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기억한다.
처음 컴퓨터를 분해를 보겠다고,
어설프게 pc사랑 잡지를 몇달 째 끌어안고 집에있던 컴퓨터를 뜯다가 보드를 작살낸
그 서글픈 고2의 봄 방학을...
그렇게 그나마 덜덜 거리며 돌아가기라도 한 컴퓨터를 잃었다.
당시 꽤나 고가이던 컴퓨터를 작살내고 나서,
그 보드 작살의 순간을 목격한 동생의 입막음과 나의 생존을 위해
그간 몇 년 간의 명절마다 조심스레 밑장빼기를 시도해 감춰두었던,
비자금의 반을 동생과 함께 피씨방에서 박살 냈으며,
컴퓨터를 잃는 대신 얻은 핸드폰과 여자친구의 여파로,
남은 비자금 또한 그렇게 순식간에 박살 냈다.
그리고, 통장 잔고가 1000원 단위로 내려가 인출기에서 인출이 안될 쯤...
나는 문득 떠올렸다.
내가 컴퓨터를 분해 해 보겠다고 설쳐대던 본질적인 이유를...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진 가을 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해보겠다고,
발품팔아 전단지도 돌리고,
술병도 나르고,
땅도 파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다시 비자금이 조금씩 모여가던 그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
나에게 워크래프트 1을 전수하고 어머님께 등짝을 잃은 삼촌을 따라
새벽부터 용산을 돌아다니며 컴퓨터를 살려냈고,
업그레이드 까지 감행한 그 컴퓨터의 상향된 놀라운 사양에 펄쩍뛰며
나의 무전기 같던 핸드폰의 잦은 방전과
쌓여가는 문자를 획기적으로 케어하지 못했던 어리석은 나는...
그 겨울.
그렇게 여자친구를 잃었다.
지금까지도...
날이 춥다.
이불밖 세상은 너무 위험하고
쌓여가는 귤껍질은
홀아비 냄새를 상큼하게 없애준다.
오늘도 우리 컴게에 어김없이 올라오는 질문글과 정보글 사이에 열심히 눈팅을 하며,
아주 오래전 한 친구가 남겨준 주옥같은 명언을 떠올려 본다.
추운날 싸돌아 다니면 잡혀가서 썰매끈다. - 루돌프.
출처 |
메리크리스마스. 그 옛날의 아름다웠던 그대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