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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바닷가재 테르미도르
게시물ID : readers_114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뚜샷뚜샷뚜샷
추천 : 1
조회수 : 36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23 02:43:30
바닷가재 테르미도르
-주의: 글의 배경 상 어린이, 임산부, 노약자, 임산부께서는 읽는 것을 삼가시길바랍니다.
아침8시, 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에서 들려오는 경적소리에 잠을 깬다. 같이 출근하는 동료다. 내 차가 있다면 30분을 더 잘 수 있을텐데, 이뤄지기엔 한참 먼 소망을 중얼거리며 옷을 갈아입는다. 10분도 채 안되게 준비를 마치고 차에 오른다. 딱딱한 회색 시트에 기대있으니 부족한 수면시간을 채우라고 몸이 아우성치는듯하다. 하긴 요즘 잠을 잘 못자긴했다.
 
 
아내 때문이다. 나의 아내. 나의 아름다운 아내. 나의 사랑스러운 보물. 그녀는 치어리더 캡틴이었고, 프롬 퀸이었으며, 친구들과의 저속한 대화속에서도 항상 빛이 나는 여신이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내가 그녀와 결혼하게된건, 흔한 말로 ‘기적’이었다. 사실 그녀에게 반했던건 아니다. 나는 그녀처럼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파티에 가서도 항상 구석에 서있다 제일 일찍 들어가는 찌질이었으며, 수업시간조차 그녀와 겹치는게 없었다. 그녀는 아마 내 성도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딱히 그녀에게 관심가진 적은 없었다. 물론 그녀는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었으므로 이름도 성도 그녀의 남자친구도 남자친구가 양다리걸친 여자애가 키우는 개이름 까지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내가 바라보기에 너무 높은 곳에 자리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와 그녀가 이어진건, 정말 ‘운명’이나 ‘기적’같은 우리와 다른 세계의 제 3의 힘이 개입했다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물론 내 말에 아내는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말이다.
 
바보같은 소리 좀 그만해 딕, 날 웃겨 죽일 셈이야? 운명이나 기적같은건 없어.
 
 
정말 그럴까? 어지러운 상념들이 정리될때 쯤, 퇴근시간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은 참 시간이 빨리간다. 사실 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긴 한지도 모르겠다. 아내 때문이다. 나의 아내. 나의 아름다운 아내는 사랑스런 보물을 품었다. 그녀가 처음 산 낙낙한 원피스를 입고 날 놀래켰을 때, 나는 바보처럼 눈물이 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그녀는 많은것을 빼앗겼다. 일을 그만둬야 했으며, 몸이 약해 침대에서 나오기만 해도 녹초가 되었다. 가끔은 식탁에서 밥을 먹다 말고 잠들기도 했다.
그리고 3일전, 그녀는 식중독에 걸렸다. 나 때문이다. 그녀가 힘든걸 볼 수 없어, 식사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출근 전에 해놓고 나간 스튜가 상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녀와 결혼하던 날,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으리라 다짐했던 난 초라하게 그녀가 먹은 그릇을 치우고,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는 그녀의 손을 잡고 울며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그녀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식비와 청구서 몇장에 전부 날아가는 내 월급, 텅 비어있는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출근 전에 봤던 그녀는 여기저기 음식물이 얼룩진 누렇게 바랜 원피스를 입고 마지막으로 씻은 게 언제인지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이봐 딕, 자네 집 앞에 복지사 차가 있어.”
 
복지사, 아내는 그들을 ‘아이 훔쳐가는 도둑놈들’이라 불렀다. 그들은 귀신같이 보호자가 없는 집만 찾아 아이를 태워 사라지곤 했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 베이비시터가 잠시 옆집의 수영장 청소하는 남자에게 작업걸러 간 사이에 남겨진 아이, 어떤 경우든 ‘혼자 남은 아이’를 타겟으로 그들은 움직였다. 연락처조차 남기지 않고 일사분란하고 깔끔하게, 그렇게 사라진 아이들은 고아원에 보내진다고 했다. 뒤늦게 부모가 연락을 취해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아이를 입양하실겁니까?’밖에 없다고 아내는 마치 괴담을 늘어놓듯 말했다.
 
하지만 걱정마 딕, 우리 아이는 안전하니까.
 
 
복지사가 우리집에서 나왔을때, 그녀의 품 안에는 작은 빵 꾸러미같은게 안겨있었다. 잘못되었다. 이건 잘못되었다. 차에서 내려야해. 차에서 내려서 저 빌어먹을 여자를 막아야해.
하지만 차문은 열리지 않았다. 잠겨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강력한 자석이라도 달린듯 문은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용없어, 알잖아 딕” 동료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가 내리려면 집 앞에 정차해야해, 하지만 집앞에 복지사 차가 서있으니 자네도 내릴 수 없어.”
 
 
집 안에 들어서니 새삼 허기가 밀려왔다. 단층짜리 작은 집, 집안은 조용하고 어둑했다. 창가에 놓인 자그만 아이 침대가 한줌의 석양빛을 받고 있었다. 마치 옛날의 기억처럼, 침대를 비추는 빛은 희미하고 고요했다. 집은 비어있었다. 복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내의 유골함이 보였다. 아마 아내는 저기서 쓰러졌으리라. 눈물이 났다.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몹시 허기졌다. 나는 아내 생각을 멈추고, 아내가 먹다 남긴 치즈 샌드위치를 치우고 바닷가재 테르미도르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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