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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메스 13화
게시물ID : readers_115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떠돌이참견꾼
추천 : 0
조회수 : 1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25 17:08:39

은주가 11, 현이 8살이었을때 그들은 송씨 마을 바람언덕에서 처음 만났다. 소나무 아래 책을 읽고 있던 하얀 가운의 소년 현과한 줌 정도 되어 보이는 가냘픈 두 다리로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니던 꽃무늬 원피스의 소녀 은주는 바로 그 날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은주의 아버지 재현과 현의 아버지 무는 매 년 두 번, 구정과 추석 날에만 그곳을 찾았으므로 은주와 현도 매 년 두 번만 서로 교감할 수 있었다. 첫 추석 이후 찾아왔던 첫 구정 날에 그들은 서로를 잊지 않고 기억했다. 바람언덕에서 현은 수 많은 활자들에 빠진 척 은주를 기다렸고 은주는 마을을 마냥 돌아다니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왔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바람언덕을 올랐다. 그들은 반가운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분명 반가웠고 친해지려 애쓰지 않았지만 분명 친해졌다.

 

은주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현이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까지 둘은 만남을 이어갔다. 은주와 현이 맺어진 때는 8번째 만남의 날에서였다. 현의 키가 은주의 키를 처음으로 앞질렀을 때 현이 은주에게 먼저 다가섰다. 늙은 소나무 아래에서 둘은 입술을 맞댔다.

 

 

사단이 난것은 바로 그 날이었다. 재현과 무가 말다툼을 해 일찍 자리가 파해졌을 때 재현은 은주를 찾으러 바람언덕으로 향했다. 재현은 현에 대해 물었고 은주는 설명했다. 현을 알게 된 재현은 노발대발했다. 은주는 영문도 모른 채 현과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무는 재현이 떠난 자리에서 친구들과 계속 시간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언제나처럼 해가 질 때쯤 무는 현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언제나 있던 자리에 그 날은 현이 없었다. 무는 온 마을을 한참이나 휘젓고 다녔으나 끝내 현을 찾을 수 없었다. 무는 현을 좀 더 조심스럽게 돌보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현과 함께 있었던 건 재현이었다. 재현은 자신의 수하들을 시켜 현을 외딴 야산으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현을 죽이려했다. 재현의 수하는 둘이었는데 장검을 들고 있었다. 재현 옆에는 그와 비슷한 또래인 것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지 않았다. 다만 차가운 눈으로 파이프를 입에 물고는 뻐금뻐금 하얀 연기만 내뱉었다. 그는 한 곳에 쭈그려 앉아 망을 보는 시늉을 했지만 실은 그저 시선을 피한 것이었다. 그는 나무 뒤 숨어있는 은주를 발견했다. 그는 몰래 손짓해서 은주를 그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려 했다. 하지만 은주는 말을 듣지 않았다. 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조상들을 난자했던 왜놈들이냐?"

 

현이 재현을 날카롭게 째려보며 물었다. 이미 청년이 다 된 체구에서 당당하게 소리가 울려 퍼져 나갔다. 재현은 흥미롭다는 듯 현과 눈을 맞췄다.

 

 

"그것이 아니옵니다. 마마."

 

재현은 일부러 현을 골렸다. 현은 재현의 장난이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짓이냐!"

 

현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목을 뻣뻣이 세웠다. 복면을 쓴 재현의 무리들이 붉은 검을 지니고 있었으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왕족이다 이건가? 재밌군."

 

재현은 정신줄이 나간 듯 내키는 대로 웃었다. 웃음소리가 해괴해서 그 소리를 들었던 모두가 두려움을 느꼈다.

 

 

"왕족의 자긍심.. 네 부모가 그것을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이 아저씨는 오늘 너에게 다른 것을 가르쳐 줄 셈이다, 이현. 왕족의 수치심에 대해 가르쳐주마.

 

21세기의 왕족은 광대와 다르지 않다. 광대는 거짓 웃음을 팔아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지만 너희 왕족은 거짓 명예를 팔아 국민들에게 세금을 구걸하지. 평생 홀로서기라는 것은 해본 적이 없는 나약한 일족.. 그것이 바로 너희의 정체다!

