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10일) 조선일보 2면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조선일보는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임명된 한상혁 변호사를 “현 정권과 좌파 진영에 가까운 인물로 분류된다”고 하더니 민주언론시민연합을 “좌파 성향 언론단체”라고 규정했습니다.
제목엔 아예 ‘좌파 민언련 대표’라고 했습니다. 저도 오랜 기간 민언련에 회비를 납부하고 있는 회원이긴 합니다만 민언련이 ‘좌파단체’인 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조선일보식 내 맘대로 딱지붙이기 … 근거는? 몰라! 내 맘대로야!
제가 알고 있는 민언련 회원들은 좌파와는 거리가 먼 분들이 대부분인데, 조선일보는 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딱지 붙이기’를 하는 걸까요? 기사를 꼼꼼하게 읽어봐도 민언련이 왜 좌파단체인지, 좌파성향 언론단체인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없습니다.
조선일보에 비판적이면 다 좌파라고 분류를 하는 걸까요? 설마 … 그럴 리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자칭 1등 신문인 조선일보가 그 정도로 ‘쪼잔하다고’ 보진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어떤 이유가 됐든 이런 식의 ‘막가파 딱지 붙이기’는 지양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매번 이런 식으로 ‘딱지 붙이기’를 하진 않습니다. 단체에 따라 다릅니다. 민언련처럼 ‘막가파식’으로 규정을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신중을 기하는 단체도 있습니다. 최근 사례로 보면 ‘서울대 트루스 포럼’이 대표적입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3일 <[단독]서울대 학생들, 조국 사퇴 운동 … “그냥 정치를 하시라”>는 기사에서 “보수 성향의 서울대 학생 모임인 ‘서울대 트루스 포럼’이 서울대로 복직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퇴 운동을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후에도 꾸준히 서울대트루스포럼을 ‘보수 성향 서울대 학생 모임’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서울대트루스포럼을 보수성향 학생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 ‘친북단체’이면 서울대트루스포럼은 ‘친박단체’라고 해야
서울대트루스포럼’과 관련해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보수성향 서울대 학생 모임’이라고 분류하기가 애매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일단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을 잠깐 인용합니다.
“서울대 트루스 포럼은 2016년 박근혜 탄핵 이후 '탄핵반대서울대인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헌법재판소에서 파면으로 인용된 이후 트루스 포럼을 열기 시작하며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탄핵 무효를 주장해왔다 … 김은구 서울대 트루스 포럼 대표는 지난해 10월 광화문 앞 거리집회에서 ‘(북한이) 고정간첩과 정보기관을 동원해 일으킨 게 탄핵사태다’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지난해 5월 대자보에서 ‘민변은 북한의 변호인단(北辯)’이라고 주장했다.” (<조국 비판한 ‘보수성향 서울대생 모임’의 실체> 미디어오늘 2019년 8월6일)
‘박근혜 탄핵무효’를 주장하고 ‘북한이 고정간첩과 정보기관을 동원해 일으켰다’, ‘민변은 북한의 변호인단(北辯)’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대표를 둔 모임을 ‘보수성향 학생들 모임’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저는 조선일보를 비롯해 상당수 언론이 이렇게 보도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봅니다.
재밌는(?)는 건, 윤소하 정의당 의원에게 협박편지 등을 보내 구속된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간부 관련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대진연을 ‘친북단체’라고 보도했다는 점입니다.
<‘택배 테러’ 친북단체 간부 구속> <우파의 백색테러? 잡고보니 친북단체> 등 지속적으로 대진연을 ‘친북단체’로 규정했습니다. 상당수 언론이 대진연을 ‘진보성향 단체’라고 보도한 것과 완전히 다른 태도입니다.
그런데 저는 대진연에 적용한 이런 식의 잣대를 ‘서울대 트루스 모임’에 적용하면 ‘친박단체’라고 하는 게 온당하다고 봅니다. ‘박근혜 탄핵 무효’를 주장하고 지속적으로 탄핵을 부정하는 집회와 발언 등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식의 분류가 무리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절대 서울대 트루스포럼을 ‘보수성향 서울대 학생 모임’이라고 할 뿐 ‘친박단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기사나 제목에서 ‘친북단체’ ‘좌파 시민단체’라고 규정한 조선일보가 상대적으로 근거가 있는 ‘서울대 트루스포럼’에 대해선 ‘친박단체’라는 표현 대신 ‘보수성향 서울대 모임’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씁니다.
조선일보의 이중적인 단체 규정 … 통일된 기준이라도 설정하길
왜 그런 걸까요? 제가 출연하고 있는 KBS 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진행자인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는 “보수 성향의 학생들이라고 하면 ‘일반 학생’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니까 ‘정치색이 강한’ 학생이 아니라 ‘일반적인 학생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겁니다.
실제 조선일보가 그런 점을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과 비교했을 때 ‘서울대 트루스포럼’에 대한 조선일보 시각은 매우 신중하다는 겁니다. 기왕이면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게 어떨까 – 이런 제안을 드립니다.
‘서울대 트루스포럼’에 적용한 기준을 다른 단체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든지 아니면 ‘대진연’과 ‘민언련’에 적용한 기준을 ‘서울대 트루스포럼’에 적용하든지 –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얘기입니다.
누군가 과거 조선일보 지면을 인용하며 ‘친일신문’이라고 규정하면 조선일보는 수긍하시겠습니까?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