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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밥주는 아가씨.
게시물ID : love_115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쿠터세계일주
추천 : 2
조회수 : 57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9/24 20:14:32
오랜 여행에 지쳐 낙산공원에 왔다. 
 
낙산공원 운동기구가 있는 쉼터에 고양이 가족이 산다. 터줏대감 아빠냥이는 사람들의 손길을 피하기는 커녕 얼굴을 비비며 상당히 반겨주는 특이한 고양이다. 3마리의 새끼들 중 한녀석도 사람손길을 즐긴다. 나머지 둘은 사람을 심하게 경계하지는 않으나 만지는건 허락하지 않는다. 아빠냥이는 사람나이로 치면 할아버지 정도 되어 보이는데 덩치가 상당하고 비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왼쪽 볼엔 흉터가 있다.  

 저녁 8시즈음 고양이와 같이 쉬고 있는데 한 살집이 조금 있는 통통한 아가씨가 걸음을 멈추고 주섬주섬 캔을 꺼낸다. 

 "저기 고양이에게 캔 좀 줄려고 하는데 여기  놔두고 가도 될까요?" 

 안될 이유가 없었다.

 "아.. 네.." 

 아빠 고양이를 보며 아가씨가 말한다.

 -"와~ 너는 캔 안줘도 되겠다. 되게 뚱뚱하네~"

 - " 이 녀석은 도망도 안가요. 저기 보이는 녀석들 아빠에요"

 -"와 정말요?" 

 자연스레 고양이를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여기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들을 성의껏 설명해 주었다. 아가씨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 이야길 들었다. 

 이야기의 주제가 자연스레 서로에 대해 향했다.

 부산에서 오토바이타고 올라온 날 아주 신기해 했다. 그 모습을 나는 은근 즐겼다. 그녀의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들을 계속 들려 주었다. 

 그러다 서로의 나이까지 물어보며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져 갔다. 

 -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 음.. 몇살처럼 보이세요?" 

 - "글쎄요. 이십대 후반정도 되 보이는데.. 음.. 스물 여덟?"

 - (살짝 쪼개며) 삽십 초반입니다. 그 쪽은 몇살이세요?

 - "전 스물넷요" 

 - "아.. 전 서른셋입니다" 

 - " 와 저랑 아홉살 차이나 나네요" 

 - "그러네요. 많이 나네요 ㅎㅎ"

 그 아이는 갑자기 내 옆에 앉았다. 

난 순간 당황했지만 태연하게 다리를 꼬며 자세를 유지했다. 그 아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의 평정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부끄럼이 오기 시작했다.그 아이 눈을 오래 쳐다 볼 수 없었다.   서로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나눌때의 자연스러움과 자신감은 사라졌다.  

이야기 도중 난 괜히 고양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분 안되 가야 될거 같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일어났다.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응했어야 했나.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자기에게 호감이 없다고 자책했던건 아닐까. 

 이미 지나간 버스가 됬다.  

난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못했다. 괜한 자격지심과 지금의 처한 상황이 그 애와 좋은 만남이 된다한들 유지할 수 없는 내 처지였기에..  단지 그 아인 그냥 내가 신기했던 것일 뿐이었다고 혼자 결론을 내렸지만 아쉬움이 드는건 사실이다.  

만남이 끝나고 그날밤 바보같이 '이랬으면'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그 자리에 가서 괜시리 두어시간을 머물다가 털레털레 내려왔다.

- 9월 22일 낙산공원에서-


여행 중에 썼던 일기 조금 수정했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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