리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흰고래는 수조에 가두면 대화를 안 할 정도"라고 말했다.
국립생태원에서는 흰고래와 바다사자들이 자폐 증세의 일종인 정형행동을 나타내지 않도록 놀이 도구 등 다양한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족관 측은 "소음을 줄이고, 행동 풍부화 장치를 개발하는 등 권고사항을 적극 검토해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조사단이 수족관을 현장실사한 10일엔 정부합동안전점검단도 별도로 찾아 전날 발견된 흰고래 수조의 누수를 살펴봤다. 정부 안전점검에서는 최소 3곳에서 물이 새는 것이 확인됐다. 장 의원과 조사단이 누수에 대해 묻자, 수족관 측은 "대형 수조에서는 물이 새는 경우가 많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사단이 제2롯데월드 조사를 마치고 방문한 다른 수족관 얘기는 전혀 달랐다. 국내 최초의 대형 수족관인 '63씨월드' 관계자는 누수에 대한 질문에 "30년 가까이 수족관을 운영하면서 누수는 한 차례도 없었다"고 밝혔다. 개관 초기부터 물이 새는 현상은 결코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2롯데월드 수족관에는 지난 16일부터 서울시의 사용제한 명령이 내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