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품 많이 드는 음악이란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베오베 간 클래식음악 수상자 글을 보고 뭔가 이야기를 해두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클래식음악팬겸 국내 아이돌가수들 ..에이핑크 시스타 써니힐 동방신기,슈퍼쥬니어팬겸 글랜체크팬겸... 국내 원로가수들 팬겸 뽕짝가수들 팬겸 마이클잭슨 팬겸 머라이어 캐리팬겸 시나 이스턴 팬겸 메탈리카팬겸 딤무 보기르 팬겸 랩서디 팬겸 제이슨 므라즈 팬겸 토리 에이모스 팬겸 킨 팬겸 크레이그 데이빗 팬겸 마룬파이브팬겸 칸노요코 팬겸 사카모토 마야 팬겸 릴리 알렌 팬겸.......헉헉......하여튼 그런 입장에서 한번 서술해봐야겠다는 필요를 느끼게 됬습니다.
클래식음악의 공연 문화나 그 음악에 대한 서술방식의 문화등 해당양태들은 그것에 대한 접근법을 익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꽤 강렬한 반감을 일으키기 딱 좋습니다.
엘러건트..& 엘레강스.
얼핏 보면 이 분위기속에서 아주 놀고자빠졌죠.
이걸 부정하지 않는것은 그 본질이 진정 귀족주의적이다.부르쥬아적으로 일반 대중에 대해 반 대중적이다..라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굳이 비유를 해보자면..우리가 분식집에서 돈까스를 주문해먹을때 나이프와 포크로 썰죠.
그런데 서구의 식문화속에서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나이프와 포크로 음식을 써는 문화는 서민문화가 아니었습니다..서민들의 음식 자체가 그렇게 썰고 찍어 우아하게 먹는 음식들도 아니었고요.
이는 서구귀족들의 문화가 차츰 서구대중들의 문화로 전이된 과정이 있는것이죠.
이젠 우리나라 분식점에선들 그정도 광경은 이제 흔합니다.
배추김치같은 음식도 1세기전 그 음식이 등장했을때 서민적인 음식은 아니었습니다..사실 꽤 값나가는게 맞는 음식일거라 생각합니다. 상당히 많은 재료와 의외의 고급기술.그리고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이 바로 배추김치입니다. 그러나 어느덧 배추김치는 서민음식의 대표격이 되어있죠.
상위권의 문화로 출발한 습속이나 양식이 대중화되거나..애초 귀족문화에서의 특화되고 제한된 의미를 넘어 보편화되는 일은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전 클래식음악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만..그 [태생적 한계] 자체로 인해..보편적 소화에 장애가 일어나는 상황이랄까요.
여러모로 품많이 들고..익히기위해 [별도로 노력을 요구하는] 음악..확실히 허약한 음악인건 맞는것 같습니다.
음악이란 바로 감각적으로 인지할수 있어야 하는거라는 생각이 사실 맞거든요. 그런데 이눔의 음악세계는 일정부분 [별도의 노력]을 요구하는 부면이 있으니.클래식음악세계란 .뭔가 잘못된 음악세계일지도 모릅니다.아마..ㅎㅎ
다만..이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헤드벵잉을 하고 뭔가 꼴릿한 인간들이 아예없으면 이런 글을 쓸필요도 없고..그런 음악따위 사라지라고 고사를 지내는게 맞겠으나..헤드벵잉에 꼴릿한 정도를 넘어 정말 음악적 희열과 그로인해 삶의 활력을 얻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 하나를 보면..이 음악세계가 인류사회에 존속해야 할 이유와 가치는 실존한다고 말할수밖에 없고..저 자신 그것이 무엇인지 찾고싶어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이 글들을 올려볼까 합니다.저도 그 가치나 의미란게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하는 글이라고하겠습니다.
제 이 글들은 클래식음악에 관한 전문가나 고수들이 보면 분명 허섭한 이야기일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런 지적이 있어도 결코 부정하지 않을것입니다.
제 글의 허섭함이 한편으론 클래식음악이란게 이렇게 *도 아닌 인간이 헤드뱅잉을 하며 듣는 *도 아닌 음악세계였구나..라는 확인으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나름의 계획이 여기에 들어있습니다.^^
귀족들의 살롱음악에 불과한 시절이 클래식음악에 있었는가?
예..분명 있었습니다..
그러던 클래식음악이 어떻게해서 더 확장된 존재의미를 증명한것인가?
가장 편하게 그 계기를 말하자면 바로 베토벤..그 사람이 클래식음악의 귀족문화귀속을 파괴한 장본인입니다.
간단하고 짧은 살롱음악으로서의 클래식음악사가 존재하던 시절에 작곡가로서 등장한 베토벤..
