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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송유관공사에 다니던 황인희씨(당시 23세)는 10년 전인 2005년 5월 인사과장 이00(당시 38세)에게 살해당했다.
유부남인 이씨는 16살이나 어린 미혼의 신입사원에게 흑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혼할 테니 나와 결혼해 달라”며 교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씨는 첫 번째 결혼해서 12살 된 딸을 두고 있었고, 이혼한 후 회사 사장실 여직원과 재혼해서 다시 딸을 낳았는데, 당시 생후 7개월 이었다.
피해자에게 거절당하자 “트집 잡아서 그만두게 할 수도 있다”며 협박했고, 괴롭힘의 강도도 점점 심해졌다. 어느 날 부터는 인희씨의 사생활까지 사사건건 간섭했다. 어떤 날에는 늦은 시간 집 앞에서 기다렸다. 사회 초년생인 인희씨는 스토커로 변해버린 직장 상사 이씨로 인해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2005년 2월과 5월, 두 번에 걸쳐 미니홈피에 남긴 ‘사는 게 괴로움… 누가 나 좀 구해줘’라는 글을 보면 당시의 심경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같은 해 5월30일 인희씨는 밤 10까지 야근하고 동료 사원의 차에 동승해서 버스 정류장까지 타고 왔다.
인희씨가 승용차에서 내린 순간 인사과장 이00이 막아섰고, 강제로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경기 양평에서 참혹하게 살해했다. 시신은 야산에 버리고 달아났다.
이씨는 사건 발생 42시간만인 6월1일 오후 원주경찰서에 찾아가서 자수했다. 그런데 원주경찰서는 이씨가 자수한 사실을 유족보다 회사 측에 먼저 알렸고, 유족이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회사 임직원 4명이 이씨를 면담한 후였다.
이씨는 왜 원주경찰서를 선택했을까? 인희씨를 납치한 분당도, 시신을 유기한 양평도, 살인범 이씨의 주소지도 아니었다. 굳이 연고를 찾는다면 원주에는 대한송유관공사 지사가 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시신이 발견된 지역의 관할 경찰서로 이첩하는 게 관례인데, 원주경찰서는 사건을 직접 맡았다.
원주경찰서의 수사는 처음부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가해자인 이씨가 “내연관계가 아니다”고 진술했는데도, 경찰은 ‘내연 관계’로 몰아갔다. 또 수사기록과 국과수로 보내는 부검의뢰서, 변사사건 발생보고 지휘건의서에는 두 사람이 내연관계로 단정했다. 경찰의 수사기록은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삼류 소설’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결국 경찰은 짜여진 각본대로 이씨를 ‘내연관계에 의한 치정살인’과 ‘사체 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딸이 살해당한 것도 분하고 억울한데, 경찰은 살인자와 ‘애정관계’였다는 오명까지 덧씌웠다. ‘내연관계’가 아니라고 밝혀낸 것은 피해자의 어머니 유미자씨였다.
유씨는 경찰 수사가 잘못됐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청에 보냈고, 검찰 조사결과 ‘내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 그런데 사건을 담당했던 원주경찰서 최00 경장의 답변은 기가 막히다. 그는1심 판결 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내연관계라는 말을 무식해서 몰라서 썼다. 나중에 국어사전을 찾아 봤다“고 비아냥 거렸다.
피해자 시신의 상태는 성폭행을 당한 후의 모습이었다. 겉옷인 흰색 가디건은 벗겨진 후 어디에 버렸는지 찾지 못했다. 경찰이 촬영한 사진을 보면 상의 속옷(브래지어)의 끈이 풀어지고, 끈 나시가 위로 말려 있었다.
하의 스커트는 위로 말려 올려진 상태에서 속옷(팬티)에는 흙에 짓이겨져 있었다. 이씨가 피해자를 성폭행 했거나, 미수에 그쳤다는 정황이다.
이처럼 이씨의 성폭행 의혹이 짙었으나 시신에서 정액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은 성폭행 관련 부분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경찰이 ‘내연관계에 의한 우발적 살인’으로 몰아가면서 ‘성폭행’ 여부는 처음부터 배제됐던 것이다.
어머니 유미자씨는 지금이라도 살인범에게 ‘성폭력 특별법’을 적용해 추가 기소해야 한다고 말한다.그는 “이 사건은 치정이 아닌 사내 성희롱, 스토킹, 성폭행에 이은 살인"이라며 검찰에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최근 법원의 판결을 보면 성폭행-살인-사체유기죄의 경우 최소 20년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하고 있다.
경찰의 엉터리로 인해 살인범 이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 2심에서는 3년이 감형된 12년이 선고됐고,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성폭력에 관한 수사를 배제하면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이다. 이씨는 2년 후인 2017년 만기 출소한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내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고, 성폭행 정황이 있는 만큼 ‘성폭력 특별법’으로 추가 기소하고 추가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건 이후 지금까지 대한송유관공사는 고인과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법정에서 드러났다. ‘내연 관계’로 몰아가면서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씨는 매년 5월30일이 딸의 기일이 되면 서초동 대검찰청 앞이나 대한송유관공사 정문 앞에서 상복을 입고 추모제를 열고 있다. 평범한 주부였던 유씨에게는 '투사'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살인 피해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 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죽은 자'와 '당한 자'만 억울한 것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출처 | http://jeongrakin.tistory.com/32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