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아들 제이의 리틀리그 농구경기가 오후에나 있는 날이었지만 저는 가게를 열어놓고 이웃 큰 동네에 새로 생긴 동양마켓에 갔다와야만 했기 때문에 서둘렀습니다.
저는 일찍 가게로 나가서 문을 열고 가게 종업원인 미셸을 기다렸습니다. 미셸은 원래 주중에만 일하는데 가끔 제가 부탁하면 토요일에도 나와주었지요. 미셸은 금발에 파란눈을 가진 명랑하고 쾌활한 전형적인 미국여자로 꽤 똑똑한 30대 아줌마인데, 아내와 저는 미셸이 왜 이런 조그만 가게에서 일 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한 6개월 같이 일하며 좀 친해지자 우리를 자기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미셸, 그리고 그녀의 남편 토니와 함께 미셸이 만든 비프 브리스켓을 먹으면서 미셸이 어렸을때부터 살아온 이야기를 우리는 눈물을 훔치면서 들었습니다. 이제 겨우 30대인 미셸의 인생은 벌써 파란만장했습니다.
한국사람이든 미국사람이든,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사람이 산다는것은 다 드라마더라고요.
저는 미셸에게 가게를 맡기고 동양마켓이 있는 이웃의 큰 동네로 차를 몰았습니다. 하이웨이로 40분쯤 달려서 마켓에 도착했고 아내가 적어준 리스트를 보며 그로서리샤핑을 하고 마지막으로 제가 여기까지 온 진짜 이유인 한국 비디오를 10개도 넘게 빌려서 마켓을 나왔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그때, 우리는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서 주말 저녁이면 한국 비디오를 보면서 밤을 새는것이 예사였거든요. (몇 년전에 종영되었다는 질투라는 드라마가 있길래 열 몇 개 되는 비디오테잎을 통째로 빌려서 그냥 스트레이트로 끝장 내 버린 전설도 있다는...)
돌아가는 길에 시계를 보니 제이의 농구경기 시간이 빠듯했지만 저는 시속 65마일(100km) 규정속도에서 1마일도 안 넘기며 운전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여기에서 경찰에게 걸렸었기 때문이지요. 경찰차가 뒤에서 라이트를 번쩍이면 오는데 저는 잘못한게 없었기 때문에 제 차를 따라 오는줄은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옆의 추월 차선으로 가지않고 계속 따라 오길래 길 옆에다 차를 세웠습니다. 와, 그런데 이 양반이 차문을 열 때 부터 시작해서 발을 내딛고 완전히 내린 다음에 걸어서 제 차에 까지 오는데, 거의 백 분은 걸렸습니다. 보니, 백 살은 되어 보이는 무지하게 뚱뚱한 할아버지였습니다.
"뭔 일이지요?" "너 스피드 오바야." "노우, 나 65마일 달렸는데?" "아니야. 67마일 이야" "뭐라고요?" (잌스큐스미? 속으로는 홧더헥?)
이 경찰할아버지 말씀인 즉슨, 자신의 생각에, 이 도로에서 65마일은 이미 충분히 위험하게 빠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제한 속도가 55마일에서 65마일로 바뀐지 얼마 안 되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서 1마일만 넘어도 잡는다는 것이었지요. 다행히 경고만 주면서 다음에는 1마일만 오버해도 안 봐준다고 하며 경찰할아버지는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후로 규정속도에서 1마일 넘었다고 티켓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동네에는 시골인데도 의외로 아이들이 많고, 시골이라서 부모들은 시간이 많고, 그래서 그런지 계절 별로 아이들의 운동 리그가 많았습니다. 나이별로 팀을 나누고 코치는 전부 예전에 운동 좀 해 봤다는 부모들이 맡았습니다. 아예 그럴듯한 전용 체육관도 하나 있었는데, 마루바닥도 깔아져 있고 관중석도 있었습니다. (목화부자 몇 명이 기부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 제이는 썬더팀으로 배정 받았는데 저는 제이가 에릭이라는 아이가 있는 메브릭스에 들어가지 않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에릭은 이 동네 리틀농구 수퍼스타였습니다. 이 아이가 경기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다른아이들에 비해서 뛰어나게 잘 했습니다. 특히 슛이 정확해서 거의 매년 에릭이 속한 팀이 우승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코치로 있는 에릭의 아버지가 너무 승부에 집착하다 보니 잘 못하는 아이는 출전을 많이 시키지 않았습니다. (5명이 하는 경기인데 보통 한 팀에 8명이 있습니다)
사실 이 아이들 나이때의 리틀리그는 어느 팀이 이기고 지는지는 전혀 중요한게 아니어서 시합 할 때 모든 아이들을 평등하게 교대로 돌리거든요. 어쨌든 제이가 에릭 팀으로 가게 되면 주로 벤치에 앉아만 있게 될 거라는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었지요.
