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은재 의원이 검찰청 앞에서 ‘윤석렬(열사) 사수’를 외치며 혈서를 썼다. 그 모습을 보며 나름대로 혈서 전문가로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내가 첫 혈서를 썼을 때가 2009년 용산참사 강경진압을 항의하기 위해 경찰서 길바닥에서 썼던 혈서이다. 그때 ‘엑스트라 굵은 고딕체 3천 포인트’로 전지에 혈서를 썼었다. 그런데 처음 써 보는 혈서라, 글씨를 너무 굵게 써서 전지 한장에 말하고자 하는 문장을 다 담지 못했다. 하여 첫장을 구겨서 버려야 했다.ㅠㅡ 그 때 큰 교훈을 얻었다. 쓸데 없는 피 낭비를 하지 않으려면 미리 혈서 쓸 칸을 확실히 배치해야 한다는 것을. 하이 이후로 2018년 까지 서너 번을 더 썼는데, 그 때는 연필로 밑그림을 그려가서 썼다. 그 와중에 흘리는 피를 낭비하지 않고 전지 안에 담을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어차피 똑같이 흘리는 피, 헌혈보다는 혈서가 비용대비 효과가 좋기에 선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쨋튼 그런 충만한 현장 경험의 혈서 전문가로서 이재은 의원이 쓴 혈서를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던 것이다.
이은재 의원은 ‘가는 엽서체’로 최대한 피를 아껴 쓰려는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정말 결의를 가지고 혈서를 쓰려면 피가 뚝뚝 떨어져서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없다. 하지만 이재은 의원이 쓴 혈서는 그야 말로 한방울의 낭비 없이 한획의 허투름이 없이 ‘간결’하게 쓰여져 있다. 저렇게 쓰려면 손 끝에 작은 구멍을 낸 후에 치약 짜듯이 손가락을 계속 쥐어짜면서 안나오는 피를 조금씩 밀어 낼 때만 가능하다. 저 정도 피는 코를 파다 코구멍 신경을 건들어 한번 흘리는 양보다 결코 많지 않다. 병원가서 당뇨검사하기 위해 손가락 끝을 뚫을 때 나오는 피보다 약간 많을 정도이다.
더군다나 저 피 색깔을 보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거의 물빛깔처럼 핏빛이 묽은 것을 알 수 있다. 평소 실없는 소리를 작작해댔던 이유를 저 물빛깔 같은 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은재는 그간 뻘짓을 하도 많이 해서 오히려 통합당에 부담을 줬던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통합당에서 컷오프 되었다. 하지만, 금뺏지 계속 달고 싶은 욕심에 ‘한국경제당’을 창당하고, 자기가 ‘대표’직을 맡은 후, 스스로에게 ‘비례대표 1번’을 줬다. 그런데 인지도 없는 신생정당의 지지율이 안 오르다보니, 이재은은 대검찰청 앞에서 쌩쇼를 해야 했던 것이다.
시도는 좋았다. 아니 시도만 좋았다. 피라도 좀 많이 흘려 필체를 좀 굵게 만들거나, 아니면 평소 핏빛이라도 좀 붉었다면 저 혈서를 보고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격려 표를 많이 던졌을 뗀데, 피를 아끼기 위해 필체를 최대한 가늘게 쓰는 것이 드러나고, 피 빛도 똥색에 가깝다 보니 오히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듯 싶다.
하여간 한국경제당 폭망하고, 할 일 없이 한가할 때, 나한테 오면 제대로 된 혈서의 기술을 무료로 사사해 줄 것을 약속한다.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데, 저렇게 역사 속에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내 맴이 아파서 선의를 베풀지 않을 수 없다.
흔히 ‘특유의 생명력’을 강조하기 위해 '개같이 질기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이은재 의원의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에 그말 말고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