 

너희의 수치심은 마땅히 조선의 멸국에 있어야 한다. 스스로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편협한 사고에 빠져서는 굶주린 백성을 외면하고 평온한 오늘에만 빠져 살았지. 금과 옥으로 치장된 자신만의 세계에서 내일을 고민하지 않았고 백성을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 그 결과 왜놈과 떼놈들에게 우리 땅은 유린당했지.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여겨라, 이현. 너희 일족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너희가 조선을 더럽히고 망가뜨렸다! 부러진 기둥은 백성들의 허리를 짓눌렀다! 망국의 현장에 우리 아버지도  있었지!!

 

우리 아버지는 무너진 조선의 현장에서 이 나라를 다시 바로 세우려 했다. 나라의 인재들을 모아 가장 낮은 자리부터 보살폈지. 하지만 헛수고였어. 윗물은 너무도 혼탁해서 그 어떤 용도로도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너희들과 연대하여 새 세상을 열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죽음으로 끝이 났다. 왕족은 조의조차 표명하지 않았어.. 아마 나라를위해 죽어간 그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거야..

 

나는 왜 이 땅에 아직도 너희들이 발을 딛고 서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너희의 효용가치가 없음을 망국의 역사 속에서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 것일까? 너희의 만행을 이미 다 잊어버린 것일까! 우리 아버지의 죽음을 제멋대로 용서해버린 것일까!!

 

진정한 전범은 너희다. 스스로 호의호식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였던, 그래서 백성이 무너지고 끝내 국가가 무너지는 것을 방조했던 너희다. 너희는 너희의 안위가 위협을 받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움직였어. 하지만 이미 때늦은 시기였지. 외세의 침략은 부차적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지. 전쟁의 시작은 너희의 방만한 삶이었다!

 

오늘 이곳에서 죽어라. 백 년 전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조선 백성들의 손 모가지를 절단 내던 왕족의 칼이 아닌, 이 땅의 봄을 되찾고자 자신의 전부를 희생했던 우리 아버지의 칼로 손수 너를 베어주마!"

 

 

재현의 말이 모두 끝나자 파이프를 물고 있던 중년의 남성은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칼을 집어들었다. 칼집에 눈이 묻어 그것을 털어낸 후 재현에게 건네주었다. 재현은 낡을 대로 낡아 버린 목재 칼집에서 날이 시퍼런 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 어떤 장식도 없는 미련한 검이었다.

 

현은 그제서야 떨었다. 풀썩 주저앉아서 고개를 떨구었다. 뽑아진 칼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지도 모르는 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저주했다. 왕족의 피는 더럽다고 생각했다. 이제껏 스스로 숭고하고 신성하다 생각해왔던 날들을 눈물로써 씻어 보내고자 하는 듯 서럽게, 처절하게 울었다. 울음소리가 온 산을 가득 매웠다. 무가 산의 끝자락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은주가 숨어있던 나무의 기둥에서 벗어나 현을 감쌌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

 

재현이 은주에게 호통쳤다. 은주는 두 팔 벌려 재현의 칼이 현에게 닿을 길을 막아 섰다. 은주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버지! 멈추세요! 현이는 죄가 없어요!"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아느냐! 어서 썩 물러나거라! 오늘 모든 것을 바르게 할 것이다!"

 

재현의 눈에 핏발이 서있었다.

 

 

"용태, 어서 은주를 치워!"

 

 

용태는 파이프를 문 채 천천히 걸었다. 자신을 안으려는 그에게 은주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무자비하게 난도질했다. 얼굴의 살갗이 사정없이 벗겨져 나갔다.

 

 

"회장님! 이무가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어서 이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산 아래에서 경계하고 있던 재현의 한 수행원이 산을 힘겹게 오르며 외쳤다. 용태는 은주를 다시금 안으려 했다. 이번엔 은주도 순순히 안겼다. 용태의품에 안긴 은주가 무너진 현의 등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두 뺨 위로 난 눈물길은 도무지 마를것 같지 않았다.

