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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메스 14화(완결)
게시물ID : readers_115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떠돌이참견꾼
추천 : 2
조회수 : 17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1/27 23:11:41

"너희들은 저 늙고 추한 몸에게 칼을 돌려라!"

 

용태가 재현을 가리키며 폭력배들에게 지시했다. 검을 든 폭력배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다가 끝내 용태의 지시대로 칼날을 재현에게로 돌렸다. 재현은 화가 나서 용태에게 지팡이를 집어 던졌다. 그러나 지팡이는 얼마 가지 않아 힘 없이 땅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작업장에 그 맥없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반복해서 울렸다.

 

 

"그만 포기해라 재현아. 우리의 시대는 끝났다."

 

 

그 때 작업장 앞문과 뒷문에 권총을 든 사내 세 명과 여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폭력배들과 재현 그리고 용태를 조준했다. 앞문쪽에서 또 한 명의 사내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배지를 손에 들고 작업장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배지에는 '대한 중앙정보국'이라는 명칭이 쓰여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중정 정보부장 이태환입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이곳 상황을 정리하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승아야 의원님 모셔라."

 

 

태환의 지시에 따라 여자 중정요원 손승아가 은주를 부축해서 작업장 밖으로 인도했다. , 만복 그리고 차 기사는 은주를 뒤따랐다. 뒤이어 다수의 경찰들이 현장에 진입했고 폭력배들과 용태에 수갑을 채웠다. 재현은 소리를 지르며 완강히 버텼으나 역시 경찰들에 의해 제압 당했다. 경찰들은 용태, 재현 그리고 폭력배들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덕분입니다."

 

태환이 에이든을 포박하고 있던 노끈을 풀어주며 말했다.

 

 

"That's OK. 물건은 가져오셨나요?"

 

 

"물론입니다."

 

태환이 에이든에게 카메라를 건넸다. 카메라 주변엔 커버가 씌워져 있었는데 붉은색 뱀가죽으로 된 것이었다.

 

 

"Shit! 어디 갔었니!I missed you!"

 

에이든은 건네받은 카메라에 자신의 볼을 부비대며 주체할 수 없는 반가움을 나타냈다. 태환은 에이든의 이러한 모습이 잘 이해는 안됐지만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 마쳤다는 안도감에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진수야! 기자님 주사 놔드려라."

 

태환의 지시에 따라 진수라는 이름의 남자 중정요원은 정체 모를 의사 한 명과 함께 에이든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에이든은 손동작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진수와 의사를 제지했다.

 

 

"Wait! 포착은 타이밍이 생명이에요. 나 지금 이 순간 담아야 해요."

 

에이든이 자신이 납치되어 있었던 작업장, 경찰에게 잡혀가는 재현의 무리 그리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현과 은주를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사진을 모두 찍고 나서야 에이든은 의사에게 자신의 오른 팔목을 내주었다. 의사는 주사를 꺼내 들어 에이든의 팔목에 찔러 넣었다.

 

 

"Ouch!!!"

 

 

태환은 진수에게서 중정마크가 새겨진 태블릿 PC를 건네 받고는 에이든에게 그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 속 해동제철소 지도 위에서 깜빡 거리고 있던 초록색 점이 몇 초 뒤 사라졌다.

 

"위치추적장치는 성공적으로 제거되었습니다. 기자님께서는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약속대로 요원들과 경찰들은 제가 확실히 입 단속 시키겠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그 어떤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보도할 수 없을 겁니다."

 

나노로봇이었다. 신체 곳곳을 돌아다니며 콜레스테롤 지방으로 인해 막힌 혈관들을 뚫어내는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었는데 이번 작전을 위해 위치추적용으로 특별 제작된 장치였다. 혈액 속의 철분을 동력으로 삼아 활발히 돌아다녔을 이 장치는 방금 주입된 특수약물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집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태환이 정중하게 허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에이든에게 물었다. 에이든은 손사레를 쳤다.

 

"No, thanks. 난 혼자 다니는 거 좋아해요. Bye."

 

 

모두 떠난 자리, 불 꺼진 작업장에서 에이든은 승리를 자축하며 탭댄스를췄다. 경쾌한 구두소리가 작업장을 크게 울렸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서야 에이든의 마음도 조금 진정되었다. 심장이 뛰는 것이 납치되어 긴장해서인지 춤을 춰서인지 본인도 헷갈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에이든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두 손을 불끈 쥐며 작업장 천장을 향해 포효했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오래된 사진 하나를 꺼냈다. 반으로 찢어진 적이 있었는지 테이프로 중간에 찢어졌던 부분을 이어 붙인 흔적이 남아있다. 또 물에 젖은 적이 있었는지 눅눅한 질감에 누렇게 색이 변색되기까지 했다.

