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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남편의 취미]라는 글을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이 관심가져 주시고 즐거워해주셔서 매우 기뻤다.
최근에 소재거리가 생긴 이유로 이어 글을 쓰려한다.
이전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남편의 취미]에서는 내 남편의 이해하기 어려운,
가성비의 새 타블렛을 구매하여, 공들여 최적화해놓고 주변기기까지 구비한 이후 그것을 고이 보전하다,
중고가치가 하락할대로 하락하면 주변기기까지 모두 포함하여 저렴하게 판매하는
그런 매우 심오하고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취미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요즘엔 그 심오한 취미가 잠시 휴식기에 이르렀는데 그 모든 공은 아이패드 프로 2에게 돌리고 싶다. ㅠㅠ
2.
사실 되짚어 보자면 모두 내 탓이었다.
나는 왜 대체 남편 손을 잡고 프리즈비에 들어간 것이었을까.
남편은 마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쇼핑몰을 매우 싫어한다. (일렉트로마트 제외)
사람이 많고 물건도 많으며 뭘 사야할지도 모르겠는데 가격 비교도 쉽지 않고 시끄럽고 사람들이 계속 길을 막으며 그 와중에 끊임없이 이동해야하는 것 모두 싫어한다.
그리고 마트는 그 모든것이 종합되어있는 곳이다.
마트에 들어가는 순간 남편은 뇌는 끄고 시선은 저멀리에 두고 내가 끄는 카트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오프라인모드가 되어있는 남편이 온라인이 되는 순간은
결제할때와 맥주코너, 즉석요리코너 그리고 전자기기 코너를 지날뿐인데,
보통 오프라인이 되어있는 남편이 중간에 예상치 못한 에러로 따라다니기가 풀려 미아가 될때면 맥주코너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잘 찾을 수 있다.
필요한 목록을 적어두고 스피드 쇼핑을 하는 나에게도 가끔은 무계획적인 지출이나 꼼꼼한 가격 비교가 필요할 때도 있다.
비슷한 용도의 혹은 비슷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혹은 다른 용도지만 두 제품관의 교집합이 있을때에 이곳저곳 왔던 곳을 다시가고
두 물건을 집어 비교하다가, 다시 마음을 바꿔서 다시 가져다 놓는다던가의 꽤 많은 반복이 있을때도 있는데,
이러한 활동은 남편에게 치명적인 버그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탁아소에 맡기는 기분으로 전자기기 코너에 데려다 두고,
장보고 있을 동안 놀고있으라고 하면 반시간은 거뜬히 볼멘소리 없이 잘 있는다.
그날은 IFC몰에서 옷쇼핑을 위한 가격비교를 좀 심하게 한 날이라
남편에게서 심각한 발열현상이 생기는 것을 목격하고 잠시 프리즈비에 들어가서 쿨링을 시켜주고 있었다.
그리고 내 입이 방정이지,
남편이 그토록 사고싶어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대신 새로운 컴퓨터 본체를 얻게했던 그 문제의 아이패드를 발견하고
"오빠가 사고싶어했던 그게 바로 저거였어?"
라는 정말 어리석기 이를 데 없는 소리를 했던 것이었다.
남편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거리며 갑자기 방언이라도 터지듯 (나는 관심 별로 없는) 기기의 기능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하기 시작했고
남편의 말을 대충 장단맞춰 주면서 애플펜으로 그림판에 끄적거렸는데 꽤 재미있었기에 이 기계가 흥미롭긴 하다는 사실엔 동의했다.
그리고 남편의 아이패드 앓이가 다시 시작되었다.
3.
남편이 아이패드를 사고싶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나는 아이패드는 안사기로 합의한 것이 아니냐며 지금 컴퓨터 본체는 어쩔건지에 대해 물었다.
남편에게 본체를 다시 팔고 아이패드를 산다면 모를까 아이패드 가격만큼 본체도 새로 맞췄는데 아이패드도 산다면 취미생활에 너무 큰 지출이라며 반대를 했다.
남편은 절대로 본체를 팔생각도 없고 아이패드도 자신의 돈으로 다 살수있다며 큰소리를 치더니 중고나라를 켰다.
그리고 비통한 마음으로 책상앞에 전시된 타블렛들을 고이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 박스를 위한 박스에서 해당 타블렛의 박스를 꺼내
하나하나 전시하더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모아둔 상품의 뽁뽁이를 꺼내 마치 아기 배넷옷 싸듯 고이고이 싸서 집에서 제일 좋은 쇼핑백에 넣어둔다.
