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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인격체 (nonhuman persons)
게시물ID : phil_128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hil
추천 : 11
조회수 : 1291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5/12/12 15: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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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 패션쇼를 하다

등록 :2015-12-11 21:45수정 :2015-12-12 09:59


지난달 19일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오랑우탄 ‘보람’에게 진행된 세번째 거울실험에서 보람(10·수컷)이 비닐 더미를 머리에 두르고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보람은 표준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된 거울실험을 통해 자의식이 확인된 국내 최초의 동물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지난달 19일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오랑우탄 ‘보람’에게 진행된 세번째 거울실험에서 보람(10·수컷)이 비닐 더미를 머리에 두르고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보람은 표준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된 거울실험을 통해 자의식이 확인된 국내 최초의 동물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토요판]
커버스토리 / 비인간인격체 오랑우탄 거울실험

국내 최초 동물의 자의식 확인
오랑우탄 거울실험이 남긴 것
비인간인격체(nonhuman person)생물학적으로 인간과 다르지만(비인간·nonhuman), 자의식, 이타성 등 인간이 독보적으로 가진 것으로 여겨졌던 특성(인격체·personhood)을 일부 동물 종이 공유한다는 주장이다. 제인 구달, 피터 싱어 등이 1993년 결성한 ‘유인원 프로젝트’나 토머스 화이트, 로리 마리노 등 ‘헬싱키 그룹’ 과학자들이 2010년 발표한 ‘고래와 돌고래 권리선언문’은 이런 비인간인격체의 신체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 거울실험을 통해 자의식의 존재가 밝혀진 대형유인원, 코끼리, 돌고래 등이 일반적으로 비인간인격체로 인정된다.

피아니스트처럼 긴 손가락이 치렁치렁한 비닐 더미를 끄집어 붉은 머리카락 위에 올려놓았다. 거울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정돈해 중심을 잡았다. 파티에라도 나가려는 듯 오랑우탄 보람(10·수컷)은 지난달 19일 모자를 고쳐 쓰며 자신을 바라봤다. 지난달 11일부터 <한겨레>가 한달 동안 진행한 ‘비인간인격체 프로젝트-오랑우탄 거울실험’에서 오랑우탄 보람이 자아인식 행동을 하는 게 확인됐다. 보람은 물감을 몰래 이마에 칠해놓고 반응을 보는 ‘마킹 테스트’에도 반응을 보임으로써, 국내에서 처음으로 과학적 실험을 통해 자의식이 확인된 동물이 됐다. 거울 속의 자신을 알고 있는 듯한 행동을 하면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해당 종이 자의식이 있다고 본다.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한달 동안 진행된 이번 실험은 오랑우탄 보라(13·암컷), 보석(13·수컷), 보람을 각각 6~8시간 거울에 장시간 노출시키고 마킹 테스트로 확인하는 방식을 택했다. 보라와 보석에게선 특이한 반응이 관찰되지 않았지만, 보람은 거울 노출 40분 만에 자아인식 행동을 벌였다. 평소 눈에 잘 띄지 않는 생식기와 항문을 관찰하고 머리를 매만지는 몸단장 행위도 관찰됐다. 또한 비닐 더미 등 물체를 이용하여 몸을 꾸미고 거울을 통해 확인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치러진 두 차례의 마킹 테스트에서도 보람은 물감이 칠해진 이마를 만지작거림으로써, 거울 속 이미지가 자신임을 확인시켜주었다. 거울실험은 1970년 침팬지에게 처음 시행된 이후 동물의 자의식을 알아보는 수단으로 이용돼왔다. 자신을 타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기초적인 능력이 이 실험을 통해 나타난다. 현재까지 침팬지, 오랑우탄 등 유인원과 돌고래, 코끼리, 유럽까치의 자의식이 확인됐다. 동물보호단체는 이 실험을 근거로 최소한 자의식이 관찰된 종만이라도 동물원 전시와 동물실험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 뉴욕주 법원에서는 침팬지가 자의식이 있는 법적 인격체라며 동물실험용 동물의 인신 구속을 중단하라는 소송이 제기돼 진행중이다. 보라와 보석이 거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김예나 국립생태원 전문위원은 11일 “둘 다 사회적으로 성숙했고 전시실 유리벽에 반사된 자기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추가적인 조건을 조성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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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의 열쇠는 유리벽

예로부터 거울은 자의식의 표징이 되어왔다. 거울 속 이미지를 자신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신을 객체(대상)로 인식하는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끔찍한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보고는 돌로 굳지 않았나. 자신을 타인의 눈으로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복잡한 사고를 하게 된다. 반성과 성찰 그리고 혼돈, 공감, 이타적 행동 등 고차원적인 행동은 내면 속 다른 사람의 눈을 거쳐 나온 정신작용의 결과다. 18~24개월이 되어서야 인간은 비로소 거울 속의 이미지를 자신으로 인식한다. 1970년 미국의 비교심리학자 고든 갤럽이 침팬지에 대해 거울실험을 마치고 ‘동물도 자의식이 있다’고 발표한 것은 ‘동물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제인 구달의 선언만큼 도발적이었다. 지금은 동물이 어떤 형태든 인간의 자의식과 비슷한 정신작용을 가졌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아졌고, 최근에는 적어도 유인원과 코끼리, 돌고래 등 거울실험을 통과한 동물은 ‘비인간인격체’(nonhuman person)라고 주장하면서 동물원 전시·감금과 동물실험 금지 등 이들의 신체적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한겨레>가 지난달 11일부터 김예나 국립생태원 연구원, 서울대공원 사육사들과 한달 동안 진행한 거울실험에 나온 오랑우탄 보라(13·암컷), 보석(13·수컷), 보람(10·수컷)도 이른바 ‘비인간인격체’로 불리는 오랑우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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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과 오랑우탄

