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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와 한국식 로스쿨
게시물ID : sisa_11357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유와고독
추천 : 0/20
조회수 : 144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8/19 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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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조국 교수를 싫어하는 이유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조국 교수를 고시생 모임이 이영훈 교수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는 뉴스를 봤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국 교수를 싫어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사법시험이나 법조인의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런 것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법학처럼 시시한 학문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법시험을 준비했거나 양심적인 법학 교수들의 입장에서는 조국 교수를 싫어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조국 교수가 존경 받을 점은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는 진보적 지식인으로 활동해 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법학전문대학원, 소위 로스쿨 문제에 관해서 그는 로스쿨 교수의 입장에서 당연히(?) 찬성의 입장을 보여 왔다. 그런데 문제는 정의와 공정성의 관점에서 엄밀히 따져 보면 현재와 같은 로스쿨 제도는 논리적으로 그 정당성이 빈약해 보인다는 것이다. 평소 개인의 기본권 보장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사람이 막상 자기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관해서는 정당성 없는 기본권 억압에 동조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기형적 로스쿨 제도

사실 한국의 로스쿨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겹겹의 규제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은 로스쿨 정원과 합격 인원에 관한 규제가 없거나 약하다. 일본의 경우 예비 시험을 통과하면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사법시험에 응시해서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알다시피 입학정원, 합격 인원, 변시 응시 자격, 심지어 응시 가능 기간과 횟수까지 규제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이토록 기형적인 로스쿨 제도를 만들었을까? 왜 우리는 이토록 변호사 선발 제도를 꼼꼼하고 세밀하고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을까?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관련 이익집단들의 이익을 철저히 배려한 결과다. 변호사 업계의 이익을 위해서는 합격률을 규제해야 한다. 로스쿨과 교수진의 위상 추락을 방지하고 경쟁 압력, 즉 로스쿨의 효용성을 입증해 보이라는 압력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로스쿨이 변호사 배출을 독점해야 하며 정원을 통제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조국 교수가 속해 있는 한국의 기득권 집단과 지식인 사회는 미국이나 일본인들에 비해 확실히 똑똑하다. 실제로 한국의 로스쿨과 교수진은 일본에서 겪고 있는 것과 같은 로스쿨의 위상 추락 문제를 겪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한국 지식인들의 사익 추구 능력에서의 우량함은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은 불량하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로스쿨 제도의 명분, 그러나 결정적인 약점

물론 한국의 헌법재판소나 로스쿨 찬성론자들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명분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면 수준 높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 필요하다거나 이른바 고시낭인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가 그것이다. 나는 이것들도 허구적인 것으로 사후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보지만 여기서 그 점을 일일이 지적할 필요가 없다. 딱하게도 그들의 논리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로스쿨의 필요성에 관한 그들의 주장을 모두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로스쿨이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해서 그것을 통해 법조인을 배출하기 위한 명분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반드시 로스쿨 수료자에게만 사법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수준 높은 체계적인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 필요하면 로스쿨을 설립해서 교육을 시키면 된다. 하지만 로스쿨 이수자에게만 변호사 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해야 하는가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로스쿨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로스쿨 교육을 받지 않으면 사법시험을 통과한 경우에도(!) 법조인으로서의 자질에 부족함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무리한 주장이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기존의 법조인들, 당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본인들부터 그 자질에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로 인해 한국식 로스쿨 제도는 정당성 확보에 실패하고 만다.

고시낭인 정말로 문제인가?

물론 고시 낭인 문제는 논리적으로 응시 자격 제한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설득력이 없다. 우선 변호사를 충분히 배출해서 자격증이 더 이상 극적인 신분 상승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면 자연히 해소될 문제다. 이것이 공공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물론 업계가 결사반대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결국 변호사 집단이 손해를 볼 수는 없으니 너희들의 기회를 박탈해야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도대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허비하고 있었는지, 그로 인한 손실은 정확히 얼마나 되며, 과연 그 정도 손실이 수많은 개인의 중대한 기본권을 제한해 가면서까지 해결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회 문제라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해, 별 다른 검증조차 시도된 적이 없다. 쉽게 말해 아무런 사실적 근거도 없이 편견에만 기댄 주장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고시낭인 문제는 정말로 그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기보다 사람들의 반감을 자극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언론에서 흔히 표현하듯이 “골방에 틀어박혀서 법전만 달달 외우는 인간들”은 대중에게 이기적인 모습으로 이미지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영달과 출세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대중이 공감과 동정을 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개인적인 공감 여부에 따라 입장이 좌우된다면 그는 지성인이 아닌 것이다. 당신의 기본권 역시 그런 방식으로 박탈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조국 교수에 대해

실제로 어떤 입장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조국 교수가 고시 낭인 문제가 기본권 제한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실로 의외일 것 같다. 평소의 그는 기본권 보장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로스쿨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개인의 자기운명 결정권을 그처럼 경시하고 권위주의적으로 보이는 입장에 찬동한다는 것은 분명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한국식 로스쿨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노골적인 형태의 집단이기주의의 산물로 보인다. 한 마디로 말해 너무 뻔뻔하다. 양심적 지식인이라면 찬성하기 힘든 형태인 것이다. 이 점을 들어 조국 교수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나쁘게 보지는 않고 있다. 사람이 자기 이해가 걸린 문제에 관해서 철저하게 비판적이고 냉철한 성찰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조국 교수의 경우도 그런 경우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출처 https://blog.naver.com/novushomo/221618616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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