 

사진은 학교 정문 앞에서 찍은 것이었는데 남자가 꽃다발을 손에 든 손으로 옆에 있는 여자의 목을 감고 다른 한손으로는 사진사를 향해 브이자를 표시하고 있었다. 남자의 교복은 밀가루로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여자의 교복은 멀쩡했다. 교문엔 '경진중 23기 졸업식'이라 쓰여져 있는 플랜카드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두 남녀 주위에 부모님과 사진을 찍거나 친구와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있었다모두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남자는 호탕하게 활짝 웃고 있었고 여자는 수줍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사방에 빛 하나 찾아보기 힘든 제철소였지만 그는 그곳에서 그 사진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 보았다. 사진 속 여성에게 입맞춤 한 후 그는 다시 그 사진을 자신의 안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에이든은 그래봤자 자기 얘기지만 특종기자 납치사건을 포함해 총 7편의 진보 장기집권계획 탐사보도 시리즈를 일주일 동안 모두 자신의 블로그에 업로드 했다. 일주일 간 에이든에 의해 보도된 기사들은 시기적,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나라의 권력을 독점하려던 진보세력에 관한 것으로 사실상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일련의 사건들은 제1 야당 민족자유당의 수장인 임성철의 이름을 따 임성철의 난이라 불리게 되었다.

 

임성철의 난은 2014 4 11일 의원총선거에서 그 위력을 증명했다. 난의 주체였던 민자당과 자민당은 사상 최소의 의석을 확보했다. 특히 소규모 정당이었던 자민당은 고작 5개의 자리만을 확보하는 데 그쳐 사실상 의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식물정당이 되었다.

 

반면에 작용에 의한 반작용 효과로 중도보수 정당이자 절대여당으로 군림해왔던 대한독립당은 광복 직후 10년 동안 누렸었던 황금기를 다시 누리게 되었다. 대한독립당은 의회의 무려 2/3에 달하는 자리를 확보해 사실상 그 어떤 정당도 제재를 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손에 넣게되었다. 민자당, 자민당과 같은 진보 정당이지만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당의 이념으로 하는 그들과는 달리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당의 이념으로 하는 소규모 정당 사회민주당도 의석을 비교적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이로써 최대 정당 대독당의 당수인 이수민은 총리직을 이어가게 되었다.

 

 

2014 4 11, 민자당의 당대표였던 임성철은 임성철의 난사건에 대한 대국민사과와 함께 자신의 계파에 속하는 의원들과 함께 국회의원직에서 은퇴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장을 나서며 자신의 지난 날들을 떠올렸다.

 

그는 대학 교양수업 한국 현대정치사의 이해를 들으며 정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정치임을 깨달았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자신과 부모와 자식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정치관련 글들은 모조리 섭렵했다. 연구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학교 공부는 뒷전에 두고 누구도 시키지 않은 논문을 써서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하러 다녔다. 그러던 그가 그와 같은 이념적 성향을 지니고 있던 한 교수를 만났고 그 교수의 도움으로 현실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치판은 녹록하지 않았다. 광복 후 단 한 번도 정권을 놓친적 없는 대독당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제체제와 군비증강으로 부국강병의 대한민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성철의 신념은 아주 굳건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는 국민들이 야속했다. 그래서 그는그와 뜻을 같이 하는 재계 인사들을 끌어들였다. 그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바닥부터 개혁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차근히 추진해나갔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2000년엔 마침내 민자당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2014년엔 목전에 자신의 꿈을 두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저 한 명의 패배자일 뿐이었다.

 

그는 억울해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끝내 최고의 자리를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세상에 분노했다. 그는 양손에 주먹을 불끈 거머쥐었다.

 

 

2014 4 12, 성철은 민자당의 2014 의원총선거 뒤풀이 행사의 여파로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폭탄주를 너무 많이 마신 바람에 속이 쓰렸고 세상이 핑핑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중앙당 사무실에서 밤을 지샌 그는 화장실에서 변기를 붙잡고 어제 먹은 것을 게워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아 허무했다. 국회의원 임성철과 함께 인간 임성철도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의 생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패배자로서 평생 조롱이나 받다가 죽고 말겠지.’

 

성철은 고개를 숙였다. 그때 화장실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성철아.”