“이 실험의 목적은 무엇이지요?” 닷새 뒤인 24일, 5차 실험을 참관하러 온 한 목사가 물었다. “비인간인격체 개념을 한번 보려고 하는 것이지요.” 박성호 감독이 답하자, 목사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동물이 인격체가 될 수 있지요?” 이번엔 내가 대답했다. “자, 이렇게 말해보죠. 인간은 두 가지로 정의됩니다. 첫째는 종으로서의 호모 사피엔스. 둘째는 자의식, 고통과 감정, 이타성, 도덕을 가진 인격체로서의 특성.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동물을 살해하는 것은 많은 경우 합법입니다. 왜 그럴까요? 동물은 자의식이 없는 열등한 존재여서? 그럼 식물인간을 예로 들어볼까요? 두번째 정의로 보면, 오랑우탄이 인간에 더 가까울까요, 식물인간이 인간에 더 가까울까요? 왜 우리는 오랑우탄은 가두고 식물인간을 보호할까요?” “상당히 도발적인 이야기네요.” 도발적인 이야기는 이내 라캉의 거울이론으로 이어졌다. 어쨌든 이 설명은 철학자 피터 싱어의 그 유명한 ‘종 차별주의 논증’이다. 사실 우리가 돼지를 공장에 가둬 기른 뒤 잡아먹고, 쥐에게 암세포를 집어넣어 실험에 쓰고, 동물쇼에 나가지 않는 돌고래를 굶기는 것은, 고매하고 훌륭한 인본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냥 그들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인간이라는 종의 이기성 때문에 그런다는 거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마킹 테스트’였다. 동물에게 몰래 물감을 칠해놓고 동물이 그 부위를 만지는지를 보는 거울실험의 최종 관문이다. 인간은 이 실험에서 보통 18~24개월 때 얼굴의 반점을 인지하고 만지작거린다. 그간 관찰됐던 자아인식 행동이 우연이 아니라면, 보람 또한 물감이 칠해진 이마를 만지작거릴 것이다. “보람아, 보람아.” 24일 아침 일찍 국립생태원의 김예나 연구원이 보람에게 먹이를 주면서 이마에 몰래 하얀 물감을 칠했고, 보람은 깜박 속아 넘어갔다. 오전 9시 인디언 추장처럼 분장한 보람이 셸터의 실험무대에 올랐다. 9시57분께 보람은 거울에서 약 1미터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거울 쪽으로 돌렸다가 이마가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왼손으로 이마를 만지작거리더니 성큼성큼 거울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오른손으로 쥔 플라스틱병으로 다시 이마를 긁적였다. 마킹 테스트 통과! 보람은 자신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보람은 거울에서 떨어지질 않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보람은 거울에서 떨어지질 않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다양한 동작을 취하며 거울 이미지를 확인했고 자주 엎드려서 텔레비전을 보듯 거울을 바라봤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다양한 동작을 취하며 거울 이미지를 확인했고 자주 엎드려서 텔레비전을 보듯 거울을 바라봤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생략)

미국 침팬지 ‘인신보호영장’ 청구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논휴먼라이츠’(NhRP)는 2013년 침팬지 네 마리에 대해 불법구금의 해제를 요구하는 ‘인신보호영장’(writ of habeas corpus)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최소한 인격성이 확인된 동물만이라도 감금 및 전시, 동물실험을 금지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7월 논휴먼라이츠는 이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뉴욕주법원은 판결문에서 “법적 인격체(legal personhood) 인정은 생물학이 아닌 정책의 문제”라며 “이를 침팬지로 확대하려는 시도가 이해되고 언젠가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향적인 의견을 붙였다. 이 소송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비인간인격체는 급진적 동물해방운동가의 혁명선언문 정도로 치부되어선 안 된다. 과학자들은 꽤나 진지하게 이 문제를 논의해왔다. 저명한 영장류학자 마크 베코프, 프란스 더발, 해양포유류학자 로리 마리노와 다이애나 리스 등은 거울실험을 통해 드러난 자의식 그리고 도구의 이용, 이타적 행동, 공감 능력 등을 들며 동물의 인격성(personhood)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한다. 동물을 인격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우리가 불편해하는 이유는 그것을 인간 종에 대한 ‘불경’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마크 베코프는 말한다. 그러나 동물이 인격체의 특성을 고루 가지고 있다면, 그들을 우리의 도덕적 공동체 안으로 허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거울실험에 대해 “오랑우탄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변했던 과정”이라고 박성호 감독은 말했다. 거울실험을 통해 우리는 오랑우탄의 자의식을 지켜봤다. 늦었지만 의미있는 한 발을 뗀 것이다.

글 남종영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721537.html

퍼온 글은 한겨레 기사에서 발췌한 부분입니다.

오랑우탄 거울실험 프로젝트 (단편 다큐) 후원을 진행 중이네요:
http://www.funding21.com/project/detail/?pid=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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