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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간강사의 독백1
게시물ID : sisa_114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간강사
추천 : 12
조회수 : 30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04/11/25 16:06:04
www.georeport.net 펌
지난해 서울대의 한 시간강사가 생계의 어려움과 교수임용 실패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그의 죽음은 6만 명이 넘는 한국사회의 시간강사들에게 ‘남의 일’이 아니었다. 시간강사들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보다도 못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주장도 들리고 있다. 

시간강사들은 교원으로서 아무런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연구 활동은커녕, 최소한의 생계조건도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대학 시간강사의 문제는 이들의 생존뿐 아니라,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 대학의 각종 부조리에 밀접하게 닿아있다. 

‘가방 끈 긴 빈곤층’ 시간강사와 교수 사이에는 현격한 신분의 차이가 가로놓여 있다.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를 쓴 김동훈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교수와 강사 사이에는 세느 강이 흐른다”라는 표현으로 그 신분의 차이를 집약하기도 했다.

‘시간강사’는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은 우선 이들 시간강사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박미선(가명)씨가 글을 보내왔다. 대학 시간강사로서 맞닥뜨리는 일상을 토로한 글이다. 그는 아직은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현실에서 혼잣말로 ‘꿍얼대기’라도 해야 마음이 시원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편집자> 

글을 시작하며

이 글은 어느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필자가 직접 경험을 했거나 동료 강사들이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가명을 사용한 이유는 우선 이 글이 한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익명의 강사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실명으로 처리할 경우 글에서 언급되는 특정인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특정인들을 비난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보이지 않는 시간 강사의 삶이 있음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끝으로 필자가 비판적으로 바라 본 일부 상식에 어긋난 대학 교수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교수님들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제 주변에는 존경할만한 교수님들이 아주 많습니다. 대학이 아직까지 다닐만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이 교수님들 덕분일 것입니다.

어느 시간강사의 독백 <1>무거운 가방, 긴 '가방끈'

나는 시간 강사 생활을 삼 년 째 하고 있다. 학생들은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재산’ 가운데 교수님이라는 명칭은 가장 근사할 것이다. 나는 이 근사한 이름을 위해서 일주일에 한번씩 강의를 한다. 

2학점 짜리 강좌로 한 달에 268,000원을 받는다. 지난 학기 하던 강의 하나는 취소가 돼서 350,000원 가량 수입이 줄었다. 이번 달에는 몇 달전 어느 잡지사에 기고한 원고료 250,000원이 입금되어 간신히 카드 결제를 할 수 있었다. 

추석이나 어린이날 등 공휴일에 강의가 끼어서 휴강이 된 경우 그날치 강사료를 지급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 그나마 난 운이 좋은 편이다. 난 최고 8학점까지 강의를 해 보았는데 그 때 월 수입이 89만원이었다. 내게 ‘백만 장자’는 월수입 백 만원을 의미한다. 

내 주변의 선배와 동료들은 일주일에 두 시간에서 많으면 열 시간 정도 강의를 한다. 그 이상 하시는 분들은 거의 보기 어렵다. 주당 10학점 강의를 하면 한달에 대략 백 만원에서 백 오십 만원을 받는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강의를 하러 가시는 분들도 있는데 차비는 각자 알아서 부담을 한다. 

시간 강사는 흔히 ‘보따리 장사’라고 불린다. 학교에는 연구실이 없고 그렇다고 학생들처럼 사물함도 없어서 늘 참고 문헌들을 들고 다녀야 한다. 박사라는 타이틀 때문에 가방끈은 가뜩이나 긴데다가 그 가방에 담을 것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늘 가방에 질질 끌려 다닌다. 

그 무거운 짐을 내팽개치고 맥도날드 같은데서 아무 생각없이 햄버거라도 팔수만 있다면. 나이 제한이 있다. 

취업문이 좁다는 이 시기에 재산도, 권력도, 인물도 없고 나이와 학벌만 많은 여자들이 갈 곳은 어디겠는가. 아무래도 체면 유지 되는 직업은 시간 강사 뿐인 것 같다. 기왕 할거, 나를 거대한 ‘보따리’에서 뭔가를 꺼내어 파는 장삿꾼 말고 산타 클로스라고 불러주면 좋겠다. 어차피 시간 강사들이 학생들에게 주는 지식은 ‘선물’에 가까우니 말이다. 

이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지방 가는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또 거절하기도 마땅치 않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학생들과 같이 있기는 머쓱하고 연구실 같은 것도 없으니 갈데라고는 동네 도서관이 아니면 집이다. 