재현은 무리와 함께 자리를 피했다. 현을 발견한 무가 청년의 연약한 어깨를 안았고 무의 경호원들은 권총을 들고 주위를 살폈다. 재현의 무리는 이미 어둠 속에 숨어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재현은 집에 돌아가 은주를 용서하지 않았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 창고에 은주를 가뒀고 은주의 몸에 이름 모를 질병을 주사했다. 은주의 몸이 달아오르더니 구역질을했고 설사를 했다. 먹었던 것을 모두 몸 밖으로 빼내고 나서야 끝날 것 같지 않던 구역질과 설사가 멈췄다. 탈수 증상이 심해 정신 차리기가 힘들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체온이 올라갔다. 떨리는 몸을 덮을 것을 찾으려 했으나 주위엔 거미줄과 쥐구멍뿐이었다. 콘크리트 바닥이 유난히 싸늘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버지!"

 

은주가 사력을 다해 철문을 두드렸다. 차가운 음성만 되돌아 왔다.

 

"오늘 네가 한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거라! 감히 나의 말에 거역하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오늘 하루 동안 반성하거라! 내가 너에게 내리는 형벌이다."

 

 

은주와 함께 놀기 위해 은주의 집을 찾았던 조카 만복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모든 상황을 바로 옆에서 그리고 뒤에서 목격했다. 은주가 재현의 수행원들에 의해 집으로 끌려오며 애절한 눈빛으로 만복을 바라봤지만 그때 만복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거실에서 지하창고로 끌려가는 은주의 뒤를 따라 만복도 함께 내려갔다. 지하창고의 문이 닫히고 한바탕의 소동이 다소 잠잠해진 뒤 지하창고 문 앞으로 만복이 다가섰다. 은주가 만복을 예상하고 그를 불렀다.

 

 

만복아, 너 거기 있니?”

 

 

만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너 거기 있지? 그치?”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거기 있을 거야. 분명히 그럴 거야. 많이 놀랐을 거야. 마음 진정하고 경찰 아저씨 좀 불러줄 수 있겠니? 너 휴대폰 있잖아. 112만 누르면 돼. 다 괜찮아질 거야.

 

 

만복아?

만복아!!”

 

 

은주는 하염없이 만복의 이름을 불렀지만 만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만복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만복은 그날 오줌을 지렸다.

 

 

-!

 

은주의 휴대폰에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경기도 수원시 해동제철소

 

이름 없는 문자였다. 누군가 에이든이 잡혀간 위치를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이거..”

 

은주가 현에게 방금 도착한 문자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휴대폰을 건넸다. 문자를 본 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일까?”

 

 

그렇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잖아..”

 

 

함정일 수도 있는데.. .. 아무튼 가보자. 무엇이든 이렇게 잠자코 있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그런데 왜 해동제철소일까?”

 

 

글쎄.. 진성그룹 협력업체 중 하나인데..”

 

 

은주와 현은 병원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만복과 차 기사와 함께 다짜고짜 해동제철소로 향했다.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철소에 일꾼들이 없었다. 제철소는 잠에 빠진 것처럼 고요했다. 덩그러니 차 두 대가 세워져 있었다. 어쩌면 송 회장의 흔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은주는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현은 여전히 불안했다. 차 문을 열고 제철소에 발을 막 디뎠을 때 해가 저물었다호흡이 하얗게 응결되었다. 모두 갈라져 한참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송 회장과 에이든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제철소는 생각보다 광활했다. 그때 차 기사가 외쳤다.

 

여기요! 여기!!”

 

 

수 많은 작업장 중 유일하게 용광로가 가동되고 있는 곳에 송 회장의 무리와 에이든이 있었다. 에이든은 노끈으로 포박된 상태로 무릎 꿇고 있었다. 묘하게도 그때와 같은 수였다. 장검을 든 폭력배 둘과 송 회장 그리고 유용태 이사, 모두 넷이었다. 송 회장은 지팡이에 힘겹게 몸을 지탱한 채 에이든 앞에 서 있었다.

