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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인수하는 과정
게시물ID : readers_114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낯선상대
추천 : 1
조회수 : 35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23 17:37:23

천지를 뒤흔들었던 거인들의 전쟁이

고요한 냉전으로 바뀌고,


사나웠던 제왕들의 육체에

불멸의 뱃살이 붙었을 무렵,


깊은 산 속 폐공장 안에서 

정체되었던 세계에 격변을 일으킬 

최초의 혈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폭발음이 산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엄청난 소음에도 불구하고이 공해의 원인제공자인 론은 

고철 더미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가 폐공장의 뚫린 지붕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흥분에 젖은 채 신내림을 받은 듯한 춤을 추고 있었다.

 

비록 춤의 신이 아니라 황신의 영접한 듯한 춤 솜씨였으나설령 론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할지라도 

누구 하나 그에게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강렬한 외모에 정신이 팔렸을 테니.

 

론은 그가 애용하는 빨강과 하양의 줄무늬 타이츠를 입고 있었다

다만 월리를 찾아라 코스프레로는 충분한 가관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 

그 위로 쓸데없이 큰 노란 웃옷을 걸쳐 우스꽝스러움을 한층 더했다

게다가 실제 치수의 배는 될 듯한 새빨간 구두와 샛노란 장갑까지 더해 시각테러라는 단어의 존재의의를 입증시켰으며

머리 위에 한때는 아름다운 적발이었으나 이제는 추하기 이를 데 없는 붉은 아프로를 얹혀놓기까지 했다

가히 패션계의 흉악범이 그를 코디해준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복장을 보는 것만으로 복장이 터지는 많은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론은 본인이 어떤 몰골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말끔히 차려입은 노신사가 고철 더미 안에서 일어났을 때

자신의 형상이 심장 마사지를 대신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에 감동하여 

공격을 이어나가는 대신 말을 건네고 말았다.

 

“모처럼 무덤까지 지어드렸는데 그냥 계속 누워계시지 그러셨어요할아버님.

 

아무렇지도 않게 먼지를 털며 잔해더미 속에서 일어난 노인은 첫눈만큼이나 새하얀 사람이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희게 탈색된 머리와 수염세월을 피해온 근육과 정통으로 맞아온 지방을 감싸는 하얀 피부

그 위를 덮는 순백의 셔츠와 하얀 여름 양복

만약 지금 당장 눈보라가 쳐서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여버린다면 

그의 검은 넥타이와 구두그리고 안경테만 공중에 동동 떠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다

최소한 론이 그를 고철 더미 밑으로 깔아뭉개지만 않았더라면 그정도로 하얬을 것이다

 

노신사는 더럽혀진 양복에서 먼지를 털어내며 론을 노려보았다.

이에 론은 갑자기 목이 조여온다는 듯 컥컥거리며 몸을 비틀어댔다

노신사는 혀를 차고 잔해 속에 박힌 검은 지팡이를 뽑으며 물었다.

 

“뭐하나?

“갑자기 절 죽여버리겠다는 눈을 하시길래 실망시켜드리기 싫어서요.

 

즐겁게 답하는 론과는 달리 

노신사는 몇 초 전까지 자신을 폭사시키려던 미치광이와 농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답해라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거냐

나와 다른 이들을 여기로 초대한 건 ‘왕’과 ‘미녀’가 아니었나?

 

론은 손을 내저으며 유쾌하게 답했다.

 

“에헤이설마 그분들 초대장을 제가 흉내 냈겠습니까

초대야 두 분께서 하셨죠전 그저…… 기회를 잡으려는 겁니다.

 

노신사가 그의 말을 이해하기까진 찰나도 걸리지 않았다

그가 ‘광대’를 혐오하는 데에는 

조금 전 자신을 죽이려 들었다는 것과 나사 대여섯 개가 빠진 놈이라는 것 외에도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대기업들의 주인들을 모두 죽인 뒤 사업을 인수하겠다는 그것 말인가

그 가당찮은 꿈은 아직도 버리지 못했나?

 

론이 연쇄살인과 재산탈취를 꿈으로 품고 있는 사내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맑게 웃으며 되물었다.

