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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의당을 포기할 수는 없다
게시물ID : sisa_11556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람언덕
추천 : 4/36
조회수 : 1539회
댓글수 : 22개
등록시간 : 2020/04/20 07: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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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총선 과정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들어서였을까.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이 있었던 16일, 심상정 정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당 대표)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무거웠던 자리, 분위기는 더욱 엄숙해졌다.

21대 총선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던 정의당이었다. 오랜 세월 독자세력화를 꿈꿔온 정의당으로서는 이번이 전국 정당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겼을 터였다. 지난해 말 '4+1협의체' 주도로 이뤄진 선거법 개정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희망은 현실이 될 가능성은 커졌다.

정치권 안팎으로부터 바뀐 선거법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따랐다. 정의당은 숙원이던 원내교섭단체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며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명분이냐 실리냐를 놓고 저울질을 하던 더불어민주당까지 위성정당 창당 쪽으로 기울면서 정의당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각계로부터 위성정당은 선거법 개정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꼼수이자 편법이라는 비판이 솟구쳤지만, 현실론 앞에선 무력한 주장이었다.

승자독식인 소선거구제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왔던 정의당이었다. 지난한 협상의 과정 끝에 선거법 개정을 이끌어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은 10%에 육박하는 정당 지지율을 받았지만, 전체 의석 300석 중 2%에 해당하는 6석(지역구 1석, 비례대표 5석)을 얻는데 그쳤다. 바뀐 선거법의 수혜자로 점쳐졌던 정의당은 되레 피해자가 됐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 비례대표 선정 과정이 비상식적이었다. 이 부분은 지금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을만큼 납득하기 어렵다. 정의당은 비례대표 경선 득표에서 1~4위를 차지한 배진교, 신장식, 박창진, 양경규를 4, 6, 8, 10번으로 배치했다. 대신 득표율 후순위인 류호정과 장혜영을 1번과 2번에 꽃아넣었다.

노동분야와 여성, 청년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한 조치로 보이지만 이 결과를 납득할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이 석연치않은 과정이 정의당을 옭아매는 올무가 돼버렸다. 류호정은 대리롤 논란에 휩싸이며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켰고, 독립영화감독 출신인 장혜영은 조국 사태와 관련해 범진보진영과 동떨어진 인식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차라리 대기업 갑질논란의 피해자 박창진과 평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한 김종철(비례대표 20번)을 앞순위에 배치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했다면 보다 감동적이고 공감받는 공천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에 입각한 얘기지만 비례대표 잡음이 선거운동기간 내내 논란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혀 틀린 주장은 아니라고 본다.

조국 사태에 대한 인식, 심 대표의 탄핵 발언 등도 정의당에 대한 악재로 작용했다. 특히 선거기간 중 나온 비례대표 후보들의 조국정국 관련 기자회견은 당지도부의 개입이 없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민주당과의 연대 대신 독자생존의 길을 찾기 위한 정의당 지도부의 전략적 선택으로 보이나 이는 결과적으로 오판이었다. 

그렇다면 심 대표를 위시한 지도부는 왜 이런 스탠스를 취했던 걸까. 지극히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조국 선긋기는 중도층 공략을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홀로서기로 작정한 이상 정의당은 통합당이 아닌 민주당과 경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전통적 정의당 지지자 외에 중도-진보층을 공략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비례대표 논란에 이은 정의당의 조국 때리기는 정의당 지지층과 정의당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던 민주당 지지층까지 돌아서게 만드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진보진영의 정의당 디스는 총선이 끝난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정의당이 민주당과 부분적 연대라도 하길 바랬다. 적어도 인천 연수을의 이정미나 창원 성산의 여영국 중 한 사람이 민주당 측과 단일화를 했더라면 지금 드리워져 있는 정의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상당 부분 상쇄됐을 것이다. 연수을에선 민주당 정일영이 극적으로 당선되지 않았다면 정의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지금보 더욱 나빠졌을 것이다. (하마터면 프로 막말러 민경욱이 당선될 뻔 했으니까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겠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모두 6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지역구에서는 1석을 얻는데 그쳤지만 정당지지율은 지난 20대 총선 당시의 7.2%보다 높은 9.67%를 기록했다. 민주당과의 경쟁과 총선 과정에서의 여러 잡음들을 고려하면 대단히 의미있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정의당 지도부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과의 전략적 공생대신 독자노선을 선택했다. 중도층의 표를 공력하기 위해 민주당과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는 범진보진영의 공공의 적인 통합당이 사라지거나, 그 세가 약할 때라야 가능한 전략이다. 애시당초 통합당 심판 선거였던 이번 총선에서는 먹히기 어려운 전략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는 보수였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정치적 이념과 노선, 정책 등을 보면 보수정당의 면모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진보정당으로 각인되고 진보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통합당 때문이다. 수구·냉전적 인식과 행태를 보이고 있는 통합당이 보수의 지위를 선점해 오면서 그 대척점에 있던 민주당에게 진보정당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치적 색채가 정통 보수에 가깝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민주노동당이 창당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정치는 누가 더 보수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스탠스가 나뉘어졌을 뿐 진보정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주노동당이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으로 분화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거대 보수양당인 한국당과 민주당이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사이 진보정당은 현실성 떨어지는 과격한 주장이나 펴는 이단아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극강의 지역주의가 뿌리내린 양당체제의 풍토에서 진보정치가 자생력을 갖기는 애시당초 대단히 난망한 일이었다. 더욱이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진보정당의 의회 진입을 가로막으면서 저변 확대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같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경쟁력있는 대안정당으로서의 입지를다높이는지기 위해 힘껏 경주해왔다.  

실제 민주당과 통합당 양당체제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정의당이 정치-사회 개혁을 위해 기여한 바는 결코 적지 않다. 단순 1위제의 비민주성을 극복하고 표의 대표성을 높이는 결선투표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정당이 바로 정의당이다.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소선거제도의 대안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도 정의당이었다. 

남북 관계, 재벌 개혁, 비정규직 보호, 복지 확대, 원전 건설 반대 등 각종 사회 현안에 있어서도 정의당은 분명한 색채를 드러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치·사회·경제적 이슈 뿐만이 아니라 노동과 인권, 복지와 환경, 여성과 평화 등 진보적 의제와 관련해서도 정의당은 일관되고 꾸준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받은 정당 지지율은 이같은 노력에 대한 보상이자 앞으로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일 터다. 진보정치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이 건강하고 합리적인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정의당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실망했고, 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정의당을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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