루드비히 판 베토벤은 그 귀족들의 주문과 '실용적'필요에 의해 주문 제작되던 당시 한계가 뚜렷했던 '음악업' 의 어떤생태를 전면 거부한 사람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당시 교향곡이라는 형식은 적절한 기승전결을 갖추고 소화하기 편한,적당한 격조를 가졌으나 그렇다고 듣기에 난해하지 않은 살롱음악.적당한 품위를 갖춘 이지리스닝음악의 성격이 짙었었죠.(요 전문가가 바로 놀람 교향곡이런걸 쓴 하이든 할아범..)
그런데 베토벤은 자신의 3번 교향곡을 1시간정도의 연주시간을 갖는..왠만한 사람들은 지루해 쓰러질 길이의 대곡으로 만들어 발표합니다. 요게 바로 영웅이라는 표제로 알려진 그 교향곡.(에로이카) 교향곡이죠.
그리고 그것이 귀족들의 잔치바닥에서 BGM으로 깔리는게 아니고, 그 곡을 위해 기획된 공연장에서 듣는 곡으로서 발표되도록 한거죠.
그러니까 이 사람은 '닥치고 내 음악을 들어라'라고 부르짖은 자존심 만땅의 사람입니다.
물론 베토벤의 이 작은 음악혁명은 여전히 일반 대중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 그냥 그 자신의 예술세계 자체였습니다만..아뭏든 베토벤의 이 거대한 (음악사적으로 그의 교향곡3번은 분명 거대한 역사라 평가할만 합니다.비틀즈같은 역사 아닐까요..) 3번 교향곡에서 사람들이 얻은 인식은 뚜렷했습니다.
이제 연회장 BGM으로 발표되는 곡과...알아모셔야 되는 곡이 따로 분류되야 하나보다...라는 인식이었죠.
그리고 음악자체의 구조적 설득력을 갖춘 베토벤의 교향곡은 그대로 평가를 얻게됩니다. 그 기나긴,또한 매우 큰 스케일의 악상이 있는 그대로 먹히게 되는것이고..곧 그 곡들을 듣기위해 단순히 연회장이 아니라 공연장에 모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됩니다.(물론 이 상황역시도 일반 대중의 몫은 아니었다는건 사실이지만..)
이 베토벤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사람이 귀족주의자가 아니기때문입니다.
그는 분명 자신의 음악이 무슨 상위층 인간들을 위한 학술적 아이템같은것이 아니고..인류 누구나가 납득하고 공유할수 있는것이길 바란 사람 맞습니다.
물론 그의 교향곡정도의 명쾌한(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의 교향곡은 명료한 편이거든요..워낙에 그 이후의 클래식음악작곡가들의 작품이 기상천외/난해한것이 많아서..) 작품이라 한들...30분만 넘어가도 단순히 음악소리로서 스토리를 표현하는것에 그 긴시간동안 파악하는데 익숙지 않은 현대인들이 들어보면, 그다지 일반 대중들이 향유할만한것으로 들리지 않을사람은 많을테지만..베토벤의 시도를 그 시대적 맥락으로 보면,
이 베토벤은 정말로 인류보편의 문화이고 또 언어로서 자신의 작품을 설정한것이었습니다.
좋게 말해본거고..실재론 아마..오만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죠. '내 음악은 인류 누구나가 납득해야 할 음악이다' 이런 의식? ㅋㅋ
아무튼..이 사람이 귀족주의적인 인간이 아니란것은 스스로를 음악 '노.동.자' 로 부른데서도 어느정도 드러납니다.
그의 생애는 프랑스대혁명이후의 시대입니다. 아시다시피..프랑스혁명은 유럽의 사회인식의 한 부분을 많이 바꾸어놓습니다.
왕정이 아닌 공화정.계급사회가 아닌 평등사회라는 개념에 대해 접근하게 했죠.(프랑스혁명이란게 완전무결한 사회를 계획하고 실현한 사건이라는 이야길 하는게 아니니 행여라도 여러가지 역사적,현실적 문제들을 간과하고 유토피아즘 썰을 푸는 인간으로 비춰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런 인식에 대한 이상주의적 개념을 유럽사회내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시작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베토벤도 그런 인간중 하나였던것이죠. 그런 개념하에 그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도 만들어졌을것입니다.
이 곡은 교회에선 성가로도 쓰죠..환희의 찬가..인간 본연의 기쁨을 노래하려 했던 의도가 이 교향곡에 들어있습니다. 물론 교향곡이라는 무게답게 우주의 소리..땅의 소리..그리고 그 가운데 사는 인간의 노래..이런것들을 이야기하는 교향곡입니다.
하여튼 항상 거하게 가는거..클래식음악의 매력이자..뭔가 재수없는 점이기도 하지만 이시절 인간들이 크게크게 의미부여하고 조금 엄숙하게 어필하던거는 그냥 시대사회적으로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회서 사용하기도 좋은건..기독교적 신관이 베이스로 깔린 유럽사회에서 신이 배푼 이상적 환희라는 개념의 가사가 이 교향곡의 성악부분에 들어있기도 하니까요.