하지만 나이 많고 가방끈만 긴 딸년이 집에서 뒹굴면 부모님이 걱정을 하시니 집도 편하지는 않다. 지방 강의라도 있으면 최소한 차비와 식사 정도는 해결이 된다. 역시 안하느니 보다는 낫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러신다. "니 얼굴은 왜 맨날 썩어가냐?" 한 선배는 그 말을 "썩어가는 딸의 얼굴을 지켜 보시는 아버지 마음이 썩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내 얼굴이 썩어서 시집을 못 간 것인지 아니면 시집을 못 갔기 때문에 얼굴이 썩은 것인지 순서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아직 미혼이라 다행이다. 나 같은 시간 강사를 사위로 뒀다면 어찌 되었을까?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속담은 바로 그 상황을 위해 고안되었을 것이다. 

아는 선배 가운데 하나는 별명이 ‘소녀 가장’이다. 이 선배는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며 머리가 희끗해 노교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도 우리들은 '소녀'라는 말을 꼭 붙여준다. 이 선배는 지방으로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받은 강사료로 가족의 생계를 돕는다. ‘커리어 우먼’이나 ‘화려한 싱글’ 로 부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선배의 월급은 인형의 눈알을 붙여 어린 동생과 근근히 목숨을 이어가는‘소녀 가장’의 수준이다. 

시간 강사들은 ‘일용 잡직’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한다. 보험 혜택이나 퇴직금 같은 것은 없다. 그렇다고 늘 자조를 하고 사는 것은 추레해 보인다. 나름대로 나를 설명하는 멋진 수식어를 찾아내면서 사는게 건강에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시간 강사는 대학의 기둥”이라거나 “국가 학문의 요람” 이라고 떵떵거려본다. 

만약 시간 강사들이 아니라면 재단은 교수들 뽑아 월급 주느라 허리가 휘청할 것이고 그에 따라 등록금도 올라갈 것이다. 시간 강사들은 정말 대한민국 학문을 사명의식만으로 받쳐주는 든든한 요람이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교육이념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당하게 보따리를 들고 지하철을 탄다. 

최근 어느 대학 강사들이 밤을 새워 농성했다는 보도를 읽었다. 모든 강사들이 침묵하고 있지는 않는가 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절대 다수의 강사들은 ‘한국 비정규직 교수 노동조합’이라는 단체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설혹 안다 해도 가입한 사람들은 거의 없다. 

강사 노조는 거의 유령 같은 존재다. 강사들은 대학에서 강사료를 많이 주지 않아도 군말 하지 않는다. 강의 자체를 안 준다고 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법도 없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조교한테서 다음학기 시간을 묻는 전화가 오면 다행이고 안 온다면 그건 강의가 없다는 뜻이다. 

강사들이 농성을 해봐야 대학 당국은 타협을 하지도, 겁내하지도 않는다. 파업을 하겠다는 위협은 통하질 않는다. 쟤, 미쳤어? 바꿔. 강사할 사람들은 줄을 섰다. 어차피 보험이나 퇴직금 같은 것은 없으니 그저 한 사람의 계좌 번호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꾸면 그만이다. 

시간 강사들에게 해임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거창하다. 우리는 아무때나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서 '짤렸다'는 말도 사용하지 않는다. '응, 다음학기에는 강의가 없어'. 해임이라는 말의 동의어다. 왜 내가 강의를 하게 되었는지가 불명확하듯 강의를 못받은 사연 역시 알지 못한다. 

현재 한국 대학의 구조상 시간 강사들의 노조는 생겨날 수도,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아 지하생활자처럼 꿍얼대는 정도다.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지만 요새는 공무원이 부럽다. 

최근 공무원 노조의 총파업 사태에 대해 어떤 시민들은 따가운 시선을 돌린다. 월급이 작긴 해도, 최소한 출, 퇴근 시간 정확하고 휴일도 꼬박 꼬박 챙기고, 상여금, 보험 혜택이 있고 명퇴니, 조퇴 같은 것도 없고, 나이 들어 그만두면 퇴직금도 나오는데 뭐가 또 모자라서 파업이냐고, 특히 경제가 이렇게 힘든데 나라의 종복까지 설쳐야 하느냐고, 배부른 소리 따위는 집어치우라고 비난한다. 그리고 파업에 참여한 공무원들은 해직 되도 싸다고 한다. 

하긴 공무원 하겠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모두 일렬로 세워 놓으면 몇 십 킬로는 족히 될 테니 굳이 삐딱하게 구는 사람들을 자리에 앉혀 놓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의 '종복'이라는 그들의 명예때문에 공무원들이 져야 했던 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우리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처음이다. 개미처럼 일만 하는 줄 알았던 사람들한테도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어쨌든 나는 해직될 지도 모르는 공무원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들의 실업자 신세가 질투나는건 아니다. 최소한 노조도 있고 파업에 참가해서 '짤릴’수도 있고, 또 복직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방끈 긴 '먹물' 일용잡직들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공무원들은 이번에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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