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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국에 분노하는 젊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한 수입니다.
게시물ID : sisa_11375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름다운외곽
추천 : 11
조회수 : 187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9/08/29 18:18:23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사십야전병원(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혼란한 시국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 좀더 자신을 성찰하며 지혜롭게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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