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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증명
게시물ID : panic_114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틀러
추천 : 8
조회수 : 191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01/29 06:12:55
도로가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 눈을 가리는 사람. 걱정어린 눈을 한 사람. 경찰들과 앰뷸런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온몸을 피에 적신채 쓰러져 있는 남자와 15미터쯤 떨어진 곳에 길다란 스키드마크를 그린 차가 서 있었다. 그 차의 앞범퍼와 앞유리는 뭔가에 부딛혀 박살이 나 있었고 아마도 그건 저쪽에 떨어져 있는 남자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곁에는 넋이 나간듯 앉아 그 남자를 지켜보는 여자도 있었다. 몰려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수근거림이 들려왔다. "저 남자가 여자를 구하려고 뛰어 들었다니까" "그래요? 이거참..안타까운 상황이네요.." "아마도 살기 힘들꺼 같은데요? 제가 봤는데 차가 엄청난 속도 였거든요!." "그럼요...살기 힘들겠어요....으휴 끔직해..정말 조심해야겠어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악담을 해댔다. 악담을 하던 사람들 속에 검은기운을 띤 사람 형태의 연기가 나타났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싸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기운의 연기는 쓰러져 있는 남자쪽을 향하며 말했다. "남의 불행을 그저 자신의 안위에 이용하다니...무섭도다..." 그 검은 기운은 사람들을 지나쳐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자는 자신이 이승을 떠나야 할때가 됐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목뒤로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게 죽음의 사자가 다가왔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옆에 넋을 잃고 눈물을 흘리며 앉아있는 여자를 각막에 세기려는듯 뚫어지게 바라본 뒤 살며시 '미소'를 짓고는 끝내 마지막 잡고 있던 생명의 끈을 놓고 말았다. 검은 기운의 사자는 그 남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혼의 한 귀퉁이를 허리에 붙잡아 메고는 길게 늘어뜨러져있는 왼쪽 소매에서 명부를 꺼낸 뒤 남자의 이름이 적혀있던 곳에 까마귀 털로 만든 펜으로 줄을 그었다. 남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혼은 아직 혼란 상태라 멍하니 여자쪽만 바라볼 뿐이었다. 사자는 명부를 다시 소매에 말아 넣으며 중얼 거렸다. "이게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것인가? 허나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지언정 그게 어찌 사랑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인생은 한번이오 또 환생한다 한들 망각의 샘물을 마시면 기억조차 못할진데 이 얼마나 미련한 짓이란 말인가. 또한 이승에 남겨진 저 여자 또한 슬퍼하며 괴로워한들 시간이 지나면 망각의 샘물도 필요 없으리라.." 죽음의 사자에 중얼거림에 혼란에 빠져 있던 혼은 여자에게서 고개를 돌려 사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혼의 표정은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사자는 그의 표정을 보고는 물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느냐?" 남자의 영혼은 이승에서 빠져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혼이 되었을때의 대화나 행동에 자유롭지 않았다. 자신의 혼 귀퉁이가 사자의 허리춤에 묶여 있는 것 또한 남자를 혼란 스럽게 했다. 하지만 금새 말하는 방법을 터득하고는 사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사자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혼을 쳐다보았다. "허! 내 혼을 걷으러 수천년을 다녔건만 너같은 녀석은 처음 보는구나!" 사자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혼은 사자의 창백한 얼굴과 어두운 기운에 기가 죽어 얼굴도 쳐다보기 힘들어했다. 허나 이 남자는 사자와의 첫대면에서 도전적인 대화를 걸어왔다. "참 미련하고 건방진 녀석이로구나!! 하하하" 사자는 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에서 하나의 흥미거리를 찾은 듯 했다. "사자님. 전 미련하지도 건방지지도 않습니다. 다만 사자님의 말씀이 잘못됐다 생각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자는 남자의 혼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고얀지고!!!!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나에게 네놈 따위가 가르치려 드는겐가!!!!!!" 사자의 고함으로 남자의 혼은 갈갈이 찢겨질 뻔했다. 하지만 남자의 영혼은 표정의 변화 조차 없었다. "전 사자님을 가르칠만한게 없습니다..하지만 사자님이 생각하시는 인간들의 사랑이란 것에 대해 잘못됐음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사자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이 남자에 대한 흥미는 그 화를 삭히기에 충분했다. 사자는 화를 삭힌 뒤 남자가 죽은 이유를 읊었다. "너는 네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저 여자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후회가 없단 말이냐?!" 남자의 혼은 말설임 없이 대답했다. "후회 없습니다." 사자는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혼들은 자신의 모습만 봐도 얼어붙어 순순히 끌려 갔건만 이 녀석은 자신에게 사사건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꼴에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했다. 그 순간 사자의 눈 빛이 달라지며 차가운 미소를 지은채 그 남자의 혼에게 물었다. "그래..네 녀석이 나에게 이러는 것도.. 네 목숨을 버린것도 네가 말하는 그 '사랑'때문이란 말이지? 그래 좋다. 내가 뱉은 말이니 내 너에게 나의 말을 '증명'해 보이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자는 혼을 담는 그물에 남자의 혼을 구겨 넣고 저승으로 날아갔다. 남자의 혼을 풀어 놓은 곳은 저승의 입구로 통하는 통로인 중간계였다. 중간계에는 저승으로 가는 입구와 이승을 살펴 볼 수 있는 돌로만든 우물이 있었다. (우물이 있는 이유는 저승에가기전 혼령들에게 마지막으로 이승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물에서 남자의 혼을 꺼낸 뒤 사자는 남자에게 말했다. "너는 곳 저승에가서 망각의 샘물을 마시고 다시 환생하게 될것이다. 