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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게시물ID : readers_235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osquemadura
추천 : 4
조회수 : 50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1/07 10: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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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시작부터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 달라고 새해 첫날 이름도 모르는 신께 빌었는데 말입니다. 목구멍이 아파 침을 삼킬 때면 생선 가시를, 아니, 트리케라톱스(전에 얘기해 줬던 친구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공룡입니다.)의 뿔을 삼키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그걸 보상이라도 해 주듯 어젯밤 꿈속에서 당신과 오래도록 축축한 입맞춤을 나눴습니다. 실은 건강을 빌기 전에, 당신과 언제까지고 행복하게 해 달라 빌었습니다. 함께이든지, 서로 떨어져 있든지, 당신이 바라는 대로.

그래도 혼자일 때 이렇게 아프다니 많이 서럽습니다. 지금껏 괜찮으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괜찮다고 답했습니다. 괜찮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입니다. 대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언제나처럼 찬물로 마무리 샤워를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없는 버릇 중 하나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겁에 질려 포기해 버린 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저 부끄러워서, 얼굴만이라도 찬물로 몇 번이고, 손이 빨개질 때까지 적셨습니다.

어제는 멀리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전철로 한 시간 거리를 달려 친구를 만나 저렴한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양옆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내들이 앉아 있었고, 제 앞에는 친구를 따라 시킨 온더록스가 놓여있었습니다. 당신도 알잖습니까, 제가 술을 못 마신다는 걸. 아무튼, 아픈 목에 담배 연기와 차가운 술을 쌍으로 들이밀었습니다. 저는 정말 자신을 사랑하지 않나 봅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신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식당에서 나온 후에 편의점에 가 따뜻한 코코아를 사 마셨습니다. 당신이라면 따뜻한 커피를 사 마셨을 텐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내일은 쉬고 싶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지도 않고, 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평생 아파서 쉬어 본 적이 없어서입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갈비뼈 네 개가 골절돼 입원한 적을 빼고는 말입니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누군가의 품에 꼭 안겨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하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번역을 마친 대본에는 두 주인공이 입을 맞추고 껴안는 장면이 많아서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며칠 전에 제 입술에 입을 맞춰 준 이가 있었기에 다행입니다. 아, 오해하지 마시길. 상대는 다섯 살, 어여쁜 꼬마 아가씨였습니다. 뽀뽀세례를 받는 동안, 절 닮은 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은 아빠를 닮아야 잘산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게다가, 저도 아빠를 닮았는데, 썩 잘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기침이 사정없이 나옵니다. 코도 막혀서 음식 맛도 느낄 수 없을 테죠. 먹는 것보다 잠을 더 좋아해서 다행입니다. 잘 먹고, 약도 챙겨 먹고, 푹 자고 나면 분명 괜찮아질 겁니다. 흘러가는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겁니다. 

있잖습니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이 있는데, 목이 아파서 도저히 못 꺼내겠습니다. 지금 앓고 있는 감기가 다 나으면 도로 쏙 들어갈 그런 말입니다. 그 말이 무엇인지 당신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안녕. 꿈에서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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