 

수민이었다.

 

 

그는 변기의 물을 내리고 휴지로 입을 닦고 물로 입을 깨끗이 헹구고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점검했다. 흐트러진 머리모양을 최대한 정갈하게 했다. 비뚤어진 넥타이를 바르게했다. 어깨를 펴고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 지었다.

 

정말 엉망이군..’

 

부질 없는 짓이었다. 마음이 이미 엉망으로 망가졌는데 남에게 보이는 모습이 멀쩡할 리 없었다. 성철은 체념하고 문을 열고 나가 수민을 맞았다. 거울을 보며 연습했던 것처럼 바른 자세로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지었다.

 

 

상심이 크지?”

 

수민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성철을 안았다.

 

 

, 이 녀석은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수민과는 대학 교양수업 한국 현대정치사의 이해에서 처음 만났다. 경영학과였던 성철에겐 그것이 교양수업이었지만 정치외교학과였던 수민에게는 그것이 전공수업이었다. 매일 아침 성철과 같은 버스를 타고 성철과 함께 교실에 들어가곤 했던 수민이었다. 묶은 머리에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은 수민의 아이콘이었다예쁘장한 얼굴에 착한 마음씨로 유명했던 그녀였지만 이상하게도 성철은 그녀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껴본 일이 없다. 성철은 왜 그랬을까 잠시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친구들 중에서도 수민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놈은 몇 없었던 것 같다.

 

하긴 이 녀석 친목활동에 애써서 참가하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연애에 관심도 없었고. 다들 그냥 좋은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었겠지 뭐.’

 

 

아니, 아무렇지 않아. 그나저나 바쁠 텐데 웬일이야?”

 

 

이 녀석은 총리가 되었는데 난 이제 백수가 되었구나.. 인생 참 웃기군.’

 

 

수민과 성철은 가벼운 인사말을 주고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접견 테이블엔 성철의 보좌관이 마지막으로 성철을 위해 차려놓은 두 잔의 에스프레소가 놓여져 있었다.

 

 

실은 난 상심이 크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나 놀리는 거냐? 총리씩이나 되는 녀석이..”

 

    꿈의 메스 설정상 대한민국은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에, 행정부수장은 대통령이 아닌 총리대신입니다. 총리는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데 대부분 제1당의 당대표가 총리로 선출됩니다.

 

모르고 본심을 말해버렸다.. 젠장.. 에이! 뭐 아무렴 어때. 다끝났는데.’

 

수민과 독대하는 동안 성철의 마음 속은 복잡했으나 표정은 여전히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정치 생활하고 나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남은 것은 표정을 숨기는 것, 마음을 숨기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성철은 자조했다.

 

 

지난 30, 너와 함께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 쭉 난 너를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정당은 다르지만 우리가 함께라면 이 나라는 더욱 빛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어.”

 

 

더욱 빛나? 난 한 순간도 이 나라가 빛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래, 광복을 맞이했을 때 그 순간만큼은 빛났다고 생각한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공통된 의견이지. 하지만 그 후론 없었어. 적어도 내게는.”

 

 

넌 너무 자신의 신념이 강해.”

 

 

그래,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쫓겨 나고 만 거겠지. 어디 한 번 잘해봐.”

 

성철은 비아냥댔다. 그는 수민과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대화와 토론으로 너의 생각을 충분히 실현시킬 수 있었어. 난 단 한 번도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들의 의견을 묵살한 적 없다.

 

하지만 넌 너의 신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권력을 독점하려 했어. 심지어재계 인사들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등 무리수까지 뒀지.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한 거니?

 

 

대화와 토론?”

 

 

그래, 그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하는 방법이야.”

 

 

민주주의? 난 민주주의를 믿지 않아. 도대체 한심한 어중이떠중이들 말까지 왜 내가 일일이 듣고 반론해야 하는 거지? 또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이나 한 건가? 정말 비효율적인 제도야. 이상적 이념에 불과한 것이라고.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너희같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만 없다면 민주주의는 충분히 그 의도대로 잘 흘러갈 수 있어.”

 

 

퍽이나! 앞으로 나 같은 사람들이 과연 한 명도 없을까? 아니!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

 

 

그래 계속 나오겠지. 하지만 결국 너흰 지고 말 거야. 적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말이야.