이런 클래식음악사에 들어있는 유럽의 기독교사에 대해선 다시 별도로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사실 기독교의 진리론 구조가 다시 클래식음악의 음악적 진리론의 베이스로 은근슬쩍 자리잡던 역사도 실재합니다.
이런식의 의식은 아마..여타의 음악세계에 대한 우월적 위치를 주장하는 클래식음악향유층을 만들어내었을것으로 개인적으로 짐작하기도 합니다.요게 클래식음악세계의 목줄을 스스로 쥐게 만드는 한 부분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만..
암튼 그건 그거고..이 베토벤이 거둔 귀족들의 살롱음악차원이 아닌 일종의 작곡가가 직접 주장하는 음악적 논문.음악적 문학의 지위는 분명 귀족문화 탈출의 역사로 평가할만할것입니다.
그러나 베토벤에 구태의연한 이지리스닝.살롱음악문화를 탈출했다 한들..이후 탄생한 대중음악들이 증명한 섹시함.직관적 감각들을 베토벤의 교향곡이 그 형태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긴 아닙니다. 베토벤은 베토벤이었고..18세기 말에서 19세기를 살아간 사람 다운 음악을 내놓은거죠.
본래 음악이라는 비싼 예술은 대중음악의 세계란것을 아예 그 카테고리에 두지 않았던...적어도 제도적으로 갖고있지 않았던것입니다.당시의 대중에게 음악예술이란 정말 비싼것이었고..대중에 특화된 음악예술이 따로 존재하지 않은것은 결국 그 비싼 비용문제때문이기도 했을것입니다. 유력귀족가문.또는 왕실이 그 공연을 열고 따라서 해당공연은 주최자의 목적이나 철학에 부합하는쪽으로 만들어지곤 했던 것이죠.그게 하이든 시절.. 그게 아니라면 이 베토벤처럼 인류보편의 인생역정과 환희등의 주제를 노래하기도 하고요.
우리가 오늘날 가진 대중음악의 그 [꼴릿한]개념 자체가 이시절 존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가 표현한 꼴릿함..이 표현이 저속할수 있으나..제 생각엔 이 꼴릿함이야말로 오늘날 음악이라는 문화의 최대미덕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로 기능하든 말입니다.-
음악이 비싼 예술이란건 공기중에 흩어지는 순간 사라지는 음악을 듣기위해선 공연진이 필요하고 공연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시간 예술이란 값나가는것일수밖에 없죠..
확성장치도 흔하고 녹음물도 흔한 현대에 와선 이제 더이상 시간예술의 값비쌈을 말하기가 어색한감도 있으나..
확성장치도 없고 녹음장치도 없던 과거에...음악문화란걸 가동하기위한 공연장.. 손으로 그리고 손으로 복사하는 악보들.연주자들이 동원되어야 하는 음악문화라는것 자체는 아주 비싼 문화양식일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고 서구도 그렇고..대중음악이라고 하는 체계는 없거나..없는거나 마찬가지였기에..으례 음악이라고 하는것은 저런 하이든 모차르트..베토벤. 또는 그 이전엔 교회의 성가..이런것들이었거든요.
그외의 민속음악들은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고 즐거워하는 음악들과는 다른거죠.
그것들은 음악이라는 부분보다는 민속이라는 부분에 더 무게가 있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전통습속의 범주에 더 많은 비중이 있던것이었죠.
음유시인들의 거리에서의 노래도 지금은 클래식음악 카테고리에서 다루어지죠.
오늘날 우리가 익숙히 듣는 온갖 노래들은 다 20세기 확성과 녹음기술의 자식들입니다.
이 강력한 대중음악이 클래식음악을 섬멸직전까지 몰고가게 되죠^^
아뭏튼 본격 대중음악이 존재하기전..베토벤은 단순히 귀족문화가 아닌,
계급특화적이라기보다 인류 보편적 음악문화를 주창했고..그 자신의 음악성으로 그것을 한 부분 성취해낸 사람이었습니다.
이 베토벤이전에 비발디가 있었고 바흐가 있었으나..베토벤의 교향곡부터 이야기하는게 적절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의 음악이 전용의 대규모 공연을 기획한 점때문입니다.
공연을 통해 해당 음악을 전용하여 사람들에게 듣게한다는 그점이 바로 음악문화의 중요한점이겠고..베토벤은 그런 공연문화에서 교향곡 1곡을 주제로 풀어내는 작곡가였으니까요.
요 베토벤 이야기부터 풀어놓았습니다.
베토벤의 3번,5번,7번,9번에 이르는 이 홀수번호교향곡들은 아마 왠만한 사람들이 몇 소절 들으면 아...그거..이럴수 있는 익숙한 곡들일것입니다.
언젠가 들어보시고 호감 가질 기회가 있으셨으면 좋겠어요..ㅎㅎ
베토벤 이후..
이제 단순 귀족문화 탈출/초월을 넘은 다른 의미가 클래식음악사에 발생하게 됩니다...
읽을만하다고 생각하시면 다음 글도 올려볼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