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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원에서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 봉사자로서의 남성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직원으로 계신 분들 외에 남자 봉사자들은 1층에서 출입구를 맡고 계시거나 예비 신부님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보통 일반 봉사자의 대부분은 여성입니다.
어제 저녁 진료 때 간호사실에 빨간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남성 한 분이 환자의 혈압과 체중 재는 것을 돕고 계신걸 보고 왠지 어색해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낮 진료를 위해 요셉의원에 도착하니 그 분이 같은 자리에 앉아 계셨습니다.
환자가 잠시 끊긴 틈을 타 인사를 나누었는데 알고 보니 식품영양학과 교수님이신데 방학을 맞아 일반 봉사자로 요셉의원에서 활동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침 고혈압 당뇨 치료에 간과되는 부분인 식이요법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 중이었던 터라 조언을 듣고자 말씀 나누길 청하였습니다.
평소 교수님 또한 약물치료 이전에 질병의 예방차원에서 일상 생활에서 먹는 음식의 치료적 기능을 고민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농작물 생산부터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조리방법까지 바른 먹거리를 추구하는 과정을 그대로 살린다면 부작용이 없는 장점을 살려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한 축이 될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는 식품영양학이 그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인지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의사는 영양학 부분에 대해 아는 바가 적습니다. 간호사 수업엔 간호영양학 이란 수업이 있다고 하는데 저희는 따로 커리큘럼을 통해 배운 기억은 없습니다. 고혈압 당뇨를 처음 진단받게 되면 약물치료 이전에, 또는 약물치료에 병행하여 식이요법 교육이 필요하고 이에 대해 따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의사가 환자 한 명 한 명 일일히 식단을 짜 주는 역할까지는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도 하고요.
돌이켜 생각하니 저도 식품영양학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군요.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경도의 임신성 당뇨를 진단받았습니다. 임신성 당뇨의 어려운 점은 태아 보호를 위해 약물치료가 불가능해 식이요법에 실패하는 경우 바로 인슐린 치료가 필요하다는데 있습니다.
아내도 간호사인지라 그 위험성을 나름 심각하게 인지했는지 한 끼 한 끼 정해진 칼로리와 먹어야 할 과일 채소 종류를 정확하게 지켜 다행히 인슐린 치료 없이 건강한 둘째 아이의 출산까지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엔 산부인과에서 영양사를 통해 식이요법 방법과 식단 구성을 가르쳐주고 근처 내과에서 따로 당 관리를 진행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참 간사하죠? 임신성 당뇨를 겪은 경우 이후 실제 2형 당뇨가 올 가능성이 높아 식이요법을 계속 유지해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더군요. 당장 하루 네 번 체크하던 혈당관리도 없고 아이 때문에 반드시 혈당을 잡아야 한다는 위기감도 없으니 이전 같은 철저한 식이 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이 부분에 대해 미리 짜 놓은 식단에 맞춰 건강식 반찬을 배달하는 방안과 미리 교육받은 영양사가 신청한 가정에 방문해 2-3일가량 함께 장보고 음식을 만들며 그 가정의 식단 구성을 바꿔나가는 방안을 구상해보고 있다 했습니다. 물론 비용 부분의 현실성은 다시 고려해봐야 할 겁니다.
요즘 제가 관심 갖고 배우고 있는 태초 먹거리 운동에서도 같은 고민이 보입니다. 지금의 우리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가 여러 면에서 건강과 점차 멀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상품성을 위해 짜고 맵고 달게 자극적인 맛으로 덮여있고 그 원료는 원가절감과 부패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해로운 물질로 가공이 되는 상황입니다. 집에서 음식을 해 먹더라도 농산물과 축산물 등 재료의 안정성에 확신을 가지기 어렵고 무농약 유기농 재료는 비싸 쉽게 접근하기 힘듭니다.
이런 현실에서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생산자 입장에선 돈 되지 않는 건강한 먹거리 생산은 쉽지 않을 겁니다. 현명한 소비자가 늘어나면 생산 과정에 대한 감시 능력이 강화되고, 관련된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에 따라 건강한 먹거리 생산이 탄력을 받게 되는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교수님과 대화가 필요한 상황이 자주 올 것 같습니다. 함께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될 지도 모르죠. 짧은 만남과 대화였지만 의미 있는 연결을 이어나가고자 연락처를 교환하고 인사드렸습니다. 오늘도 봉사활동을 갔다가 오히려 많이 배워 온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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