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1학년의 겨울. 아직 풋풋함이
남아있을 시기의 이야기이다.
혹여 이야기를 보고 나 너 누군지 앎!! 이라고
외칠 분들이 있겠지만 그냥 모른척 해주시길..
대학교 1학년 2학기에 나는 2n학점이라는 미친
학점을 들으며 정말 좀비같이 학교를 다녔다.
시간표도 개 거지같이 짜서 9시에 첫 수업이
저녁 7시에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환상적인
날들이 몇일 껴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미친 게 아닐까 한다.
아침 9시 1교시가 끝나고 좀비같은 걸음으로
건물을 옮겨 다음 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전형적인 호구안을 가진 나는
매우 많는 도르미와 예스미들에게 (도를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의 준말) 좋은 먹이감이
되어왔기에 학교는 시발 이런사람들 출입좀
막아봐라!!! 하며 뒤를 돌았는데 한 남학생이
나한테 초콜렛을 건넸다. 뻬레로로셰를.
"초콜렛 드실래요?"
나는 냉큼 초콜렛을 받아들고
"저 초콜렛 좋아해요!"
라고 하고 가던길을 갔다.
그 당시 너무 피곤해서 뇌 필터 버전 2.0이 고장난
이유도 있겠지만 아직 머릿속이 꽃밭이었어서
그런지 나는 진심으로
'저 사람 초콜렛이 싫은데 누군가한테 받아서 어쩔줄 모르다가 나한테 준건가 보네!'
라고 생각했다. 뇌가 꽃으로 가득 찼었나보다.
다음 수업이 조별 토론수업이었어서 나는
초콜렛을 조원들한테 하나씩 나눠줬고
나 포함 5명의 조원들은 페레로로쉐를 씹어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공포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화요일 목요일 1교시 전공이 끝나고
2교시 토론수업으로 가는길목에서 나는 매번
그 남자에게 잡혀 페레로로쉐를 받았다.
두번째 초콜렛을 받는 순간부터 첫번째 초콜렛이
받아서는 안될 저주받은 성물같은 것이라는걸
깨달았다. 거절해야겠다!! 라는 마음을 먹었지만
문제는.... 그 남자분은....
정말 아무말도 아무말도 아무말도 하지않고
초콜렛만 건넸다 ㅠㅠㅠ 정말 아무말도 안함 ㅇㅇ
매주 매번 같은 곳에서 같은 초콜렛을 말없이
건네는건 진짜 엄청난 공포였다.
나는 화요일 목요일이 아닐때도 누군가 등을
두드리면 그사람들이 도르미나 예스미이기를
간절히 바랬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다리를 연마했다. 1교시가 끝나면
총알과 같은 속도로 뛰어 나가며 프리덤을 외쳤다.
토론 조 아이들은 초콜렛 공급이 끝나자
나를 제물로 받쳐 초콜렛 공물을 얻어내려 애썼지만
나의 발은 나날히 빨라져갔다.
그리고 실험삼아 천천히 걸어봤을때도
잡히지 않게된 어느날 나는 안심하고 천천히
도도하게 건물을 걸어나가며 진정한 프리덤을
외쳤고.... 등을 잡혔다.
나는 남자를 본 순간 빠른 걸음으로 건물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이미 말을 하자고 잡힌 몸이었다
'이미 잡힌몸 시크하고 도도하게 거절하자!'
그런 마음으로 도도하게 건물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그날따라 강풍이 어찌나 부는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사실 열렸으면 단련된 다리로 또
도망갔었을텐데..... 그 순간 머릿속에는 온갖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지나갔다.
'인바디 체크만
했다하면 온몸근력이 바닥이라 운동 안하면
30대에 죽을거라며 pt를 꼬셔대던 많은 선생님들..
거짓이 아니었구나 사기꾼이라고 욕해서 미안해요...
나는 이렇게 갑니다... '
남자가 손수 문을 열어줄때까지 유리문을 못열고
끙끙거리던 나는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머릿속으로 뭐라고 말할지 무수히도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남은건 10년간
우리나라가 머릿속에 축적해 놓은 성교육 레파토리
뿐이었다. 패닉에 빠진 나는 거의 이런 대화를 했다.
-저 기억나세요?
안나요!
-저 저번학기 같이 수업....
안나요!!
-초콜렛 드리는거
싫어요!!
-마지막으로 이거 받아주세요
싫어요!! 안돼요!!
그리고 그 분은 끝까지 초콜렛을 주고 갔다....
친구들하고 말할때는 웃겼는데 쓰고보니 안웃기네요 ㅠㅠ
호감을 표시하실때는 말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