그 전에 네가 목숨 바쳐 구해낸 여자를 지켜보거라. 망각의 샘물을 먹지않은 여자가 네놈을 어떻게 잊는지 그리고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네 눈으로 똑똑히 보거라" 중간계와 저승의 시간은 이승에서의 시간 보다 빨리 흘러갔다. 이승에서의 1년은 저승과 중간계에서의 1일이었다. 남자의 혼은 돌로 만들어진 우물속에 비춰지는 여자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그 여자는 남자를 잃은 괴로움에 밥도 먹지 못하고 괴로워 했다. 남자의 혼은 여자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혼은 눈물을 흘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 모습은 그저 우는 시늉으로 보일 뿐이었다) 사자는 눈에 빛을 내며 그 남자의 영혼을 지켜보고있었다. 3년이 흐르고 4년이 흘렀다.(인간계에서의 시간) 여자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병원을 다니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때문에 병원에 다니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흐느낄 뿐이었다. "이젠..그만 잊어..제발.." 남자의 혼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남자의 옆에 서있던 죽음의 사자가 우물에 팔을 한번 휘둘렀더니 허공 어딘가에서 여자와 정신과 의사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허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남자의 옆에 서있던 사자는 남자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의 혼은 여자의 안타까운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정신과 의사는 여자의 표정을 보더니 면담용 쇼파를 가리키며 여자에게 말했다. "자, 여기 누우세요." 여자는 침울한 표정으로 쇼파에 누워 의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무슨 일이십니까? 말씀해보세요. 제가 꼭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여자는 의사에게 4년전의 일에대해 자세하게 설명했고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에게 물었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그 남자분을 사랑하셨군요..?" "..." 여자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의사는 당황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의 혼은 4일간(중간계의 시간) 일관된 표정으로 우물을 지켜보던 표정과는 달리 표정이 굳어있었다. "음...물론 힘드신 줄은 알지만..일단 가슴속에 담아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병은 어느정도 치유가 된답니다. 숨기지 마시고 다 털어놓으세요..." 의사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여자를 보며 말했다. "네....알겠어요. 저도 이젠...다 털어놓고 싶네요....." 여자는 아랫 입술을 깨물며 의지를 다졌다. "다시 시작하죠.. 그 남자분을 사랑하셨군요?" "아닌거 같아요..." 남자의 혼은 여자의 대답을 듣자 혼의 형태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구요? 물론 환자분의 앞에서 그런일이 벌어진건 견디기 힘들었다는건 압니다만 사랑하지 않는 남자때문에 4년간을 괴로워 하셨다니...좀 이해가 되질 않네요..." 의사는 안경을 치켜쓰며 여자에게 되물었고 여자는 한숨을 길게 쉬고는 대답했다. "네.. 저도 처음엔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에게 저주를 내린거에요. 그가 죽기전 저에게 미소를 짓더군요...마치 모든 잘못이 저에게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어요.. 매일밤 잠에들면 그 얼굴이 떠올라 잠을 이룰수가 없어요...사랑이요?? 사랑하는 사람때문에 이렇게 살아있다는게 죄스럽고 고통스럽다면 이걸 사랑이라고 할 수있을까요? 전 괴로워 죽을 지경이에요... 정말 미칠지경이라고요. 차라리 그날 그 사람이 아니라 제가 죽었으면...제가 죽었으면...이토록 힘들진 않았을 꺼에요....흐흐흑...." 여자는 울음을 터트렸고 의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혼은 형태가 흐트러지고 뒤틀린채로 그저 우물쪽에 시선만 고정된채였다. 여자는 한참 뒤 울음을 그친 뒤 신경안정제를 받아 집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금껏 지켜본 남자의 혼은 형태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일그러지고 희미해져 혼의 형태를 유지 할 수 없었다. "어...어떻게...어떻게......" 남자의 혼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뒤 절망에 빠진 남자의 혼은 이리저리 뒤틀리더니 점점 더 희미해져 얼마뒤에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엄청난 절망감과 허무함에 그 남자의 혼이 사라진 것이다. 남자의 혼이 없어져 우물곁에 있던 사자는 당황하여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그 남자의 혼은 중간계에서 찾아낼 수 없었다. 그 남자의 혼은 나중에 사고 현장에서 발견되었지만 이미 지박령의 형태로 변이되어 사자들도 수거해 갈 수 없었다. 여자는 병원의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갑자기 오싹한 기운을 느끼고는 그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 여자를 들쳐업고 근처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여자의 몸속에서 검은 기운이 빠져나오고 있는것이었다. 빠져나온 검은기운은 다시 사람의 형태를 만들고는 서서 왼쪽 소매에서 명부를 꺼내들고는 4일전 지웠던 남자의 이름을 다시 세겨 놓고는 옆에 이렇게 적어넣었다. '지박령 변이 수거 불가' 명부를 다시 소매에 말아 넣자 중간계에서 남자의 곁에 있던 다른 사자가 다가왔다. "이제 끝난겐가?" "그렇다네" "흠...하지만 난 이해가 가지 않는구만.. 왜 이런일을 벌인겐가? 그 남자의 영혼을 속이기 위해 인간의 몸속까지 들어가 연기를 하고 말이야.." 말을 듣고 있던 사자는 말없이 다시 명부를 꺼내들고는 명부에서 어느 이름을 가리켰다. 사자가 가리킨 이름은 자신이 방금 빠져나온 그 여자의 이름 이었다. 그 여자의 이름 옆에 사망원인은 다름아닌 '자살'이었다. 그 여자는 이틀 뒤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를 잊지못해 자살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니 이것이 무슨 이유가 된단 말인가?" 옆에 있던 사자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묻자 명부를 들고 있던 사자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허 내가 인간에게 질 수는 없지 않은가!!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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