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국문과 오지 마세요
게시물ID : gomin_15624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케이퍼
추천 : 3
조회수 : 513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12/13 01:00:07
 
 
수능으로 치면 상위 10% 정도의, 인서울 중하위권 국문과를 졸업한 06학번입니다.
얼마전 수능 치렀고 요즘 한참 원서철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아닌가요?)
지금 한참 진로로 고민하고 있을 분들이 생각나, 많은 분들이 듣기 싫어하겠지만 현실을 알려드리고 싶어 글 올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소위 '금수저'라서 평생 일 안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없거나,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을 사업체가 있거나, 혹은 전공과 무관하게 당장 실무에 뛰어들어도 고정수입을 얻을만한 자신만의 기술을 갖고있는 게 아니라면 가급적 국문과는 가지마세요. 스카이라도 왠만하면 단일전공은 피하세요.
첫번째는 다들 알다시피 취업 정말 안됩니다. 여러분들이 우려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듭니다.
나름대로 괜찮은 대학 나와도 그렇습니다. 제가 나온 학교는 명문대는 아니지만 왠만한 사람들한테 말하면 대부분 압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상위 10% 안팎은 되구요. 그런데도 대다수가 타과로 전과하거나 복수전공하거나 아님 졸업하고도 자리 못잡아서 대학원으로 도피하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그럴 형편도 안 되면 공무원이나 임용시험에 기약없이 매달리거나, 알바 혹은 월급 100만원 수준의 영세기업에 들어갑니다.
소위 명문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약간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 타과에 비하면 막막한 거 똑같습니다. 오히려 고딩때 공부한 게 있는데 말도안되는 처우 받으며 취업하거나 비정규직 전전하게 되면 더 자괴감 듭니다.
간신히 취업해도 타전공에 비해 말도 안 되는 열악한 처우를 받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국문과 졸업생들이 많이 가는 직업군-출판사, 영세 언론사 및 잡지사, 홍보대행사, 논술학원 강사 등등... 월 150 받는 게 평균이고 200 받으면 대박 수준입니다. 2015년에요..간신히 '생계유지'만 할 뿐 성인으로서 경제적으로 독립해 미래를 준비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한 수준입니다. 심지어 같은 학원강사를 해도 수학학원이나 영어학원 강사를 많이 뽑지 논술학원은 티오자체가 적습니다.
제 나이가 지금 30정도 됐는데 졸업한 동기나 선후배들 뭐하는지 살펴보면 위에 적힌 직군 혹은 대학원, 임용준비, 공시준비, 백수, 알바, 계약직이 80%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나이 30 넘어 '반전'을 꾀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고려해보면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있을 확률 90% 이상이겠죠. 가끔 가뭄에 콩나듯이 괜찮은 직장 들어간 사람들 보면 졸업후에 아예 다른 기술을 배워서 다른 분야에 뛰어들었거나 아님 학교공부와 별도로 취업준비해서 입사한 케이스(제가 그렇습니다)밖에 없습니다.
반면 같은 학교라도 이공계나 하다못해 상경계, 사회과학 쪽 졸업한 친구들 보면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삼성 엘지 sk 금융권 등등 골라서 갑니다. 연봉도 초봉기준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까지 차이가 나고요.. 상대적 박탈감 많이 듭니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우리 경제가 애초에 제조업, IT업 중심으로 판이 짜여져 있다 보니 인문계 졸업생에 대한 수요가 낮을 수밖에 없고, 전통적으로 문과직종인 출판 언론 미디어 등등의 업황은 갈수록 나빠지다보니 사람을 안뽑고 뽑아도 낮은 급여를 줄수밖에 없기도 하죠.
하지만 그에 앞서서 애초에 문과, 특히 국문과의 경우 '순수학문', 학문과 예술의 경계에 있는 전공을 한다는 나름의 자부심(???) 떄문인지 '현실적인 역량'을 키우려는 노력 자체를 천시하는 분위기가 묘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말하자면 토익책 들고 도서관 다니며 대기업 인턴하러 다니는 애들을 천박하다고 비웃고, 수업 째고 잔디밭에서 소주 마시는 게 이시대 마지막 참 지성(???)이고 참다운 대학생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상당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졸업하고 나면 후자들은 전자를 부러워하고 있겠죠... 자존심에 차마 티는 못 내겠지만.
세상물정 어두운 대학 신입생 시기에는 후자들이 왠지 멋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얼결에 같이 어울리다 보면... 졸업후 앞서 말한 험난한 현실을 좀 더 하드하게 맞닥뜨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열심히 현실에 충실히 살아도 문과라는 이유로 지원자체가 안되는 티오가 태반인 상황에 말이죠.
 
물론 '먹고사니즘'이 모든 사람의 삶을 지배하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되는 지금의 사회가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요. 하지만 '당위'와 '현실'은 구분돼야 합니다. 특히 마땅히 기댈 언덕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먼 더더욱 그렇죠.
대학은 취업학원이 아니라 학문의 전당이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현실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하고, '적성'을 최우선으로 전공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단언컨대 그렇게 선택할 경우 90%는 반드시 크게 후회합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 후회는 점점 커질 거고요.
 
사실 학문적으로도 우리나라 대학의 국문학 수업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수준입니다. 10여년 전 대학 입학하고 첫 들어간 고전문학, 현대문학 강의 시간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고등학교 때 지겹도록 배운 '문학'수업, '언어영역' 교재 수준이랑 정말 놀라울 정도로 하나도 깊이나 전문성, 범주에서 발전된 게 없었거든요. 그냥 수능 문제집 사다가 풀어도 전혀 다를게 없었습니다. 이런걸 배우자고 한학기 400만원 내자니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진도 외에 딴 얘길 하긴 합니다. 대부분 교수의 개인적인 가치관을 주입하는 내용이죠. 코드 맞는 학생들은 꽤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회의감만 들 뿐입니다. 그리고 다들 경영학과 등으로 전직이나 복수전공을 하죠.
 
간혹 난 취업 안 하고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어 국문과에 진학했다고 하는 분들 있습니다. 저는 이쪽은 아예 생각을 안해서 모르겠지만, 제가 알기로 저희 학교 동문중 대다수도 문학가를 꿈꿨지만 지금은 전공과 무관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 현직 문학가들 대부분이 문학 외 다른 일을 본업으로 하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는 현실은 분명히 알아둬야 할 듯합니다. 만약에 등단이 안됐을 경우 현실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교직이수는 별로 믿음직한 대안이 안됩니다. '임용고시' 경쟁률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 사범대만 해도 몇개인가요.) 그리고 창작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국문과보단 문창과가 커리상 더 적합할 겁니다.
 
 
부모님 재산이 상위 1% 이내거나, 자신의 학업능력 혹은 글쓰기 능력이 상위 0.1%라서 정말 이 분야에서 크게 성공할 확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국문과는 오지 마십시오. 만약 정말 정말 국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다른 전공을 원전공으로 하면서 복전이나 부전공으로 공부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다른 전공에 비해 많이 널널합니다).
저는 수능 영역중에 언어영역이 제일 나았고 글짓기상 몇번 탄 것 때문에 엄마가 '넌 국문과를 가야 한다'는 권유로 오게 된 케이스지만...
그때도 이런 현실을 알았더라면 절대 쳐다도 보지 않았을 겁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 동기들 모두가 가장 후회합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