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웃기는게...
처음 기사가 나고
“집단 자퇴 운동을 벌일 것이다”라는 전국법전원생협회 회장의 말을 읽었을 때,
지방대 로스쿨생이야 자퇴를 해가면서까지 사시폐지를 이뤄낸다면 본전은 뽑는거니까 그럴수 있지만,
인서울을 비롯한 SKY 로스쿨들이야 잃을게 없는데 왜 자퇴를 하겠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오후, 서울대 로스쿨생들이 전원 자퇴를 의결했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힉겁했죠.
있는 놈들이 더하다고, 본인들에게 주어진 권위와 기득권을 위협받자 불같이 일어나서
“대부분 학생들이 사법시험이 유예되는 상황에서는 더이상 학업을 계속할 의미를 못 찾고 있다”며 학교를 때려치겠다는데,
도대체 사시존치가 공부를 할 의미와 직결되는 그 이유란게 속이 너무 빤해서...
로스쿨 처음 도입되고 사시충이니 로퀴벌레니 하며 연수원과 로스쿨 출신중 누가 더 우위에 설 것인가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그 웃긴 구도가 생각나더군요.
제아무리 넘사벽인 서울대 로스쿨생이라도 연수원출신을 이길 순 없는 법.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자신들이 점할 수 있는 정상의 꼭대기를, 그렇게 믿어왔던 자신들의 최고존엄을
이제와서 쪽수도 적은 왠 고시폐인들이 위협한다니 그게 두려워서 도무지 학업을 계속할 엄두가 안나는거죠.
성골이냐 진골이냐의 계급싸움.
그런데 언론을 통해서 본인들의 입장을 내보낼거면 최대한 그 속은 가릴것이지-
명색이 우리나라 법조계를 이끌어갈 미래의 인재들이 취한다는 입장이
자기 손에 쥔 가장 큰 사탕을 혹여 뺏길까 떼쓰는 어린아이들 같은 태도라니...
이래서야 뿔난 여론의 역풍을 맞기밖에 더하겠나 싶더군요.
다만... 저 또한 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이지만, 상담하러 간 저에게 로스쿨 교수라는 작자가 당당하게
"그 학교 출신이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로스쿨이 우리학교 정도가 아니겠냐" 라 말했을때의 무기력감과 모욕감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재수를 해서 들어간 학교지만 전공과 관련해서 결코 무시당하지 않는 학교에 다녔는데...
저만 몰랐을 뿐, 제 출신학벌에 의해 제가 지망할 수 있는 로스쿨의 범위는 이미 정해져 있더라구요.
그런 주제에 사시유예에 반발해서
“로스쿨이야 말로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취약계층을 선발함으로써 실질적인 희망의 사다리이다”
라고 주장하는 저 뻔뻔한 작태가 가히 혐오스럽네요.
변호사협회는 변호사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 일하고, 한의사 협회는 한의사의 수를 줄이기 위해 일한다죠.
맛있는 파이일수록 나눠먹고 싶지는 않은 마음은 알겠는데...
그래도 웃기는건 변함이 없는게.
누군가에겐 정말로 절실한 공부, 교실의 주인들이,
신림동 고시촌에 쳐박혀 매일 열패의식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그래도 책장을 넘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몇 자리를 양보하기 싫다고 집단으로 자퇴를 하겠다네요.
아주 웃기는 꼴이죠.
누군가 내게-
아이들에게 의사가 되려는 이유를 묻는 물음에
더 이상 “사람들이 아픈 걸 고쳐주고 싶어서요”가 아닌
“부모님이 하래요. 글구 돈도 많이 벌잖아요”라고 대답하는 작금의 세상이 참 뻔하면서도 슬프다고 얘기했었는데..
정의와 법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공부하는(혹은 자퇴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정말 좋은 법조인이 될 수 있을까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