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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자들이 허구한 날 사기친다는 증거 중 하나
게시물ID : history_248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짐조심레이너
추천 : 4
조회수 : 861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6/01/10 17:54:44
다음의 내용은 오유에 올려진 김상태란 자의 대고조선론 1 - 박원순에게 고함의 일부분 입니다.
 전문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24766&s_no=24766&pag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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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돈은 이병도와 이기백을 이어 주류 고대사학계의 핵심계보를 이은 인물이다. 그는 100년 식민사학의 모든 검은 흐름이 총화된 인물이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라깡식으로 말하자면 노태돈이야말로 식민사학이라는 무의식의 소파를 한곳으로 집중시킨 소파의 단추라 할 수 있다.
첫째, 그는 그 유명한 삼국사기 불신론’(노태돈 본인은 삼국사기 수정론이라 둘러댄다.)과 한국 고대국가의 부체제 이론를 확고히 한 장본인이다. 이것은 삼국시대 초기 이전까지 한국사는 백지나 다름없으며 그때까지 한국에는 발전된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한 미개 족속이었다는 것으로, 다른 말로 하면 일제가 한국사의 혈맥에 박아 놓은 철심과 같은 것이다. 이에 대한 온갖 이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노태돈이란 소파의 단추를 중심으로 한 주류 고대사학계의 권력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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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초기기록 신뢰도는 비정상적인 왕의 수명, 유물검증과 역사서 교차검증 등으로 인한 연구 결과 때문에 그런 것이기 한국사의 축소 왜곡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원문대로 신뢰 받을 수 없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지만 그 중 비교적 최근 조명된 삼국사기 기록 중 하나인 백제가 1C 온조왕 때 마한을 복속하였고...... 일본서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요즘 정설로 추정되고 있는 근초고왕 때의 마한 완전 병합설이 최근 발굴 된 유물로 인해 이 통설이 흔들리고 있다는 기사를 링크하겠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20&aid=0002896993

 기사 자체가 발굴을 한 고고학자들의 해석만 일방적으로 반영된 측면이 강하게 있고, 몇 개 유물만으로 마한이 오랫동안 완전한 독립 세력인지는 확정할 수 없으나 이는 마한이 5C 까지도 독자적인 정치세력 혹은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입니다. 한 마디로 이 유물에 대해서도 학자 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특정 사학자들의 음모나 편항된 관점이 아닌 역사학계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주류적 관점일 뿐입니다. 그 근거도 충분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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