아내는 농구경기에서 플레이하는 제이를 보면서 많이 속상해 했습니다. 제이는 어렸을때부터 몸도 약한 편인데다가 걷다가 발이 꼬여서 쉽게 넘어지곤 했기 때문에 아내와 저는, 얘는 운동체질은 아니다, 라고 결론을 내려 놓았었거든요. 그래서 운동에 관한 한 제이에게 전혀 기대하는 바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그렇지 해도 너무 하더라고요. 리그가 시작되고 5번 경기를 마쳤는데 단 한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골을 넣는것은 고사하고 슈팅도 한번 해 보질 못 했는데 자기에게 볼이 오면 무슨 폭탄이라도 잡은 듯, 곧 바로 다른친구에게 던지듯 패스를 해 버리곤 했지요.
한가지 위안이 된다면, 상대편 선수에게 패스는 절대 안 하더라고요.
아내는 제이가 그런것이 아빠를 닮은거라며, 자신이 초등학교 때 달리기대회에서 전교 일등을 해서 학교대표로 군 대회에 나갔는데 엄마가 대견하다며 준 동전 몇개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뛰었답니다. 그 동전이 자꾸 짤랑거리며 빠질것 같아서 그것에 신경쓰느라고 일등을 놓치고 이등했다는 얘기를 백 번째로 하면서 제 탓을 했습니다.
제이는 좀 일찍, 우리집 근방에 사는 코치가 픽업해 갔기 때문에 아내와 저는 시간에 맞춰서 체육관에 들어갔습니다.
오늘은 세 경기가 있는데다가 선수들의 가족들만 온것이 아닌지 제법 관중석이 꽉 차있었습니다. 소리지르고 환호하고 탄식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속에서 드디어 제이가 속해 있는 썬더와 에릭이 있는 메브릭스의 경기가 시작 되었습니다.
역시 예상했던대로 거의 에릭의 독무대였습니다. 제이 또한 여느 경기와 다름 없었고요.
후반이 반쯤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제이가 뛰다가 또 발이 꼬였는지 가볍게 넘어졌고 심판은 다른쪽으로 공을 쫒아 우르르 몰려간 아이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제이가 막 일어서려는데 공이 제이쪽으로 때굴때굴 굴러왔습니다. 제이가 얼른 일어나서 공을 잡더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패스할 곳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패스 할 데는 없고, 상대 선수는 쫓아오고, 그렇다보니 어쩔수가 없어선지 슛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것이 골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우리 팀의 부모들이 일어나서 소리치며 박수를 쳤고, 이어서 다른 팀 부모들도 하나 둘 일어서더니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서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체육관 안이 온통 환호성과 박수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모두들 이것이 제이의 첫 골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가족은 이 곳에서 나름 꽤 유명하거든요)
아내와 저는 어리둥절 하면서도 가슴이 뭉클 해지고 말았지요. 사실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었거든요. 그냥 잘 못하는 애가 처음으로 운 좋게 줏어서 한 골 넣었으니 그냥 앉아서 박수나 몇 번 쳐주면 되는 그런 상황 이었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그 날 이후 제이의 경기 내용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친구들도 제이에게 패스도 해 주었고 제이도 공을 받으면 드리볼도 하고 의외로 슛을 꽤나 잘해서 득점도 많이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녀석이 제법 머리를 쓰면서 농구를 할 줄 알더라고요. (에이, 헤딩 말고요)
제이는 농구를 못 하는 것이 아니었고 겁이 많고 소심해서 다른 애들과 부딧치길 꺼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첫 골을 넣던 그 날, 관중들과 친구 부모님들의 지나치다 싶은 환호와 박수가 자연스럽게 제이에게 자신을 나타 낼수있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곳 사람들이 심심하고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냥 재미로 리틀리그를 하는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운동경기로 아이들의 건강뿐만이 아니라 제이에게 했던것처럼 자연스럽게 내적성장까지 이루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지요.
저는 처음으로 이 시골로 이사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리그가 끝날 무렵, 제이는 에릭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었고,
아내는 제이가 그런것이 엄마를 닮은거라며, 자신이 초등학교때 학교대표로 달리기대회에 나갔었던 이야기를 백 한 번째로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