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노잼 경험담이지만 그나마 제가 겪은 일 중 가장 무서운 경험이네요..... 주변 사람들한테 몇 번 이야기해준 적이 있어 약간 각색했습니다.
요새는 야근을 해도 효율이 오르지 않고 지쳐서 금방 집에 가지만 1년 전에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할 일도 그다지 많지 않으면서 막연히 남아 밤중에 퇴근하곤 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칼퇴근하는 분위기라 늦게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우리 부서에서는 거의 항상 나 혼자만 남는다.
우리 사무실은 건물 제일 구석 복도 끝에 있는데, 맞은 편에 교류를 전혀 하지 않는 부서가 하나 있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고 그냥 일이 겹치지도 않고 정말 어쩌다가 서로 사소한 부탁하는 데면데면한 관계일 뿐이다.
아무튼 금요일 아침에 보니 그 부서 사람들이 워크샵을 가는 모양이었다. 별로 관심이 없어 그러려니 하고, 그 날도 하루종일 일을 했다. 그런데 늦게까지 해도 일을 마무리 지을 수가 없어 토요일도 출근을 하게 됐다.
우리 회사는 일요일은 문을 잘 안 열어주고, 나오는 사람도 거의 없어 주말근무를 해도 토요일에만 나온다. 토요일도 평일에 비하면 문을 빨리 닫기 때문에 7-8시면 건물에서 나가야 했다.
경비 아저씨가 8시쯤 올라와 문을 닫아야 하니 나가라고 재촉을 해 짐을 챙기고 나왔더니, 이미 모든 사무실과 복도의 불은 센서등마저 꺼져 있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아저씨는 손전등을 갖고 있지 않으셨는데, 마지막으로 켜져있던 우리 사무실 불까지 꺼지니 멀리서 보이는 엘리베이터 전광판의 불빛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경비 아저씨는 어둠에 슬며시 겁을 먹은 나를 아신건지, "아가씨가 마지막이에요. 셔터도 다 내렸으니까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면 돼요" 하고 가자고 하셨다. 뒤따라 오는 아저씨의 기척을 느끼며 더듬더듬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데, 복도를 거의 다 지나쳤을 때쯤 돌연 아저씨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지나온 쪽을 향해 "거기 누구요?" 하고 말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경비 아저씨는 아랑곳 않고 재차 "거기 누구냐니까?" 하며 어두운 복도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에 갸웃하며 나에게 "아가씨, 저기 사람 있는 것 같은데? 안 보여?" 하고 묻는데, 정말로 불빛 하나 없는 어둠에다가 나즈막히 웅웅대는 전기 소리밖에 들리지가 않았다. 우리가 나온 쪽은 분명 복도 끝이고,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아무도 없었던 것을 확인했을텐데 누군가 있는 것 같지 않냐며 계속해서 물어대는 아저씨가 이상해보이기까지 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무슨 사람이 있어요. 누가 있으면 나왔겠죠. 가요, 아저씨."
무서워서 굳은 몸으로 혼자서는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저씨를 재촉해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아저씨는 어둠 속을 보려는 듯 몸을 이쪽저쪽 움직이다가 결국 다시 복도를 되돌아가며 복도등의 스위치를 켰다.
그리고 복도 끝에는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작지 않은 덩치인데, 우리 부서 반대편 사무실 쪽으로 몸을 향하고 자신에게 걸어오는 경비 아저씨를 쳐다봤다. 경비 아저씨는 "거기서 뭐해요? 빨리 나와요. 건물 잠궈야 돼요" 하며 능청스럽게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남자에게 뭐라고 불평을 했고, 남자는 대꾸도 없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아, 사람이 있었구나. 그 어둠 속에서 아저씨도 대단하시네.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 남자와 둘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회사를 나와 걷다보니 남자는 사라졌고 나는 전철에 올라탔다.
아까는 단순히 어둠이 무서워 굳었던 머리가 천천히 돌아가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왜 몇 번이고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그 어둠 속에서? 하는 단순한 추리에서부터 기억이 서서히 떠올랐다.
우리 부서 사무실은 복도 끝이고, 내가 나왔을 때는 분명 불켜진 곳은 아무데도 없었고 복도에는 경비 아저씨밖에 없었다. 경비 아저씨도 분명 건물을 다 둘러보시고 내가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디서 나온걸까? 반대편 사무실에서? 굳이 불을 끄고 아무 소리 없이?
금요일 아침 부서 단위로 워크샵을 떠났는데, 굳이 토요일 저녁에 회사에 찾아온 이유는 뭐란 말인가?
의심하고자 하면 끝도없이 의심스럽지만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나는 그저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를 조금 무서웠던 일화로 기억 속에 미뤄놨다. 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남아 일할 때는 항상 이중으로 문을 잠그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