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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가 언제나 투자는 아니다
게시물ID : sisa_6380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졸린사슴
추천 : 1
조회수 : 44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12/23 0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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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20일 복지 후퇴 토크 콘서트에 다녀왔다.
장애인 분야 복지 예산 감소만 해도 300억이라고 한다.
 
룰라 브라질 전 대통령은 부자에 대한 투자는 투자라고 하면서
왜 가난한 이들에 대한 투자는 낭비라고 생각하는 지에 대해 역설했다.
 
아니. 가난한 이들에 대한 투자가 언제나 투자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학생에게 교육비를 지원하는 것은 분명 투자다.
그러나, 90살의 고독사가 기정 사실인 할머니가 있다고 해보자.
이 할머니에게 좋은 밥 지어 드린다고 해서 그것이 투자가 될 수는 없다.
투자는 아웃풋을 기대한 인풋이다.
할머니가 사회적 비용으로 좋은 밥 드신다고 해서 사회적 이익이 창출되는 아웃풋을 기대할 수는 없다.
 
머릿속으로는 이게 맞는데, 용어에 어떤 감정이 기입해서는 안 되는데,
마음속의 불편함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다독여줄 수 있는 합리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왜 꼭 투자여야만 하는 가이다.
왜 항상 돈으로만 생각해야 하는가. 사람 나고 돈 났다.
그것이 전복되는 것을 막기위해 경제 체제는 수 없이 모습을 바꿔왔다.
 
우리는 할머니께 좋은 밥 사드릴 돈을 쓰면 안 되는가?
왜 그것이 항상 투자여야만 하는 것인가?
우리는 좋은 밥을 위해 사회적 비용을 소비할 수 있다.
곧 죽을 부모님께 좋은 병원에 누워있게 해드리는 자식은 경제적으로 무식한 것인가?
아니. 오히려 사회적으로 효자라며 인정받을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그것도 못할 정도로 각박한 것인가?
잘사는 자식이 부모님 병원비를 대고, 못사는 대한민국은 식사비를 못 대드리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늘 말하지 않는가? 대한민국이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고.
 
돈 문제 말고 인간적으로 생각해보자.
봉사활동을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안다.
나의 도움으로 누군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 자신도 행복해진다.
대한민국은 자신의 도움으로 누군가 기뻐하는 모습조차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인격장애다. 대한민국은 인격장애다. 내가 속한 정치 공동체는
인격장애다. 그것도 반사회적이다. 중증이다.
길거리에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데, 사장님께 잘보여야 한다며 차를 몰고가는 그는
분명 인격장애다. 그것도 반사회적이다. 중증이다.
그것을 인격장애라고 하지 않는다면 나는 심리학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을 가지리라.
 
누군가가 기뻐하는 모습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고 성문화해야 하는 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철학적 고민을 해야 하는 수준 높은 정치 공동체가 아니다.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수준 낮은 정치 공동체다.
 
내가 "잘" 사는 것과 저 사람이 "못" 사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저 사람이 사는 것을 "못" 한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내가 심폐기능이 "좋은" 것과 저 사람의 심폐기능이 "나쁜" 것의 문제가 아니다.
저 사람은 숨을 쉬지 "못" 한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복지란 가장 먼저 두어야 하는 급한 수가 되고 말았다.
바둑에서는 수를 두어야 하는 우선 순위를 이렇게 말한다.
첫째, 급한 곳. 둘째, 큰 곳. 셋째, 선수인 곳.
 
대한민국 정치의 급한 곳은 이제 복지가 되었다.
정치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인데, 그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존폐가 달린 일이다.
 
대한민국의 2010년대 메가 트렌드 중 하나는 힐링이다.
나는 힐링을 거부한다. 힐링은 미봉책이다.
내 마음이 조금 나아진 듯하게 만드는 것이 술로도 부족해진 것이다.
1980년대 노동자들이 지친 심신을 술로 달래는 것을 두고 그 누구도 힐링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제 그것으로도 부족해진 세상이다.
힐링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지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사람은 사서 고생한다면서 근육 파열을 방치하는 것은 잘못이다.
 
유행이란 급한 것이다.
힐링이 유행을 끈 것은 이것이 급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는 미봉성을 내포한다.
마치 힐링과 같다. 없는 세상이 제일 좋은 세상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OECD 자살률 1위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1인당 최저 생계비 63만원을 챙겨주지 못해 중앙 정부가 20만원만을 지급한다.
지자체에서 장수수당이라는 명목으로 따로 2만원을 쥐어주려고 하자 그것을 낭비라며 막고 있다.
1500개에 가까운 전국 각지의 지방자치단체 복지 사업을 통합 및 폐지하라고 지시한다.
 
복지란 미봉성을 내포한다. 불완전한 것이 행해지는 이유는 급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이것이 급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집에서 90세 노인이 고독사를 앞두고 있는데 사람 하나 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중증이다.
사람은 행동하는 대로 규정지어진다.
나는 내가 의구심을 갖고 있음을 이 글로 표출하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에 의구심을 표한다.
 
급한 수로도 해결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착수해야할 큰 곳은 어디인가?
나는 교육이라고 본다. 복지에 대한 교육. 이 교육은 언제 행해져야 할까?
당연히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10년 사이에 들어가야 한다.
 
노동자에 대한 복지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언제부터 노동자가 되는가?
일반적인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이 되면서부터다.
그렇다면 노동자로서 처음 복지를 받으려는 때에 복지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교육은 백년대계이다. 사람은 평생 질서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도덕 과목을 어려서부터 배운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평생 노동자로 살아가는 데, 그 가치관 확립은 당연히 어려서부터 배워야 한다.
현실적으로나, 시기적으로나 복지에 대한 교육은 어려서부터 받아야 한다.
20살이 되어서야 자기가 버는 돈에 붙는 세금이 왜 혼자 사는 할머니의 반찬 값으로 들어가는 지에 불만을 품는다면
그것은 사회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비극적이게도 대한민국은 비극이다.
 
그러나 종말은 아니다. 기회는 준비한 자에게 온다.
사람은 언제 행복해질까? 그것은 미련을 남기지 않았을 때 찾아온다.
나는 행복해질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대한민국의 표어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질서를 잘 지키자, 라는 표어에는 우리는 질서를 잘 지키고 있지 않다, 가 전제조건이다.
표어란 서술어의 결핍에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의 표어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문제란 이상과 현실의 차이다. 해결은 그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인정하자.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사는 것이 결핍되었다.
한 가지 더. 나는 충족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는 거적데기다.
나부터 반성하자.
 
15년 12월 20일, 박근혜 정부 복지 후퇴 저지 콘서트를 열어준
새정치민주연합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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