 

“깔깔깔그래서요다들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하지 않던가요

게다가 애초에 ‘왕’이 여기로 오면서 무기 한두 개쯤 가져오라고 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자네 같은 병……자네 같은 놈한테 억울하게 당하지 말라는 거겠지.

 

“땡정답은 서로 죽고 죽이기 위해서였습니다유감이네요!

 

노신사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지으며 손수건을 꺼내 먼지로 뒤덮인 안경을 닦았다

여분 안경이 없었기에 폭발로 금이 간 안경은 도로 콧잔등 위에 얹혀졌다

론은 황당해하는 노신사를 향해 말을 이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왕’이 왜 5성급 호텔도 아니고 범세계적 대기업의 수장들을 이따위 산중으로 부르겠어요

그것도 자기 지역 중 하나인 곳으로요심지어는 근방에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고통신수단도 전부 먹통이죠

폭탄 하나가 터졌는데도 아무도 달려오지 않잖습니까느낌이 딱하고 오지 않으세요?

 

“자네를 죽여도 정당방위가 성립될 것 같다는 느낌은 오네만.

 

론은 짜증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곳은 ‘왕’의 지역입니다이 산을 떠나지 않는 한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왕의 책임일 뿐이다이거죠

굳이 이런 곳에 무기를 들고 오라는 말의 저의가 뭐겠습니까?

 

“자네가 덤볐을 때 그걸로 두들겨 패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네.

 

“아뇨! 어느덧 부동이 당연시된 이 업계에서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겁니다

범세계적 대기업의 수장들을 한자리에 몰아넣은 다음 싸움을 붙여 

약육강식적자생존이라는 시장의 섭리를 가장 본질적인 수준에서 이끌어 내겠다는 거라고요!

 

노신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광대’의 말이다절대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실제로 ‘왕’의 초대장은 이곳에 모일 모두에게 무기를 가지고 올 것을 명령하고 있었다

비록 론의 생각처럼 극단적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식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피 튀기는 싸움을 권하는 뉘앙스는 분명히 담겨있었다

노신사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대기업에서 범세계적 기업이 되면서 그가 겪어야만 했던 혈투를 회상했다

이제 그런 세월은 다 뒤로한 줄 알았는데.

 

“시간에 목숨을 거는 업계의 주인들이 아직도 안 나타난 게 설명이 되는군.

 

론은 설득이 통했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말했다.

 

“그렇죠작은 반항입니다

여기 모이는 모두가 다 한 가닥씩은 하는 사람들인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손 뗀 일들을 지금 와서 다시 하라고 하면 불만이 없을 수 없으니까요.

저는 상관도 없고 미리 준비할 것도 많으니 제시간에 일찍 온 거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냥 아예 안 올 수는 없으니 투정이라도 부리겠다는 생각들일 겁니다.

 

“아니그냥 자네 같은 생각을 하는 바보들 때문에 쓸데없는 힘 안 빼려고 일부러 늦게 오는 걸세.

 

론은 어느 간결한 남자와 토론했던 어느 교수가 내쉴 법한 한숨을, 

어느 교수와 토론했던 남자가 사용했던 논리를 가지고 말했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시니 설득할 자신이 없네요그냥 추후에 직접 물어보세요

어차피 결국에는 다들 한자리에 모이게 될 테니까요.

 

노신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승에서 말인가?

 

“어어떻게 아셨어요?

 

“방금 막 날 죽이려 들 때 저승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

 

노신사의 말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졌다.

론은 노란 웃옷 안으로 손을 뻗어 독특한 형태의 총을 꺼내 들었다

노신사는 지팡이를 양손이 쥐고 론에게로 달려들었다

론이 다가오는 노신사를 향해 조준하며 외쳤다.

 

“맥모닝 핫케이크!

 

론의 총인 맥모닝이 가열했다

맥모닝 핫케이크는 고열을 담은 총알로 적을 관통하며 동시에 고열로 그 부근에 화상을 입히는 견제 공격이었다

총상 자체보다는 화상을 통해 이후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이 그 목적

이는 근거리로 다가온 노신사를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론이 그에게 치명상을 입힐 절호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맥모닝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분명 그리되었을 것이다.

 

“발도(拔刀)콘 샐러드.

