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를 친구랑 극장에서 봤는데
잔인한게 정말싫어서 눈 찔끔거리면서
내용도 잘 이해못하고 봤었죠.
오늘 시간이 남아서
다운받아 다시 봤는데 숨겨진 의미들이 많이 있더군요~
그리고 네이버에 베스트리뷰가 있는데
이렇게해석할 수 있구나 감탄이 들더군요.
이거 시나리오 쓴 사람이 아닐지;
리뷰
http://movie.naver.com/movie/bi/mi/reviewread.nhn?nid=2919600&code=91031
오랜만에 본 '깔끔한' 영화였다. 뺄 것이 없는 상태가 완전한 상태라고 했던가, 적어도 이 영화는 뺄 것 없는 영화였다.
이 둘에게 신세계란 '범죄 단체가 없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도 골드문을 해체시켜봤자 또 다른 세력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로젝트 명, '신세계'. 그러나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둘의 신세계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그려져있지 않다.
범죄 조직을 그들의 '관리'안에 둔다는 것은 좋은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수단에 있어 그들은 정당했는가? 아니, 적어도 인간적이었는가?
목적에 있어서 그들은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수단에 있어서는 '믿음'과 '의리' 같은 인간미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의 달성을 위한 기계적인 장치를 몇 겹이나 심어두었고, 심지어 자성의 아내까지 감시역을 만들어 두었다.
'이번만'이라는 약속을 몇 번씩이나 우려먹으면서, 스스로도 답할 수 없는 물음을 가지고 고기도 없는 낚시장에서 낚지도 못할 낚시질만을 계속 해대었다.
강과장도 사실은 확신이 없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의 부여와 합리화로 움직였지만, 그는 그 일을 그만두길 원했다. 사표는 이미 제출했었고, '이 일만 끝나면' 그만두기를 원했다. 담배도 끊었다. 그가 바라는 신세계는 자신의 일과 정당성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바둑의 백색을 쥔 그들에게 신세계는 없었다.
이중구(흑) 및 이사들
범죄조직이지만, '의리'로 뭉쳐있는 듯 보이는 골드문. 그러나 석회장이 죽었을 때 누가 슬퍼했는가?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이중구가 의사의 멱살을 부여잡고 발발 뛰었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누구도 그를 죽일 수 있었다.
이중구는 감옥에서 강과장의 제안이 쥐약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이고 결국 칼춤을 벌린다. 감옥에서 무혐의로 풀려났을 때, 그를 맞으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천하의 이중구가...' 결국 그는 담배 한대를 피우며 화려해 보이지만, 완공되지도 않은 공사판에서 추락한다.
권력을 얻기 위해 강과장과 야합했던 장이사의 최후도 비참하다. 다른 이사들은 눈치 보며 어디로 붙을지만 궁리한다. '인간미'라, 그런 것들은 여기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중구와 이사들, 그들에게도 신세계는 없었다.
그래서 정청에겐 이자성이 늘 편하다. 잘 반응해주지도 않는 이자성 앞에서, 정청은 유치한 장난과 행동을 계속해서 해나아간다. 마치 요즘 멀어져가는 듯한 이자성이 섭섭하고 불안하다는 듯이.
최근 이자성의 표정이 좋지 않고 뭔가 불안해한다는 것을 정청은 그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 8년 전부터 함께 하던 사이가 아닌가. 그것은 그의 '신세계'를 지키기 위한 불안감의 표츌이기도 했다.. 그는 회장 자리를 노리지도 않았고, 비열한 수법으로 누군가의 뒤통수를 치지도 않았다.
자성이 경찰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죽음 앞에서 그는 다 안다는 듯이 형의 역할을 다하며 동생에게 '독하게 살라'고 권한다. 욕 한마디, 원망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왜 날 속였냐!'는 배신감에 분노하지도 않는다. 이자성을 향한 정청의 애정은 그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이자성은 바둑을 잘 하지 못한다. 그의 바둑 실력은 늘지 않았다. 그는 '백의 역할'이나 '흑의 역할'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강과장은 그에게 끊임 없이 '넌 경찰이야!'라는 정체성을 주입시킨다. 네가 백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정체성에 확답하지 못한다. 진짜 자신이 누구인가? 그는 접선책인 바둑 선생에게 감정적으로 묻는다. "나도 같은 경찰인데!"라며,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 것에 대해 화를 낸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는 그의 괴로움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바둑판을 깨버린다.
그렇다. 신세계는 바둑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백이라는 경찰에도, 흑이라는 깡패에도 신세계는 없다. 자신의 신분, 자신의 직업, 자신의 역할이란 것에 신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은 <부당거래>나 <악마를 보았다> 등의 영화에서 끊임 없이 백의 역할을 하는 자들과 흑의 역할을 하는 자들을 대비시키나, 그들은 결국 한 접점에서 만날 뿐, 근본적으로 그다지 다르지 않아보였다.
이자성은 단 한 번만 웃었다.
이자성은 단 한 번만 웃었다. 그것이 언제였는지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감독은 정청, 이중구, 장이사, 강과장, 고국장이라는 모든 바둑판을 깨버린다. 이자성을 왕좌에 올려놓은 후, 6년 전 정청과 이자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신세계는 오직 여기에 있다."
그들이 선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사시미를 들고 가서 한바탕 하고 나왔을 뿐이다. 피 때문에 담배에 불도 붙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이자성은 영화에서 단 한 번 크고 행복하게 웃는다. 아내 앞에서도 그런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체성의 갈등을 하고 있었던 현재 시대에도 정청 앞에서 그렇게 웃지 못했다.
정청이 그리워 한 것은 그 웃음이었다. 이사들이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정청은 늘 그 시절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범죄와 악행을 정당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찰이나 범죄조직이나 다를바 없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무엇이 더 나은가를 묻는다면 당연히 경찰이다. 그러나 영화의 초점은 그곳에 가 있는게 아니다. 진짜 행복, 삶을 생기있게 만드는 무엇인가는 백이냐 흑이냐 하는 신분이 아니라 '브라더'라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정청은 이자성에게 가짜 롤렉스 시계 2개를 남긴다.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 그가 경찰이었고 가짜 신분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또한 이자성이 진짜 자신의 '브라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눈감아 주었고, 대놓고 뽀로로가 그려진 가짜 시계 2개를 남겼다. 부끄러워 하지 말고, 미안해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담배가 없어도 신세계는 있다.
담배는 몸에 해로운, 그러나 끊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삶이 되어 버렸기에 늘 피우며 산다. 거기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 강과장은 담배를 끊었다. 실패자가 된 이중구는 끝내 이루지 못한 마지막 담배를 피었다. 이자성은 왕좌에 올랐지만, 불꺼진 회장 자리는 고독해보인다. 남겨진 형님의 시계를 보며, 그는 여전히 담배를 피었다.
이자성은 행복한가? 나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여전히 담배를 피고 있으며, 그가 진정한 그의 신세계를 깨달았을 때, 그 대상은 죽었다.
6년 전, 정청과 이자성의 담배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했다. 거기에 신세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담배가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인가? 감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백이나 흑의 신분 따위가 행복을 주지 않는다. 돈과 권력도 행복을 주지 않는다.
담배 따위 꼭 필요하지 않다. 담배가 없어도 신세계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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