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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x를 구하시오.
게시물ID : readers_115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낯선상대
추천 : 4
조회수 : 23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26 09:34:05
모든 것이 백색으로 물들어 있는 세계에서 
어둠만을 한데로 긁어모아 탄생한 것 같은 흑색이 말했다.

"x를 구하시오."

흑색이 x를 가리켰다. 흑색의 손가락 끝에는 x가 교실 안에서 쭈그려 앉아있었다.
위협적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톱니바퀴. x를 쿡쿡 찌르는 막대기. 불안정한 바닥과 천장.
자신과 다른 x를 배척하며 자기들끼리 뭉쳐있는 숫자들.

"꼭 구해야 합니까?"

내가 되물었다.
따돌림당하는 게 얼핏 힘들어 보일 수도 있지만, x는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부러 더 숫자한테 엉겨붙었다. 숫자를 업어주거나 심지어 다른 숫자들 위에 억지로 올라타기까지 했다.
힘겨울 때면 여러 명의 자신을 만들어 숫자를 되려 배척하는 경우도 있었다.
건강한 상태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지.
이런 걸 취향을 존중하는 배려라고 하는 거다.



"x를 구하시오." 

흑색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취향 문제가 아니니 꼭 구해야 한다는 소리다.
나는 이유를 요구했다.

"왜 구해야 합니까?"

나는 x가 누군지 모른다. 
이 아이와 관계를 맺고 있는 y가 있는지, 자신의 자식으로 여기는 X가 있는지 난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오히려 괜히 그런 거에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다가는 쓸데없이 오지랖 떤다는 소리를 듣거나 의심부터 사기 마련이지.
그러니 내게는 저런 아이를 구해줘야 할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왜 내 귀중한 시간과 정신력을 소모해가며 알지도 못하고, 도와준다고 해서 이득 볼 것도 없는 x를 구해줘야 하는가?

"(1점)"

"장난하나."



"x를 구하시오."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하는 흑색의 모습이 짜증이 났다. 그냥 그게 좋을 것 같다며 요구하는 거다.
그래, 잘하면 다른 사람한테서 점수를 좀 딸 수는 있겠지.
하지만 정작 내가 등을 돌린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을 것도 아니다. 
구하는 사람보다 무시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더 많을걸.
누구나 속으로는 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는지?
남에게 손을 뻗기 위해선 지금 당장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놓아야 한다.
지금 날 위해 쓰기도 벅찬 손으로 남을 위해 쓰라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까지 잃을 각오를 하면서?



"x를 구하시오." 

"왜죠?"

"x를 구하시오."

"......."

"x를 구하시오."

.......

"x를 구하시오."

"썩을."

가끔 가다가는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를 멈출 수 있다는 것도 적당한 동기가 된다.

나는 x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성격 네거티브한 두 녀석이 빙빙 돌아가는 톱니바퀴 옆에서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길래 둘을 그 안으로 던져넣었다. 
입으로만 고생하던 녀석들은 실제로 고생을 하고 나자 성격이 포지티브해졌다.
작대기를 가지고 서로한테 휘둘러 대는 숫자들이 있길래 싸잡아 한곳으로 모아놨다.
손에 들고 있던 게 없어지자 서로 자기가 더 잘났다고 콧대 높이던 것들이 한없이 작아졌다.
그리고 당황해하는 x를 데리고 바닥 밑바닥까지 갔다가, 천장을 뚫고 갔다가 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x의 정신들을 하나로 모았다.

기나긴 고생 끝에 x를 괴롭히던 것들을 모조리 한쪽으로 치우고, 난장판 속에서 x를 따로 분리해냈다.
혼돈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x는 그제야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전 누구죠?"

"이미 그 답을 찾은 아이들은 숫자가 됐다. 네가 아직 x라는 건 그 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고 있단 소리겠지."

그래서 나는 친절히 한 방향을 가리켰다. x가 막 빠져나온 곳이었다.

"저곳에서의 기억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네 것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너는 네가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미 할 만큼 했다. 
x가 그 난장판 속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옆에서 조언하거나 격려해줄 수는 있지만, 마지막에 선택을 내리는 건 결국 x다.
이제는 그저 x가 자신의 정체를 깨닫고 행복해지길 바랄 뿐.



다행히도 x는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찾았다.
다른 숫자와 비교해 특출나게 크거나 작은 일은 없었다. 그냥 평범한 숫자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x에겐 충분했다.
나는 x를 구해냈다.


나는 그대로 흑색에게로 돌아갔다.

"(1점)" 

참 의미 없는 점수였다. 정말 돌아오는 것 없는 시간 낭비였다.
나는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렸다.
숫자가 된 x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어지럽게 흑색으로 물들었던 세상은 조금 더 백색에 가까웠다.
아주 시간 낭비였던 건 아니었을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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