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중 흔히 접할 수 있는 의견 중 하나는 바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입니다.
아무리 선한 목적이라도 수단이 옳지 못하다면 그 목적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거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 생각에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면, 1980년 오늘 일어났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의 광주시민들의 행동 또한 지탄받아야 할 행동입니다.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무기 중 하나인 머스킷총으로 일궈낸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 역시 지탄받아야 하구요.
막스 베버는 국가를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도록 주장하는 독립체로 규정했고, 권력을 사람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악의 요소가 포함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조지 오웰은 혁명에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무기를 강조했구요.
그의 '당신과 원자탄'이라는 에세이를 조금 인용하겠습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가 비싸고 만들기 어려운 시대는 폭정의 시대인 경향이 있고, 가장 강력한 무기가 싸고 단순한 시대에는 서민들에게도 기회가 있다.
때문에 예컨대 탱크나 전함이나 폭격기는 본질적으로 압제적인 무기인 반면에, 소총이나 머스킷총이나 긴 활이나 수류탄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인 무기인 셈이다. 복잡한 무기는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들고, 단순한 무기는 (보복이 따르지 않는 한) 약자에게 갈고리 발톱이 된다.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의 위대한 시대는 머스킷총과 소총의 시대였다. 머스킷총은 꽤 효과적인 무기였고 동시에 아주 단순해서 거의 어디서나
만들어낼 수 있었다. 머스킷총의 장점덕분에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성공이 가능했고, 민중의 봉기가 지금 시대보다 훨씬 심각한 사건이 되었다.
아무리 뒤처진 나라라도 이런저런 경로로 언제든 소총을 구할 수 있었기에,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때로는 성공하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는 모든 군사기술의 발전이 국가에는 유리하고 개인에겐 불리하게, 또 산업화된 나라엔 유리하고 후진국엔 불리하게 되었다.
이런 추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거대한 산업 단지에 의존하지 않는 무기를 (더 광범위하게 말하자면 싸우는 법을) 발견하는 것이다.
(중략) 세계 전반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수십년 동안의 흐름은 무질서가 아니라 노예제가 부활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전반적인 와해가 아니라 고대 노예제국처럼 끔찍하게 안정된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만일, 원자탄이 자전거나 자명종처럼 싸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다시 야만의 시대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단, 그랬다면, 국가 주권과 고도로 집중화된 경찰 국가의 시대도 끝났을지 모른다.'
이 에세이를 읽어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백날 시위를 해도, 정부가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시위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모두 빨갱이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라는 프레임에 갇혀,
더 이상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지 않은 국민들을 두려워 할 국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