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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쿠달스 폰 엠프트넥틈
게시물ID : humorbest_1138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an유글레나
추천 : 26
조회수 : 2975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5/11/16 16:08:08
원본글 작성시간 : 2005/11/13 20:12:14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2&dir_id=20201&eid=4v65G0KJymGJ7v0aJ9Hv7nzyRgnYp9qB&ts=1131730043

-_-)

cyworld.co.kr/munchu

-들쿠다스가 뭔가 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초보 마재윤)

-들쿠다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차상두 김상우)

-들쿠다스 폰 엠프즈넥틈 (```` 전상욱)


이름: dlqudals von emfznekftm 

한국식 표기: 들쿠달스 폰 엠프즈넥틈
-emfznekftm에 대한 발음에서 엠프즈넥틈과 엠프즈넥프틈, 엠프스넥틈, 엠프쯔넥틈,엠프츠넥틈 등 기타 여러 발음이 있었으나 로마법 표기에 의거하여 엠프즈넥프틈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현지인들의 정확한 발음을 알아본 결과 엠프즈넥프틈에서 '프'자를 거의 묵음 처리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엠프즈넥틈으로 표기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1986년생, 만 19세

작위: 백작
-들쿠달스는 만 19세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릴적부터 마상, 양궁, 펜싱등 스포츠는 물론 만 8세의 나이에 괴테의 모든 문학을 섭렵했으며 특히 파우스트를 감명깊게 읽었다고 합니다. 또한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 태생 답게 음악 및 기타 예술에서도 천재적 역량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러한 뛰어난 머리를 바탕으로 'GG도 예술이다' '깐따삐아는 아무나 가나'를 거쳐 '리콜'이라는 희대의 명작을 만 16세의 나이에 쓰고 '리콜'이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비록 왕조 시대는 사라졌지만 정부 및 시민들에게 백작이라는 칭호를 추대받게 됩니다. 또한 한국 이스포츠계에 뛰어들면서 이스포츠의 대표적 종목인 스타크래프트에서 준우승을 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친 결과 후작으로 추대받았지만 들쿠달스는 어린 나이에 백작이란 작위도 과분하다며 후작의 작위를 사양한 결과 현재 백작이란 칭호를 받고 있습니다.

ps: 원래라면 들쿠달스 뒤에 백작이란 칭호를 붙여야 되지만 워낙 들쿠달스가 소탈하여서 공석이 아니면 평민들과 함께 잘 어울리기 위해 경어체를 쓰지 말라고 몇번이나 당부했습니다. 그래서 들쿠달스의 겸손한 정신을 받들어 들쿠달스라고 칭하겠습니다.

국적: 오스트리아(Austria) 잘츠부르크(salzburg) 태생
-들쿠달스가 스페인 계열의 이름과 흡사하다고 해서 헷갈리면 안됩니다. 들쿠달스는 순수 오스트리아 사람입니다. 독일사람도 아닙니다.(비록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언어, 문화적 측면에서 많은 유대를 지니지만 엄연히 다른 국가입니다)


별명: qodal(한국식 표기:쿠달)
-참고: 쿠달이라는 별명은 엠프즈넥틈가에서 들쿠달스를 친근하게 부를때 쓰는 말입니다.


가문: emfznekftm家
-엠프즈넥틈가는 사실 유래깊은 독일의 명문 가문으로 신성로마제국을 세울 때 dlqdudals emfznekftm가 큰 공을 세움으로써 귀족의 작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카노사의 굴욕때, 엠프즈넥틈가가 하인리히4세의 편을 들었다가 큰 낭패를 보게 되고 그 후 엠프즈넥틈가는 교황청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6세기에 들어 구교 카톨릭의 타락에 루터가 종교개혁을 부르짖었고 이를 작센 공 프리드리히가 도움을 줬을 때, 엠프즈넥틈가에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프리드리히를 지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당시 엠프즈넥틈가의 수장이였던 dlqusald von emfznekftm와 루터와의 관계가 상당히 돈독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19세기 무렵 신성로마제국은 여러 국가로 갈렸고 그중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가장 강력한 국가였는데 프로이센이 철혈재상 융커집안 출신인 비스마르크를 앞세웠고 평화를 선호하던 엠프즈넥틈가는 비스마르크를 강력히 반대하다가 비스마르크파에 밀려 당시 엠프즈넥틈가의 수장이었던 flqodal von emfznekftm는 백작의 작위를 내려놓고 시골로 가문을 옮기게 됩니다.
그 후 1차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독일이 패전국으로 몰락한 후 바이에른 공화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이 때 당시 가주였던 bangmi von emfznekftm는 공화국 대통령의 절친한 대학 동기사이로 정치 전면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많은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치의 히틀러가 등장하고 bangmi von emfznekftm는 그에 강력하게 반발하다가 공산당이라는 누명을 쓰게 당하게 됩니다. 이에 엠프즈넥틈가는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지방으로 정든 독일의 쾰른 지방을 떠나게 됩니다.
이 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때, 들쿠달스의 증조부였던 thqod von emfznekftm는 언론인으로 강력하게 나치에 저항하였고 결국 나치에게 잡혀 교수형을 당할 처지에 놓였으나 당시 사형집행관이던 사람이 thqod의 당당한 위품에 반해 자신이 대신 밧줄을 매고 몰래 thqod을 풀어주게 됩니다. 그 후 엠프즈넥틈가는 2차세계 대전이 끝날때까지 같은 박해를 받았지만 결국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thqod는 후작의 작위를 받게 됩니다. 이 후 엠프즈넥틈가는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지방에 머무르면서 지역민과 국가의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오게 된 계기: 어느날 들쿠달스는 서점에서 우연찮게 박경리의 토지라는 작품을 접하게 되고 동양의 작은 국가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때부터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혼자 한국어를 익히셨고 그 후 한국 문학과 전통, 역사를 습득하면서 더더욱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한국의 매력에 푹 빠진 들쿠달스는 집안의 반대를 뿌리치고 낯선 국가 한국으로 홀홀 단신 오게 됩니다. 이는 과거 이승만 박사에게 홀홀단신으로 시집을 온 오스트리아 인 프란체스카 여사 못지 않은 결단이었습니다.


한국이름: 이병민
-이병민에 대한 이름도 깊은 유래가 있습니다. 들쿠달스는 한국에 입국하면서 우연찮게 공항에서 뉴스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군대에 관한 뉴스로 노충국씨의 애처로운 사연이었습니다. 이를 본 들쿠달스는 슬픈 마음에 격한 울음을 보였고 그 후 이름 개명을 위해 담당 사무처로 가서 '입영민' 이라는 입영을 하는 젊은 이들을 기리는 이름을 써냈으나 담당관이 입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곤혹한 표정을 지었고 실랑이끝에 비슷한 발음의 이병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현재 KTF 매직엔스 게임단에 입단하여 스타크래프트는 물론 카트라이더, 스페셜포스, 겟엠프트, 카운터 스트라이크, 워크래프트3, 피파 등 다양한 게임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출처는 스갤 -_-)

결국엔 후로게이머들도 들쿠달스에 빠졌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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