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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히키코모리지만 괜찮아
게시물ID : readers_113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뢰딩거괭이
추천 : 2
조회수 : 26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21 20:07:54
 
프로그램 자체의 오류인지, 컴퓨터가 이상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실행중이던 게임이 갑자기 종료되어 버렸다.
중간에 저장을 하기는 했지만 어느 부분까지는 다시 해야 해서 화가 난다.
하지만 조금만 더 하면 이벤트가 발생할 것 같기 때문에 다시 하기로 하고 게임의 단축키를 눌러보았지만
왠일인지 게임자체가 실행이 되지 않는다. 삭제하고 다시 설치해볼까 하지만 그건 역시 귀찮다.
 
시간은 새벽 3시,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지만 할게 없어졌기 때문에 잠들기로 했다.
내일은 삭제하고 다시 설치해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장면이 뭐였더라?
아, '내일 오후 1시에 만나자!' 였다. 그리고 내 선택은 당연히 'yes'였다.
다음 이벤트 성공으로 공략중인 캐릭터와 해피엔딩을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시간은 오전 11시, 일찍 잠들었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평소의 습관처럼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오랜 시간 사용해서 그런지 부팅하는데에도 시간이 좀 걸린다.
컴퓨터를 바꿔야 할지 고민한다.
컴퓨터가 켜지고 마우스를 움직인 순간 어제 갑자기 꺼졌던 게임이 멋대로 실행상태가 되었다.
 
공략 중이던 캐릭터가 화면 가득히 떠오르자 다시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오늘은 왠일로 오전에 일어난거야?'
 
응? 왠지 어제 진행하던 스토리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역시 오류인거라고 생각하고 창을 닫으려고 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창이 닫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곧 만나기로 했으니까 외출준비를 하지 않을래?'
 
대화창을 넘기지도 않았는데 대화창이 혼자 넘어간다. 이제 컴퓨터가 완전히 맛이 가버린 것 같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또 대화창이 넘어가버렸다.
 
'준비할 생각이 없는 것 같네? 안되겠어! 금방 찾아갈 테니까 기다려!'
 
대화창을 확인하자 곧 게임 창이 멋대로 닫혀버렸다. 도데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택배로 주문한 것도, 집에 찾아올 사람도 없다.
누구일지 의아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안녕?"
 
상큼하고 발랄한 표정으로 인사해오는 게임 속의 그녀가 서있었다.
 
"으아아아앍?"
 
이상한 굉음을 내며 문을 닫아버렸다. 2D가 3D로 나타나다니. 내가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가?!
문을 닫기가 무섭게 이번엔 난폭하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내 정신을 현실로 이끌었다.
 
"뭐야 그 반응은! 기껏해서 만나러 왔는데! 빨리 문 열어줘!!!"
 
열혈캐릭터는 무섭구나 하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멍하니 고민하는 동안 그녀는 필사적으로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문을 열지 않으면 문을 부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복하고 문을 열었다.
 
"우우, 너무해."
"미안"
 
사과해버렸다.
 
그녀는 나를 옆으로 밀치며 집안으로 무작정 들어왔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버린 후 침대에 앉았다.
 
"뭐해, 나갈 준비해야지!"
"어...? 엉?"
"어제 일 기억 안나는거야? 오후 1시에 만나자고 했던거!"
"아...어..."
"빨리 준비해!"
 
그녀는 여전히 잔뜩 삐져있는 것 같았다. 준비하라니 뭘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옷을 던져줬다.
 
"씻고 그 옷으로 갈아입어, 최대한 빨리!"
 
나는 엉겁결에 나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12시가 되었을 무렵 그녀의 도움으로 겨우 나갈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지저분한 머리카락 정리라던가,
옷 매무새를 정리하는 것들을 도와주었다.
 
"다 됐다! 이제 나가자!"
 
나를 도와주는 동안 어느정도 화가 풀린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나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
히키코모리 생활 2년차, 이렇게 갑자기 밖으로 나가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머뭇거리자 그녀는 또 화가난 것 같다.
결국 멱살 잡힌채로 밖으로 끌려나갔다.
역시 열혈캐릭터는 무서웠다.
 
