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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혼자 죽게해야하나.. 정말 심각하게 고민되더군요..
게시물ID : mers_115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낮게차분하게
추천 : 18
조회수 : 1657회
댓글수 : 48개
등록시간 : 2015/06/18 12:14:07
 
평소와 다를바 없는 퇴근,
 
디스크 수술후 찾아오는 통증은 오후에도 계속되었고
퇴근무렵에는 그냥 내일 못나온다고 말할까하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차에 시동을 걸며 냉장고에 맥주가 남아있던가, 담배도 얼마 안남았으니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고 슈퍼에 들러야겠다.
몇일 전 사다 준 옥수수 아이스크림은 별로라 했으니, 대신 설레는 아이스크림이나 3개 사다줘야지
 
늘 같은 슈퍼에 들렀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슈퍼주인
TV는 보지않을거면 차라리 끄지, 소리는 또 왜 저리 크게 해놓은건지...
 
아파트 계단을 한칸 오를때마다 조심스럽다.
혹시나 다리를 헛디며 몸이 휘청거리기라도하면 허리에 바로 무리가 올테니
난간을 꼭 잡고 올라가는 습관 아닌 습관...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꾼지, 몇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맨처음 아내를 만나고 우연히 정했던 6자리의 비밀번호를 십 몇년동안 썼는데
도대체 왜 바꿔버린건지, 하여간에 여러모로 귀찮게 한다니깐...
 
삐리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아들은 학교를 마치고 와서 컴퓨터 방에 앉아 평소와 다름없이 게임을 하고,
딸은 안방에 엎드려 TV를 보느라 아빠가 온 것도 모르고 있다.
" 야~ 못생긴 놈.. 아빠왔는데 인사도 안하냐...
그제서야 장난끼 가득한 인사를 하는 딸..
" 짜슥...
근데 뭔가 허전하다. 뭘까하며 잠깐 생각을 해보지만 딱히 떠오르는게 없다.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끝내고 그제서야 떠오르는 것, 하나 -
" 엄마는...?
" 엄마 아파요...
딸이 엄마가 누워있는 안방 구석으로 시선을 보낸다.
 
푹신함이 다 사라져버린 낡은 매트, 연한 갈색의 극세사 요를 덮고 누워있는 그 사람...
" 자...?
습관적인 말을 건네며 다가간다.
 
 
얼굴이 붉다. 어.....?
" 엄마 열나요... 아빠...
 
딸이 엄마의 상태를 전하며 다가온다.
살며시 얼굴을 덮고 있는 요를 젖히자, 이마며 얼굴이며 열로 벌겋게 달아오른 아내가 보인다.
딸이 가까이 다가온다. 어? 안되는데.... 뭐지... 설마... 아니겠지??
 
" 아빠, 물 한 잔 떠다줄래...?
 
딸은 엄마쪽으로 오다가 부엌으로 발길을 옮긴다.
" 나.. 열 나지? 병원 갈까...?
쉰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내는 아내..
" 병원 가봐야 자택격리나 시킬거야. 병원에 감염된 사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혹시 기침했어? 목 안아파...?
" 으.. 목은 안아픈데... 그러면, 그냥 저기 창고방으로 갈까?
그러면 애들 그 방에 오지말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딸은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을 컵에 받고 있고, 아들은 여전히 게임에 빠져있다.
 
생각해야만 했다. 분명 아닐 것이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고 믿어야할 것만 같다.
설마... 설마....
만약에 진짜면... 그러다가 이 사람 죽으면... 하...
딸은 이제 겨우 11살인데... 이 사람 없으면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딸은 아빠한테 초경이 시작되어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엄청 앓이 할텐데... 어떡하지...
그나저나 이 사람 혼자 만약에 떠나면.. 난 잘 살수 있나...
십몇년을 나만 보고 산 사람인데... 난 뭘 어떻게 하며 살아가야하는거지...
 
" 아빠 물 많이 떠갈게요... 엄마도 목마르다고 했어요.
 
딸이 다가온다. 멈추라할까.. 오지말라고 할까...
그런데, 벌써 딸이 물컵을 건넨다.
 
" 아냐.. 그냥 여기 누워있어.. 오늘 밤 자고 나서도 열나면 그때 병원에 가든지 하자...
" 응... 미안....
 
 
 
 
*
점심때 먹은 음식에 상한 조개가 있었고, 그게 원인이 되어 식중독이란 걸 알았네요.
손을 따고, 매실원액을 먹이고....
불과 5분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은 제게 지옥이었습니다.
 
 
출처 어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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