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심각한 표정으로, 눈앞의 램프를 내려보고 있다. 램프라 하면, 본디 등잔을 떠 올리기 쉽다. 하지만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등잔이라기보다, 주전자에 가깝고, 또 사용하기보다, 골동품 장식장에 처박아 놓고, 관상용으로 몇 번 돌아보기에 알맞은 물건이다.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이 물건은 동으로 만들어졌고, 안에 침전물이 잔뜩 쌓인 것만 빼면 별로 특별한 것도 없는 물건. 하지만 나는 남들보다 높은 감성지수로 이 물건이 신밧드에 나오는 마법의 램프란 결론을 내렸다. 아~ 얼마나 멋진가. 마법의 램프라니. 분명 겉을 이렇게 쓱쓱 문지르면,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와, 무슨 소원이든 들어줄 것이다.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겉이 꽤 거칠고 낡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손으로 그 겉을 문질렀다. 그러자 램프의 코 부분에서 연기가 흐멀흐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평범하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예상대로 지니가 나타났다.
[짜잔~! 소원을 3가지 들어드립니다.]
“헉! 너는 정말 지니?”
[저는 지니가 아니라, 램프의 요정 홍명보라 합니다.]
“홍명보라면, 그 축구선수?”
[아니요. 그냥 홍명보]
나는 시야를 가리는 연기를 해쳐냈다. 예상대로 그는 머리에 터번을 쓴 전형적인 인도남성이었다. 다만 하체가 연기처럼 희미하단 점에서 전형적인 지니와 같았다. 그런데 홍명보라니... 아무튼 이것이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소원의 램프가 내 손에 떨어졌다는 것은, 나의 숙원을 이루란 신의 계시가 틀림없다!
“그, 그렇다면 나의 소원을 들어줘!”
[알겠습니다. 소원을 말하십시오.]
으... 그러니까.
“나의 소원은! 현금 1조원을 갖는 것이다!”
지니는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소원은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왜?”
[아무튼 못 들어드립니다. 당신의 숙원은 그것이 아니잖습니까?]
터번의 홍명보는 손가락으로 내 책상을 가르켰다. 책상 위엔, 플레이스테이션2와 그 옆에 배치된 20인치 티비의 게임화면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지... 나는 램프를 발견하기 전, 바이오하자드 아웃브레이크를 플레이 하려던 중이었지...
[당신이 원하는 것은 저것입니다. 당신은 항상, 자신이 즐기던 게임 속의 공간이 현실에 그대로 방영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물론 그랬던 적이 몇 번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절히 원한 것은 아닌데... 나의 믿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간절히 변했던가? 그래... 지속되는 학교생활과 따분한 일상. 형편이 좋지 못한 집안... 이렇게 재미없는 인생을 보낼 바엔 게임 속의 세상을 현실로 끌어당기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부정적이진 않으시군요. 그 소원 이루어졌습니다. 자 그럼 다음에~ 뿅~]
“헉쓰쓰. 자, 잠깐 기다려! 아무리 그래도 바이오하자드는 좀!”
이미 늦었다. 녀석은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입 밖으로 말을 하기도 전에 소원을 이루어주고 가다니... 하지만 정말 바이오 하자드가 현실에 방영된다면, 이건 정말 큰일이다. 일단은 나는 램프의 요정 홍명보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맑은 하늘, 한가로이 뛰어노는 아이들. 항상 무료하고 별 의미 없이 왕래하는 자동차들. 다행히 아직 소원이 시행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잠깐. 내가 언제부터 이런 바보가 되었지? 그래 이런 기분 느낄 때가 있다. 데자뷰. 기시감이라고도 하지. 그것은 항상, 불시에 찾아온다. 꼭 그것은 방금 꾼 꿈처럼. 현실이며, 현실이 아닌 세계. 어디선가 본 느낌. 나는 이런 기분을 무척 많이 느꼈다. 그리고 난 그런 반복되는 기시감의 결론을 내렸다.
‘그건 어릴적 무의식 속에 꾼 꿈의 환상일 뿐.’
그래. 생각해 보니, 방금 만난 홍명... 아니 지니도 그리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 환상은 나의 착각? 나는 방으로 뛰어 들어가, 내가 발견한 마법의 램프를 찾았다. 없다. 아무 곳에도 없다.
“결국은 착각이란 소리군.”
나는 무료히, 방으로 들어와 게임 패드를 집어 들었다. 게임 할 맛이 안 난다. 플스의 전원을 내리고, 나는 침대 위에 누웠다. 환상을 본 뒤라 졸리다. 왠지 졸리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내가 있는 세계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세계가 아닐 것 같은, 그런 불안감. 그리고 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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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링~♪ 전화왔3~♪ 전화받으3~♪]
핸드폰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창을 통해 들어오던 빛이 어두운 푸른색으로 변한 것을 보아, 이제 저녁 무렵이 된 것 같다. 폰을 들어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친구 녀석의 전화였다. 자주 가는 술집에서 친구들과 같이 있다고, 나를 부르는 콜이었다. 가을이 막 끝나가는 시점이라, 저녁때가 되면 꽤 쌀쌀해진다. 난 얼마 전에 구입한 무스탕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려는 도중, 신발장 앞에 떨어진 금빛 나는 물체에 얼어붙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