집 밖에 나오니 왠지 겁도 나고 홀가분한 느낌도 들고,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더 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나는 지금 돈이 없다는 것이다. 2만원 정도가 내가 가진 돈의 전부였다.
 
"저기... 나 돈 없는데?"
"상관없어! 돈 없이 갈 수 있는데는 많아!"
 
그렇게 그녀에게 이곳 저곳을 끌려다녔다. 
우선은 근처에 있는 애견샵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구경하러 갔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하는 그녀가 귀엽게 느껴졌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게 잔뜩 있는 곳으로 가자며 전자상가에도 갔다.
다른 미연시 게임을 보고 있으면 조금 화를 내기도 했다. 역시 그녀는 게임 속의 사람인 걸까?
 
누군가와 같이 무엇인가를 한다는 감각은 오랜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무시하고 깔보던 사람들과 달리 그녀만은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즐거워해주고 있다. 오랜만에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녀가 내 손을 잡을 때는 진심으로 기쁘고 두근거렸다. 그녀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일부로 앞만 보며 당당히 걷는 것이 귀엽다.
 
둘이서 돌아다니다가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커피숍에 들어가 둘이서 진지하게 메뉴를 고민하여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저 커플은, 남자가 돈이 많나보네?"
 
그 소리를 듣고나니 화가나기 보다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누가 보기에도 못난 남자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이쁘고 잘난 사람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충격을 받고 말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집에 가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꿈이라면 악몽이 되기 전에 깨어버렸으면 좋겠다.
 
"커피 나왔다. 나가자."
 
그녀는 화난 표정이었다. 그녀는 카운터로 가서 내 몫의 커피까지 들고 왔다.
그리고 나에게 커피를 건낸 후 날 잡아 끌다시피 하며 가계 밖으로 나왔다.
가계를 나오면서 나에게 뭐라하던 사람들을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야, 신경쓰여?"
"그야... 당연히..."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상관 없어. 다른 사람이니까 무슨 소리해도 상관 없다고!"
"그치만..."
"내가 널 좋아하니까 상관 없는거야! 다른 사람한테 잘보여서 뭐할거야! 나 한테만 잘보이면 되는거라구!"
 
그녀는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게다가 길거리 한 가운데에서.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 말, 듣는 나도 부끄럽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부끄러워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이게 뭐야, 첫 데이트인데..."
 
그녀는 소매로 재빨리 눈가를 훔치며 중얼거렸다.
 
"미안."
 
또 사과해버렸다.
 
그녀를 다시 즐겁게 만드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겨우 웃게되었을 때에는 안도와 함께 행복한 기분도 들었다.
 
 
즐겁거나 재미있는 일을 할 때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린다.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저녁이 되어버렸다.
 
"이제 집에 가야지. 오늘은 오랜만에 외출이었으니까 일찍 들어가서 쉬어."
"아...응... 근데.. 집까지 같이 가줄까?"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다. 그녀는 기쁜 듯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따봐."
"응?"
 
그녀는 내 의문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뛰어가버렸다. 그러고보니 그녀가 날 집까지 바래다준 것 같다.
몇 분만 더 걸으면 집이니까 말이다.
 
집에 오니 컴퓨터가 켜져있었다. 나갈 때 끄고 나가지 않은 모양이다.
습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집에 오니 피로가 느껴졌다. 멍하니 앉아있는데 게임이 또 멋대로 실행되었다.
 
'피곤한 모양이네...?'
 
2D화 된 그녀가 화면속에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클릭하니 나는 괜찮다는 멋대로 이야기 해버린다.
 
'그럼 다행이고... 저기 말이야...'
 
그녀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을 했다.
 
'나 내일 시간 되는데 또 만나지 않을래?'
 
yes와 no 선택지가 화면에 떠오른다. 나는 선택지를 클릭하고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왠일인지 게임이 또 멋대로 꺼져버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침대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 대자로 뻗어버렸다. 피곤한 하루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3D 보다 2D가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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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재미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오타 같은건 쿨하게 이해해주세요 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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