 

노신사의 검이 지팡이 형상의 검집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론의 맥모닝이 미처 총알을 발사하기도 전 

그 총을 양배추 잎처럼 얇게옥수수알만큼 작게 썰어놓고는 빨려지듯 검집으로 되돌아갔다.

 

총 안의 수많은 탄약이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맥모닝은 론의 손 안에서 폭발했다

론의 특수 방미(防美겸 방폭(防爆장갑이 아니었다면 론의 손은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론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맥모닝의 파편들을 바라보며 뇌까렸다.

 

“아씨…… 이거 하나 만들려고 얼마나 개고생했는데……

게다가 핫케이크 말고도 쓸만한 기술이 얼마나 많은데 이걸 단박에 부숴버리시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선빵 때린 다음 바로 확인사살 들어갈걸…….

 

공대생의 슬픔이 묻어 나오는 론의 불평에 노신사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어이가 없구나로날드 ‘광대’ 맥도날드여.

 

로날드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노신사의 공격이 이어졌다.

 

“스마트 초이스.

 

지팡이가 빠른 속도로 론의 양어깨를 한 번씩 찔러 들어갔다

론은 뒤로 크게 뛰어 둘 사이의 거리를 벌렸다

만약 지팡이 검집이 벗겨져있는 상태였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감이 잡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노신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도 자네가 각 기업의 수장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흔한 늙은이 한 명에게 벌써 세 번씩이나 죽을 뻔한 자네가?

 

“정확히는 열세 번이죠그 콘 샐러드라는 기술정확히 열한 번 베더군요.

 

“눈은 빠르구먼.

 

로날드 맥도날드는 조금 전에 울적해 있던 것은 다 잊었다는 듯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자기를 흔한 늙은이라고 부르기엔 좀 쑥스럽지 않으십니까할랜드 KF1C 샌더스 대령님

괜히 Kills From Single Contact’의 약자가 별명이 된 게 아닐 텐데요

왕년에 일격필살혹은 일격으로 보일 정도로 빠른 공격으로 적들의 멱을 따갔던 분께서 겸손이 과하시는군요.

 

샌더스 대령이 론 주변을 돌며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나에 대해 그렇게 둘둘 꿸 정도로 잘 알고 있다면 슬슬 물러서지 않겠나

자네가 계속 날 죽이려 들겠다면 더는 가볍게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야

제때에 반응을 보이지 못한다면 그 좋은 눈도 무용지물이네.

 

론은 안 들린다는 듯 딴청을 피우며 이야기를 돌렸다.

 

“그래도 요즘 들어선 평화주의자가 되신 줄 알았는데결국 전쟁터에서는 본색을 드러내시네요.

“노인네한테도 쩔쩔매는 꼬맹이에게 내 귀한 사업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아서 말일세.

 

론은 대령의 반박에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 걱정일랑 꽉 붙들어 매세요할아버지 사업은 자본만 빨아먹은 다음 비료로 쓰고 버릴 테니까요.

 

대령은 웃지 않았다

비록 뻔한 도발이었으나그의 사업을 모욕하는 것을 묵인할 수는 없었다

그는 발에 박차를 가했다.

 

“치킨 샐러드!

 

론은 그 기술을 알고 있었다콘 샐러드와 같은 발도술이지만 

빠른 속도로 검을 뽑아 적을 베다가 중간에 검을 세워서는 그대로 찔러 넣는 기묘한 기술이었다

과거 이 기술을 모르고 그저 발도를 피하는 데에만 급급했던 적들을 차례차례 없앤 훌륭한 기술이었으나

대처방법은 허무하리만치 간단했다

우선 뒤로 물러나며 베기를 피하고옆으로 한발 움직여 찌르기를 피한 후 반격하면 된다.

 

론은 웃으며 뒤로 한발 물러나려 했다

그리곤 자신의 뒤를 거대한 컨테이너가 막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컨테이너가 여기에 있었던가? 

론은 당황했다

동시에 바로 이 찰나의 당황이 샌더스 대령이 노렸던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여기로 몰아가려고 일부러 빙글빙글 돌면서 접근했던 거였군.

 

“젠장.