그 모든 과정이 어찌나 경건한지 마치 기도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다음 집에서 사랑받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뽁뽁이 방울방울마다 가득 담긴 기분이었다.
남편이 중고나라에 글을 올리면 보통 3분이내에 문자가 5통은 온다.
[팔렸나요?]
분명 글을 밤 11시는 넘는 시간에 올리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연락하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항상 제일 처음 연락주는 사람에게 판다.
이후의 사람이 5만원 더 줄테니 팔라해도 항상 의리있게 첫 연락에게 판매하고 불발되는 경우엔 정확히 두번째 사람에게 연락을 준다.
가끔 불발되면 연락 달라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대체적으로 첫 거래에서 끝이난다.
대체적으로 주말에는 글을 올린지 30분 내외로 직거래가 성사되고 날이 춥거나 비가 오면 그 다음날 거래가 성사된다.
파는 사람도 참 신기하지만 사는 사람도 참 신기한 심오한 중고나라다.
인터넷 글같은데 보면 사기꾼도 많은데 잘 팔고 잘 사는 것을 보면 꼭 그런것은 아닌것 같기도 한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살펴보며 남편 책상위의 타블렛들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남편은 그 과정과정을 침울하고 비통해했지만 남편의 모니터에서 반짝이는 아이패드 2가 그 모든 고통을 잊게해주는 것과도 같았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내 머릿속에 들은 생각은 단 하나였다.
'그래도 그 돈 안나올텐데...'
남편 책상위에 타블렛이 세개가 남았을때 남편의 손은 멈췄다.
나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 그것들은 안팔아?"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이것들은 아직 팔수없다고 했다.
하나는 서핑용 (그럼 새 컴퓨터는?) 하나는 게임용 (그럼 새 컴퓨터는?) 하나는 포터블 컴퓨터 대용이라고 했다 (그럼 집에 있는 노트북은?)
있는 것들을 다 팔아도 아이패드를 사기 위해선 턱없이 모자른데, 과연 어떻게 살것인지 나는 매우 흥미진진해졌다.
그리고 남편은 다시 중고나라를 켰다.
4.
중고나라를 몇날 몇일 애타게 바라보던 남편은 어느 주말, 카페에서 빵 터지더니 이 사람 좀 보라고 했다.
(데이트 하러 나와서 중고나라를 보고있었냐.)
내눈으로 보고도 매우 충격적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아이패드를 종류별로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사람이 올린 글의 히스토리를 보자니 참 재미있었다.
기알못인 내가 옮기긴 좀 힘들지만 그 사람이 올린 글은 과거부터 대략적으로
아이폰 OO 화이트 팝니다.
아이폰 OO 블랙 팝니다
아이패드 1 버전 OOO, OOG, Wifi 블랙팝니다
아이폰 2 OO 화이트 팝니다. (다음버전?)
아이폰 3 OO 블랙 팝니다. (숫자랑 색이 다름)
아이패드 1 버전 OOO, OOG, LTE 블랙팝니다
아이폰 4 OO 화이트 팝니다
아이패드 2 버전 OOO, OOG, LTE 화이트 팝니다 (숫자와 칼라가 다름)
모든 기계가 미묘하게 숫자가 다르거나 색이 다르거나 LTE나 Wifi 가 다르거나 했다.
이렇게 이어져서 최신글에는
아이패드 프로 2만 숫자와 색(실버, 스페이스 그레이, 골드), 그리고 Wifi/LTE (렌덤으로 둘중 하나)가 다른 버젼으로 4개정도 동시에 팔고있었다.
마치 애플사의 장대한 역사책과도 같은 그 판매기록을 바라보면서 혹시 업자인가 싶어서 기존 게시블을 몇개 클릭해봤지만, 업자라고 치기엔 판매 글이나 사진의 배경이 개인이 사용하던것을 파는 것 같았다.
이사람은 과연 무슨 사람인가 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히스토리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나는 남편의 판매 역사 역시 궁금하여 남편이 쓴 게시글을 클릭했는데,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빵 터졌던 그 애플 팬의 판매 히스토리에 못지 않게 남편도 각종 핸드폰과 타블렛 그리고 타블렛 주변기기을 많이도 팔았구나 싶었다.
