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태종실록 33권, 태종 17년 2월 5일 임술 3번째기사 / 안무사 김인우가 우산도에서 돌아와 토산물 등을 바치다
- 안무사(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土産物)인 대죽(大竹)·수우피(水牛皮)·생저(生苧)·면자(綿子)·검박목(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 그곳의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戶]는 15구(口)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김인우가 갔다가 돌아올 때에, 두 번이나 태풍(颱風)을 만나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 2. 태종실록 34권, 태종 17년 8월 6일 기축 5번째기사 / 왜적이 우산도 등지에서 도둑질하다
- 왜적이 우산도(于山島)·무릉도(武陵島)에서 도둑질하였다.
- 3. 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 8월 8일 갑술 1번째기사 / 전 판장기현사 김인우를 우산도·무릉도 등지의 안무사로 삼다
- 전 판장기현사(判長鬐縣事) 김인우(金麟雨)를 우산도(于山島)·무릉도(武陵島) 등지의 안무사(安撫使)로 삼았다. 당초에 강원도 평해(平海) 고을 사람 김을지(金乙之)·이만(李萬)·김울금[金亐乙金] 등이 무릉도에 도망가 살던 것을, 병신년에 국가에서 인우를 보내어 다 데리고 나왔는데, 계묘년에 을지 등 남녀 28명이 다시 본디 섬에 도망가서 살면서, 금년 5월에 을지 등 7...
- 4. 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4월 16일 기유 3번째기사 / 유수강이 영동을 방어하는 일에 대해 조목을 갖추어 상언하다
- 關嶺) 서쪽의 땅. 1. 강릉(江陵) 사람의 말에, ‘우산도(牛山島)와 무릉도(茂陵島)의 두 섬에는 읍(邑)을 설치할 만하니, 그 물산(物産)의 풍부함과 재용(財用)의 넉넉함은, 저목(楮木)·저상(苧 桑)·대죽(大竹)·해죽(海竹)·어교목(魚膠木)·동백목(冬栢木)·백자목(栢子木)·이목(梨木)·시목(柹木)과, 아골(鴉鶻)·흑색 산구(黑色山鳩)·해의(海衣)·복어(鰒魚)·문어(文魚...
- 5. 연산군일기 62권, 연산 12년 6월 7일 을묘 9번째기사 / 대궐 출입자는 우산도 받지 말고, 수종자로 하여금 옷자락도 잡지 말게 하다
- 전교하기를, "앞으로 대궐 안에 출입하는 사람은 우산을 받지 말고, 수종자로 하여금 옷자락을 잡고 다니지도 말게 하라." 하였다.
- 6. 고종실록 19권, 고종 19년 4월 7일 임술 1번째기사 / 검찰사 이규원을 소견하다
- 간죽(簡竹)이라고 합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우산도라고도 하고 송죽도라고도 하는데 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있다. 그리고 또 혹은 송도·죽도라고도 하는데 우산도와 함께 이 세 섬을 통칭 울릉도라고 하였다. 그 형세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라. 울릉도는 본래 삼척 영장(三陟營將)과 월송 만호(越松萬戶)가 돌려가면서 수검(搜檢)하던...
왕도 손도 못댔다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우산도는 사람이 살던 섬이네?
그럼 우산도 그려진 고지도들 갖고 우산도=독도라고 주장하는 건 뭐?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니 무릉 우산 울릉 이 뭐 울릉도가 섬이 두갠가? 뭔가?
도대체 기본적인 사료 조사도 안하고 그냥 우산도=독도 에휴..
그리고 이거 그냥 아무런 무비판으로 믿는 개돼지들...
자국민 속이는 것도 모자라 이걸 갖고 외국인들한테도 보여주니 창피한줄은 모르고 ㅉㅉ
자 이렇게 한국은 왜곡하고 잘못 알고 있는 거 천진데 이건 하나의 단면이다.
이렇게 제시를 하면 제대로 된 증거를 갖고 와서 반박을 해보던지 뭔지 논리적 합리적 이성적으로 반응을 해야 정상이거늘
그냥 수구꼴통들이 하는 것 처럼 똑 같은 꼴통반응들 그러니 개돼지들..
자 내가 숙제 냈다고 했지. 독도=우산도라는 증거 갖고 오면 깍듯하게 예를 갖추마.
댓글 안보니 댓글 달아봐야 허공에 삽질.
본문으로만 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