 

론은 대령의 베기를 피하지 못했다대령은 정확히 론의 심장에서 검을 멈춘 후 몸무게를 실어 검을 찔러넣었다

론의 몸이 컨테이너의 벽에 구멍을 남기며 뒤로 튕겨 날아갔다

론은 컨테이너를 통과한 후에도 몇 번 땅 위를 구른 다음에야 추하게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컨테이너에 뚫린 구멍을 통해 로날드에게로 걸어가던 대령은 순수하게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 순간에 몸을 틀어 흉골로 막았다지만 상처가 심히 얕군방검복을 입은 것도 아닌데.

 

방금 받았던 충격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론은 몸을 튕기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 샌더스 대령의 검이 찌른 장소에는 피 몇 방울 나올 정도의 옅은 생채기만 나 있었다

론은 꾸밈없이 웃었다.

 

“설마 제가 중소기업 수준의 전투 실력만을 가지고 이만한 기업을 이뤄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저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보다는 제가 쓰러지지 않게 만드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제 다양한 기기들이 공격을 대신해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친절한 설명 고맙네그러니까 샌드백이란 말이군.

 

“그래도 대령님만큼 허약한 것보단 낫지요대령님께서는 공격에 특화되셨죠

저번 폭발이야 이름도 없는 폭탄에 당하신 거라 용케 버티셨습니다만

한 번 더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제대로 이름이 붙은 폭탄에 당하시면 어떨까요?

 

검을 지팡이 검집에 꽂고 있던 샌더스 대령의 몸이 굳었다

그는 아직 컨테이너 안에 있었다

그리고 폐공장에 있는 컨테이너 안아무것도 없어야 할 그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줄곧 여유만만하던 샌더스 대령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과 함께 옅은 공포가 떠올랐다

론은 샌더스 대령의 그런 표정에서 황홀경을 느꼈다

그는 땅바닥을 나뒹구는 척하면서 몰래 꺼내 들었던 스위치를 눌렀다

론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빅 맥-4(Big Massively Advanced C-4).

 

컨테이너의 안에서부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론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감상하며 쾌감에 젖어들었다

그는 입을 벌린 채 컨테이너를 집어삼키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론은 그 안에서 형언할 수 없는 미학을 발견했다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둘로 나뉜다창조그리고 파괴

론은 그중에서 파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낳는다고 생각했다

다들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오르는 모닥불을 아름답다며 응시한다왜일까목재가 파괴되는 순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병맛 개그를 좋아한다왜일까고정관념이 파괴되는 순간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파괴는 순간에 걸쳐 창조가 기나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낸 모든 결과물을 혼돈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그가 만들어낸 파괴가 단 하나의 창조물을 파괴하지 못했을 때 

론은 자신의 중2병 미학이 망쳐진 걸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떻게……?

 

불길 속에서 노신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7살 때미군에 입대해 청춘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잿더미 사이에 서 있는 샌더스 대령에게는 전에 보지 못했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샌더스 대령은 지팡이에서 검을 뽑았다

이는 론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고검기만으로 그의 양복을 갉아먹던 불길을 잠재울 정도로 강력했다

샌더스 대령은 웬만한 장정보다도 우직한 상체를 털며 말했다.

 

40살 때희망을 품은 채 가족과 함께 식당을 차렸고, 41살 때불로 모두를 잃었다.

 

샌더스 대령은 완전히 박살이 난 안경을 목의 힘만으로 땅바닥에 내던졌다

론의 동공이 그의 눈에 꽂혔다론은 대령의 눈에 분노와 한을 서린 것을 보았다

……이런 이유로 성질 돋울 줄 알았다면 빅맥에서 불 기능은 뺐을 텐데.

 

“그러나 난 절망에 얽혀있지만은 않았다

요리비법을 팔기로 했고일천 하고도 여덟 번의 실패를 겪은 끝에 

마침내 국도에 작은 지점을 냈다그러나…….

 

샌더스 대령은 서서히 검을 들었다

 

“내 사업의 성장을 견제한 네놈의 로비 때문에 

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국도의 사용이 줄며 자연히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이런 이유로 기억을 떠올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빅맥을 썼을 텐데.

론은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재빨리 웃옷에서 숨겨두고 있었던 또 다른 맥모닝을 꺼냈다.


“맥모닝 빅 브렉퍼스트!