 

은주가 찾아 온 것을 발견한 송 회장의 표정이 종잇장 마냥 일그러졌다. 눈빛 만큼은 젊은 맹수의 것이었다. 유 이사는 작업장 한 편에 앉아 파이프를 물고 있었다. 역시 옆에 지팡이가 놓여있다. 은주가 온 것을 발견한 유 이사는 송 회장이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서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웃을 때 백색의 콧수염도 함께 움직였다. 그 날 은주에게 살갗을 뜯겼던 곳들 중 일부가 여전히 패인 채 남아있다. 유 이사는 중절모를 벗어 은주에게 반가움의 표시를 했다. 은주는 그제서야 문자를 보낸 주인공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허리를 굽히진 않았지만 간단한 미소로 정중한 인사를 대신했다.

 

 

또 너냐! 콜록콜록..”

 

노구를 지탱하며 송 회장이 은주에게 성을 냈다. 폭력배들은 송 회장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칼날을 돌렸다. 검이 그때처럼 은주를 향하게 되었다.은주의 호흡이 다시 거칠어지자 현이 은주의 어깨를 지탱하며 속삭였다.

 

 

지지마. 당신은 충분히 강해. 우리가 옆에 있어.”

 

 

현의 말에 어렵게 용기를 낸 은주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 당장 그만두세요!!!”

 

 

송 회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되려 웃었다.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 송 회장의 보잘 것 없는 몸이 이대로 뒤로 넘어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뭐라? 지금 네가 감히 나에게 명령을 한 것이냐!”

 

재현의 눈이 다시 칼날처럼 매서워졌다. 재현을 지키고 선 두 개의 검이 붉은 것처럼 재현의 눈매도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혼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이냐!

안되겠다. 넌 안되겠어.. 쯧쯧.”

 

 

재현의 손짓에 맞춰 폭력배들이 은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현이 두 팔로 은주를 막아서며 소리쳤다.

 

 

국왕 이무의 둘째 아들 이현이다나를 벤다면 내란죄로 너희들은 사형에 처해지게 될 것이다! 어디 한 번 와 보거라!”

 

 

은주를 향해 달려들던 두 명의 하이에나가 걸음을 멈춰 섰다. 그들은 고개를 돌려 재현을 바라보았다.

 

 

걱정 말고 다 죽여버려! 뒤처리는 내가 할 테니까!”

 

재현이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치며 호언장담했다. 하수인들은 다시 칼날의 끝을 은주에게 향하게 했다.

 

그때 유 이사가 검은 코트에 어지럽게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그만.”

 

유 이사가 무사들을 멈춰 세웠다. 재현은 놀라서 용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지금 이게 무슨!”

 

 

이제 그만해라. 재현아. 친구로서 더는 못 봐주겠구나.

 

세계적인 토목건설 그룹을 세워서 국위선양하자던 너의 말에 우리가 함께 한 지도 어언 40년이 다 되어 간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고 우린 국내 시장은물론 해외 시장까지도 빠르게 정복해나갔지.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나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단다. 내 젊음을 바친 진성그룹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지. 허허.. 난 마치 광활한 대륙을 다스렸던 광개토태왕이 된 듯한 느낌이었단다.

 

하지만 16년 전 그 날, 아가씨가 너에게 맞섰던 그 날, 난 너와 내가 함께 있던 그 세계를 처음 의심했다. 우리만이 부국강병의 새 나라를 건국할 수 있다는 믿음에 미친 듯 빠져있었던 우리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지. 경쟁회사들을 닥치는 대로 인수합병하고 우리에게 맞서는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 쳐서 없애버렸던 그 날의 나와 오늘의 너 말이다. 꼬마였던 은주의 이제 그만 멈추란 요청은 참으로 간단하고 명료했지만 어쩌면 그 아이가 맞고 우리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해줬어. 그 생각이 그때까지 우리가 함께 거닐던 피의 제국에서 내가 떠날 수 있게 해주었지. 나는 새로 태어난 두려움에 떨었지만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단다.

 

오늘이 오지 않기를 매일 빌었다. 헌데 역시 오늘이 왔구나. 오늘까지 넌 전혀 변함이 없었구나. 너도 나와 같기를 빌었건만.. 오늘은 나도 내가 가진 힘을 좀 사용해 봐야겠다.

 

너희들은 저 늙고 추한 몸에게 칼을 돌려라!”

 

용태가 재현을 가리키며 폭력배들에게 지시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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