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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께서 쓰신 글 한 번 올려봅니다.
게시물ID : readers_231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꽃이피는밤
추천 : 10
조회수 : 31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12/16 17:38:14
                          나는 누구인가
                                            
“야! 너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 놀러 온 거냐?”
다섯 살 여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이 물으면 말을 해야지! 지난번에 너 나보고 뭐라 말했어?”
 우리 집 근처 골목길에 작은 슈퍼가 있다. 일을 보러 나가는데 슈퍼주인이 손자 둘을 껴안고 있었다. 작은 손자가 귀여워 들여다보려고 하니 큰손녀가 자기 동생을 보지 말라고 악을 쓰며 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딱 붙어 앉아서 작은 손자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울던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더니,
 “아짐마는 가던 길이나 가~!”
민망해져 나는 가던 길을 갔다.
 그렇게 암팡지게 말하던 다섯 살 손녀와 아파트 놀이터 앞에서 딱 부딪혔다. 주위를 싸악 둘러보니 아이는 혼자였다. 아이의 손에 들린 주둥이 찢어진 과자봉지를 보며 나도 찢어진 입으로,
“과자는 우리 동네에 왜 질질 흘리고 다녀! 니가 청소하냐? 너 지난번에 아짐마 가던 길이나 가라고 그랬지?”
나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더니 경비실아저씨를 부르며 뛰어갔다. 울면서 뛰어가는 아이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더 구시렁거렸다. “관리비도 안내는 게 우리경비아저씨는 왜 찾아?”
 
 역 주변을 걷다보면 검은 가방을 사선으로 메고 도(道)를 아느냐? 고 묻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들은 배짝 마른 얼굴로 날더러 인상이 선해 보인다, 덕이 있어 보인다, 라는 말을 하며 줄줄 따라온다. 다섯 살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울린 그날도 나는 역 근처에서 배짝 마른 이들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마침, 덕을 쌓으러 절에 가는 길이긴 했다.
 좀 전 아이를 울렸던 그 시간의 내 인상도 선하고 덕이 있어 보였을까. 사람의 관상은 눈에 보이는 얼굴보다는 그 사람의 평소 얼굴표정이나 말투, 눈빛이나 행동거지가 자신의 인상을 좌우한다고 들었다. 또, 자신의 상이 아무리 좋다한들 어떤 상을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다섯 살 아이를 만났던 순간에 내 안에 숨어있던 다섯 살이 툭! 튀어나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절에서 무릎이 부서지도록 백팔 배를 했다. 백팔 번뇌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금빛 옷을 입은 부처는 무릎을 접었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나를 측은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가끔씩 나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라는 뻔한 답 말고. 다섯 살 아이를 윽박지를 때는 다섯 살 아이이고 길거리에서는 선한 얼굴이고, 금빛의 부처 앞에서는 잔뜩 주눅이 든 허름한 나. 누군가를 만날 때 마다 달라지는 여러 개의 나. 나는 누구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 슈퍼 집 다섯 살 손녀가 친구랑 놀고 있었다. 아이가 나를 알아보고 자기 할머니에게 나의 잔망스러움을 일러바칠 것 같아 꼈던 안경을 벗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나가고 있는 나의 뒤통수에 대고 아이가 한마디 했다.

“치사하다! 정말!”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는 어린아이를 최고의 선(善)이라고 했다.
 
 
 
 
- 이 글은 수필이기에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 저희 어머니께서 보실 수도 있으니까 너무 심한 비방은 삼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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