 

맥모닝에서 수많은 총알이 흐드러지듯 쏟아져 나왔다샌더스 대령이 검을 휘둘렀다.

 

“트위스터.

 

검기는 선풍을 만들어냈고

용오름처럼 휘몰아친 바람은 총알의 궤적을 일그러뜨렸다

저런 게 가능하니 폭발과 폭풍 속에서도 저리 폼을 잡지. 

속으로 이죽거리고 있는 론을 향해 걸어가며 샌더스 대령이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씹듯이 뱉었다.

 

“내가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아나?

 

론은 침을 삼켰다저 작자를 상대할 수 있을만한 무기를 떠올려야 했다.

 

“나는 65세의 나이에 직접 포장마차를 끌고 고속도로를 돌며 음식을 팔았다!

 

대령의 외침을 듣는 순간

론은 자신이 자랑하는 어떤 기기도 대령 같은 괴물은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전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했다.

하얀 악마가 포효했다.

 

“육체는 늙어도 근성은 불변한다애송아네놈의 어린이 장난감 따위가 내게 통할 성싶으냐!

 

다음 순간론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지 못했다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그 직후 전신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고론은 그가 미처 눈치채기도 전 이미 땅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의 귓가에 저승사자의 것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핫 크리스피 치킨.

 

론은 기술명을 듣고 나서야 자신의 사태를 파악했다

샌더스 대령은 그의 전신을 베었다

정확히는 마치 피부만 발라질 듯 얇게그러나 화형을 당한 듯 처참하게온몸 구석구석이 썰렸을 터였다

아까부터 주변에 느껴지던 끈적한 것들은 그의 피였다직감적으로 그의 머리에 어떤 단어가 떠올랐다.

 

과다출혈.

 

베기도찌르기도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 그를 아예 말려 죽일 생각인 거다위험한 상황이다

론은 전신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지는 고통 끝에 가까스로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무언가를 미처 꺼내기 전샌더스 대령의 발이 이를 짓밟았다

론은 대령을 올려다보았다

샌더스 대령은 침울한 얼굴을 하고 피로 얼룩진 광대를 내려다보았다.

 

“미안하네자네 행동은 예측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하나하나 봐주다간 오히려 이쪽이 위험해질 것 같아 섣불리 기회를 줄 수가 없네

용서해주게난 내 자식 같은 사업을 ‘광대’에게 넘길 순 없네.

 

샌더스 대령은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론은 킬킬 웃었다

언제라도 자신의 동맥을 그을 수 있는 검을 보며 웃는 론에게 샌더스 대령이 의문을 표했다.

 

“실성했나?

“아뇨그저 죽이는 농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들어주실래요?

 

론의 숨이 가빠졌다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어느새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샌더스 대령은 잠시 갈등했으나결국에는 그의 천성에 굴복했다.

 

“짧다면.

 

론은 목을 가다듬었다.

 

“옛날옛날아주 먼옛날어느 대령과 광대가 있었어요

그 둘은 왕의 명 아래에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요

한창 서로 지지고 볶고 재미나게 놀다가마침내 대령이 광대를 위기에 몰아넣었답니다.

 

샌더스 대령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말이죠광대의 수중엔 수많은 쓰레기 패들과 함께조커가 한 장 있었어요.

 

론의 숨소리가 격해지고 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몸에 주입되면 수명 몇 년을 포기하는 대신 전신의 근육을 단숨에 거대화하고

신경을 극도로 활성화하고상처를 급격히 치유하는 돌연변이 유전자의 힘을 발현시켜 주는 약물이었죠

그래서 광대는 상황이 위험해지자 그 약을 몰래 자신에게 주사했답니다.

 

충격에 굳어있던 대령의 검이 마침내 광대의 목을 향해 내리쳐졌다

그러나 론이 더 빨랐다

그는 한 손으로 샌더스 대령의 발목을 붙잡고 저 멀리 던져버렸다

대령은 종잇조각처럼 날아가 공장의 벽에 처박혔다.

 

 

------

 

로날드 맥도날드는 우렁차게 웃었다

약물의 효과로 굵어진 목소리를 더는 감출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하지만 바보 같은 대령은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곤 조커를 쓸 때까지 기다려주었지요

분명 본인은 자기가 무척이나 착하다고 생각했을 거에요얼간이들의 논리죠

자기 파괴적인 친절을 베푸는 게 착한 일이라는 거요!

