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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시골생활#5 언듯 조나단의 입가에 미소가 스치는듯 느껴졌습니다.
게시물ID : humorstory_4432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걍하자
추천 : 46
조회수 : 2102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6/01/04 12: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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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와, 심심해 죽겠다!

일요일 아침 아내와 저는 합창으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습니다.
토요일이야 오전에 잠깐이지만 가게에 나가고, 오후엔 아들인 제이의 스케줄이 있어서 그런대로 지나가지만 일요일은 진짜 하루를 보내는 일이 일이었거든요.
특히 겨울엔 더 심했습니다.
겨울에는 잔디도 자라지 않더라고요.
그 지겹고 힘들던 뒷 마당의 잔디깍는 일이 그리워질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의 한 미국교회에 나가는 일을 진지하게 고려했습니다.
제이의 친구들이 그 교회에 많이 있었고 아내와 저도 이제는 이 곳의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고심 끝에 결정하고서 다니게 된 미국교회인데 슬슬 재미가 붙더라고요.
물론 갑자기 믿음이 생겨나서 그런것은 아니고 음악 때문이지요.

교회의 남성 중창단의 성가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특히 우수에 잠긴듯한 목소리로 노래하다가 갑자기 폭풍처럼 몰아치며 중후한 저음들 사이로 뿜어나오는 한 젊은 친구의 목소리가 가슴을 휘젓고 다녔거든요.

와, 정말 그 10분을 위해서 1시간을 앉아서 이해하기 힘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어도 전혀 불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문화생활을 전혀 하지 못 하고 있던 우리는 그시간이 기다려질 수 밖에 없었지요.

스무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그 대단한 목소리의 주인공 이름이 조나단이었는데 예배가 끝나고 나오면서 우리와 마주친적이 있었습니다.

"헤이 조나단, 너 오늘 대단했어. 노래 진짜 잘 하더라."

"...."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쳐 가버리는 조나단의 뒷 모습을 보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정상적인 친구가 아니란 것을...

어느날 정말 인자하고 곱게 생기신 할머니 한 분이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겠냐며 가게로 찾아왔습니다.
다름아닌 조나단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이 분은 조나단의 할머니이신 로이스였습니다.

아내와 저는 찔리는것이 있어서 로이스를 보기가 좀 민망했지요.
왜냐면, 조나단의 노래에 반해버린 우리가 극성팬 노릇을 좀 했거든요.
조나단이 몸이 좀 안 좋은것 같은데 무슨일 인지, 지금 뭐하고 있는지, 누구랑 지내는지 등등, 주위사람들과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조나단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었습니다.
그것이 조나단의 할머니의 귀에 들어갔고, 로이스는 우리가 조나단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로이스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아내와 저는 이제는 극성팬이 아닌 조나단의 친구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조나단의 병은 일종의 무슨 자폐증 비슷한것 이었는데, 미들스쿨 다닐때부터 약간씩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어머니는 시부모에게 조나단을 맡기고 재혼을 해 떠났을때 였다고 하는데, 그 후 말이 없어지고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는 자폐증같은 병은 어린 아이때만 생기는줄 알았는데 사춘기 때에도 생길 수 있다는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조나단은 다른 어떤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노래하는것에 대해서만은 대단한 관심을 보였고 노래를 하는 동안에는 아주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빅터와 로이스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니던 교회의 찬양단의 리더에게 조나단을 부탁했고, 그 리더가 조나단과 오랫동안 붙어다니며 같이 노래하고 훈련하고 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로이스는 얘기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우리를 자기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주말 저녁,
아내와 저는 제이와 함께 조나단의 집에 도착했고 정겹게 환영해 주시는 두 분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로이스가 벌써 음식준비를 다 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조나단의 할아버지인 빅터가 지정해 주는대로 식탁에 앉았습니다.
음식은 따로 주방의 탁자에 차려놓아서 우리는 접시를 들고 음식을 가지러 갔는데, 김치며 불고기등 한국음식이 차려져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로이스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중국음식도 가끔 만들곤 하는데,
달라스에 살고있는 딸에게 부탁했더니 딸이 직접 한인타운을 찾아가서 한국음식의 조리법을 얻어서 보내 주었답니다.
그리고 동양마켓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만들었다는데 모양이나 맛이 그럴 듯 했습니다.

우리는 로이스의 정성으로 인한 감동에 젖은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아내는 로이스의 설거지를 돕고 저는 빅터가 교회에서 빌려왔다는 음향기기를 셋업 하는걸 도왔는데 무얼 하려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는 넓다란 리빙룸에 모였고, 빅터가 조나단을 데려왔습니다.
아, 그때서야 저는 빅터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깨닫고 기대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드디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반주기의 음악에 맞추어 조나단의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만 노래는 거의 다 복음성가를 불렀는데도 한 곡 한 곡 부를 때마다 아내와 저는 정말이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표정은 거의 무표정 이었지만, 목소리는 직접 옆에서 들으니 정말 특이했는데, 쓸쓸하고 애절한 감정이 넘쳐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곡을 부르는데,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하는 가사의 노래였습니다.
그 가사와 목소리가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듯 슬픔으로 가득 차서 저의 가슴을 후비는 듯 했습니다.
저는 결국 일어나서 뒷 마당으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겨우 가슴을 진정시켜 들어가니, 아내는 아예 소리내어 울고 있었고 로이스 또한 아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노래하나가 이토록 사람들의 마음속을 휘저어 놓을 수 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감동의 작은 콘서트가 끝나고, 저는 조나단에게 노래 들려줘서 고맙다고 어깨를 껴안아 주었고 언듯 조나단의 입가에 미소가 스치는듯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조나단이 하루빨리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그리고 빅터와 로이스에게 감사하며 조나단의 집을 나왔습니다.

그날의 여운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에, 저는 조나단이 유명가수가 되어 있을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알아 보았습니다.
(워낙에 노래도 잘 하지만 목소리가 특별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떠나온 그 다음 해에 조나단도 그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함께 그 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후, 로이스와 빅터도 손자의 소식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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