( 남편의 게시글을 보며, 아 이건 그때 그 집의 현관앞 장판이구나 하며 감상에 빠져있자, 남편은 자신의 글은 부끄럽다며 읽지말라고 했다)
나는 중고나라는 믿을 수 없으니 돈 조금 더 주고 새거사라고 간곡히 이야기했지만,
어쨋든 남편은 그 다음날 그 제품을 사겠다고 무려 왕복 3시간 40분에 육박하는 곳을 다녀왔다.
(나중에 남편도 너무 궁금해서 왜 같은 제품이 그렇게 많이 있는지 물었는데,
자신이 구매해 쓰던것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 살고있는 형과 그 친구가 최근에 사용하던 것이라 했다. 형이 팔아달라고 했고 본인도 곧 미국 가서 다 판다고.. )
5.
남편의 비상금이나 용돈의 사용에 대해선 매우 노터치인 나지만,
남편이 판 타블렛의 총액과 예상하는 비상금의 액수, 현재 용돈 잔액등을 계산해볼때 그래도 50만원정도가 비는 것이었다.
항상 30만원을 모았을 즈음해서 새 타블렛을 구매하는데 최근에 구매한 타블렛의 시기부터 역으로 계산해도 아무래도 그 액수가 안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매번 용돈을 바닥까지 긁어서 통장 잔고를 천원 이하로 만드는 남편의 능력을 감안할때 무려 50만원이나 비상금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고 기특하기 까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대체 그 50만원을 어떻게 모았을까 계속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몇날 몇일 고민하다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하고 남편에게 어떻게 50만원을 모았는지 물었다.
남편은 가볍게 "OO통장에 있던데?"라고 답했고
나는 당황하며 "그돈은 4개월 후 나갈돈이라 어디 안묶어두고 잠시 그곳에 넣어뒀는데? 오빠한테도 말했었잖아?" 라고 말했다.
남편의 동공은 진도 7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 내가 모아둔 돈아니었어? 인터넷 바꾸면서 받은 돈이랑, 카드발급하면서 받은 돈이랑...남은 줄 알았는데."
" 에이, 괜찮아~ 그때까지 다시 채워넣음되지. 한달에 10만원씩 넣음 되겠네~"
남편은 슈렉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단호한 내 표정을 보더니 차마 시무룩해졌다.
" 하긴 1년전에 받은 돈이 아직도 이렇게 남아있을리가 했었는데..."
6.
아이패드는 지금 타블렛들이 전시되어있는 자리에 전시되어있다.
구매하자마자 어찌저찌하면 펜을 싸게 산다고 한참 고생해서 애플 펜을 사고는 한 일주일 쓰는가 싶더니,
어디 가져가면 휠수도 있다며 가지고 다니지도 않고 기스날수도 있다며 케이스에 파우치까지 구매하더니 그 파우치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반년이 다되도록 새로운 타블렛 생기지 않고있다.
아마 아이패드 때문인듯 싶다.
아이패드 파우치에 쌓은 먼지를 닦으며 이 것을 얻기까지의 남편의 고생을 떠올리며 나는 조금 복잡미묘한 기분이 든다.
최근에는 아는 동생이 남편이 가지고 있는 미패드인지 하는걸 사고싶다고해서 15만원인가에 팔려했다가
이미 단종되서 구하지도 못하는데... 라며 차마 못팔았다. 중고가 한 5만원 되면 팔려나싶다.
결론적으로 남편의 지갑은 요즘 빈곤하다.
남편에게는 50만원 채워넣으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후로부터 남편에게 매달 10만원 이상씩 현금으로 추가로 주고있다.
1~2주에 한번씩 주중에 5만원씩 빳빳하게 준비해서 주는데, 남편은 이 돈을 10만원씩 채워넣느라 용돈이 빈 만큼 사용하라는 내마음을 아는지는 모르겠다.
어제는 남편이 퇴근하면서 빵을 2만원 어치 사왔다 ....
.. (돈 없다며 어째서;)
.....
....
아이패드 가지고 싶은 남편의 저 마음 이해할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어렵습니다.
뭔가 귀여우면서도 짠하면서도 좀 답답하기도 한데,
사실 뭘해도 남편이 사랑스러우니 괜찮아요.
그래도 가끔은, 타블렛 묵혀서 싸게 파는 취미는 없앴으면 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