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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게시물ID : sisa_6463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물항아리
추천 : 2
조회수 : 31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1/08 17:30:03
김수영 시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시인은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옹졸한 자신을 자조한다.
김수영 시인의 산문에는 그의 옹졸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시인이 분개하는 조그마한 일, 옹졸한 일상에서부터
우리들의 삶의 태도가 결정된다.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온 것을
조그마한 일이라며 애써 화를 누르며 모른척 하는 사람들은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와 같은 큰 일이 터지면
그런 큰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며 자기 갈 길을 갈 뿐이다.
 

작은 일에 분개했던 김수영 시인은
자신의 시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해학과 옹졸한 감수성으로 똘똘 뭉쳤던 시인이 그립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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