 

샌더스 대령은 휘청대면서도 일어섰다그는 멀리에 서 있는 론을 바라보았다.

그의 키는 2미터를 훌쩍 넘어있었으며 몸에 있는 근육이란 근육은 전부 비대해진 듯했다

그가 늘 헐렁하게 입던 노란 웃옷은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대령의 공격에 조금씩 찢어져 있던 타이츠는 론의 부푼 몸을 감당하지 못하고 넝마처럼 갈기갈기 흩어져있었다.

그 기괴한 모습을 과거에도 목격한 적이 있는 샌더스 대령이 나지막이 말했다.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Mutation Empowerment])……금지된 약물일 텐데.

“서로 목숨을 걸고 노는 마당에 금지된 약물 하나 쓰는 것 정도는 ‘왕’도 이해해줄 겁니다.

 

대령은 혀를 굴려 입안에서 맴돌던 핏덩어리를 뱉어냈다피와 함께 부러진 어금니가 섞여 나왔다.

 

“그 약물이 금지된 이유는 생명을 단축하는 부작용 때문이 아니다

몇 개월 이내로 지능을 무너뜨리고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이지아직도 그 부작용엔 해결책이 없어

네놈의 또 다른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큰 선택이었다로날드 맥도날드.

 

“지금 죽는 것보단 나중에 미치는 게 훨씬 더 낫답니다샌더스 대령님.

 

샌더스 대령은 피와 먼지로 덮인 검신을 손으로 닦았다.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 미쳐가는 쪽보단 지금 죽는 쪽이 자네 주변 사람들에게는 더 편하겠지

자네 회사에 혼신을 불사르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자네는 죽는 게 더 이롭겠구먼.

 

이에 론은 호쾌하게 웃었다범과도 같은 호탕한 웃음소리가 대령의 몸을 울렸다.

 

“꼭 저를 죽이실 수 있으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잊지 마시죠이 약물은 순수하게 지적 퇴화라는 부작용 때문에 금지가 된 약물이라는 걸요.

 

론이 이미 막대한 전신의 근육을 한껏 부풀리며 외쳤다.

 

“단언컨대지금의 제 육체는 가장 완벽한 갑옷입니다

평범한 진보에서 극단적인 보수 수준이 된 제 몸을 보세요!

 

샌더스 대령은 이 와중에도 이해 못 할 개소리를 내뱉는 론은 내버려둔 채 몸을 추슬렀다.

전력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 정도는 그 비슷한 수준의 공격이 가능할 것 같았다.

 

“저격수의 총알도 막아낼 수 있고전차의 장갑도 뚫을 수 있는 육체지요

그런데도 마치 절 쓰러트릴 수 있다는 양 재미도 없는 농담을 하시면……”

 

론은 미친 듯 웃으며 샌더스 대령을 향해 돌격했다.

 

“단명하십니다!

 

론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이 공포로 몸을 떨었다

샌더스 대령은 차분히 론에게 검을 겨눴다.

 

 

샌더스 대령은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만의 식당에서 굽는 데에 최초로 성공해낸 치킨을 떠올렸다

그가 상상해온 그 맛이 마침내 탄생했을 때그는 이를 모두가 맛볼 수 있길 바라며 사업을 키워나갔다

비록 맥도날드의 견제에 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으나그는 성공해냈다

그리고 대령은 자신이 그리도 열심히 키워온 회사를 론에게 넘겨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론은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는 강철도 비틀 몸과 육중한 몸무게를 이용해 그대로 대령을 압사시킬 생각이었다

대령의 몸은 베이컨처럼 납작해지리라

그의 피는 토마토즙처럼 흩날리리라

그의 지성은 머잖아 붕괴될 테지만 그 전까지 수많은 파괴의 낳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 첫 번째 파괴다.

 

 

샌더스 대통령은 눈을 떴다

론은 중력에 몸을 맡겼다.

 

“오리지널 치킨!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

 

폐공장 안으로 파괴의 순간이 지나갔다.

우레와 같은 충격음이 허공을 메웠다.

먼지가 자욱이 깔렸다.

싸움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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