 

광복 후 좌우 정치 이념의 갈등이 극심했던 시절을 알고 있지? 그때 참 어렵게 그러나 성공적으로 독립세력이 한 데 뭉칠 수 있었지. 대화와 토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어. 같은 정치인들끼리 또 국민들과 함께 끊임없이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았지.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탄생하고 자리잡았던 것이 대독당이었어. 서로의 얘기를 듣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모임! 대화와 토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

 

자기 이념의 우수성만 고집하고 다른 집단들과 전혀 타협하지 않았던 정치 세력들은 결국 모두 자연도태 되었어. 국민들의 손으로! 물론 투표 과정은 정당했고. 우리의 노력을 알아줬던 거지.

 

, 대한민국은 절대 흔들리지 않아결국 너도 이렇게 무너졌잖아.

 

대화와 토론은 부정할 수 없는 최선의 방법이야. 옳은 의견은 내 것이 아니라도 더 좋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받아 들이겠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기 시작하면 결국 옳지 않은 의견은 배척될 수 밖에 없을테니까.

 

나는 이것이 민주주의가 옳은 이유고 또 강한 이유라고 생각해. 대화와 토론이 곧 민주주의니까. 이미 이곳엔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해있어. 누구도 이 완벽한 논리를 깨부술 수 없어. 과거에 그랬고 지금 그런 것처럼.”

 

 

네가 말하는 그 선진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도 정치 얘기 할때 내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야. 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는 애초에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거라고.

 

정치인은 정치를 하고 상인은 물건을 팔고 주부는 가정을 다스려야 하는 거야.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설거지 한다고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 봐. 애꿎은 그릇만 여러 개 깨지고 말겠지, .”

 

 

정치는 모두의 일이야. 너도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것 아니니? 모두의 일은 모두가 함께 정할 때 가장 합리적인 거야.

 

자본주의를 생각해 봐. 자본주의는 경제의 민주주의야. 돈을 쓰는 것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지.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사거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사람들에게 주어질 때 가장 효율적인 거야.

물론 그 과정은 공정해야겠지.”

 

 

난 하루 종일 정치를 공부하고 정치판에 참여하고 있어. 그 누구도 나보다 정치를 잘할 수는 없어. 정치인보다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소리야.

정치는 전문적인 분야야. 나조차 아직 읽어야 하고 또 읽고 싶은 책들이 태산 같이 쌓여있지. 평생을 노력해왔는데도 불구하고 공부가 끝이 없지.

그런데도 내가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또 그들을 설득하는 쓸 데 없는 일을 벌여야 하니? 그냥 날 믿어주면 안 되는 거야?”

 

 

정치인만 참여할 수 있는 정치는 실용적이지 못해. 정치는 생활이야.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정치는 생활의 문제들을 제대로 포착해낼 수 없을 거야.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낼 수 없는 정치는 무용지물인 거 너도 알잖아? 그것이야 말로 쓸모 없는 거라고.”

 

 

나처럼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러 다니면 돼. 내가 그것을 듣고 필요한 것만 골라 시행하면 돼.”

 

 

그건 불가능해.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 정치를 시행하는 권력이 일부 계층에게만 집중된다면 결국 그 계층에 의한, 그 계층만을 위한 정치가 행해질 거야. 네가 아무리 국민을 위하는 사명감이 있다 해도 소용없어. 이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체계의 문제야. 고인 물은 썩게 돼.”

 

 

그래, 네 말이 백 번 옳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은 긴급상황이야. 얼마 전 독립대 의대 최인후 박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임상시험 허가도 안 받고 80대 노인 여성에게 독단적으로 인공해마 이식해서 난리 났던 것 알고 있지? 치매환자인 그녀의 병세가 놀랍도록 호전된 것을 수상하게 여긴 한 의사가 제보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지.

 

한 마디로, 인공해마 같은 고도의 기술이 성공한 거야. 두뇌기관마저 인공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게 되었다고. 과학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그에 따라 머잖아 의학혁명이 일어날 것이 예고되고 있어. 사람이 스스로를 능동적으로 진화시킬 수 있게 됨에 따라 의료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거야.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기억하고 있지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두 번의 시기였어. 가장 잔혹했던 두 번의 시기이기도 했지. 농업혁명 때 농업을 먼저 개발하고 시행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정복했어. 산업혁명 때 기계라는 것을 먼저 개발하고 활용한 국가들은 그렇지 못한 국가들을 정복했지.

 

의학혁명이 일어나고 난 뒤엔 이미 늦을 거야. 산업혁명 시기에도 여전히 농업국가였던 조선이 보다 일찍 산업화된 일본에 의해 정복당했던 것처럼 말이야. 생과 사가 달린 무한경쟁의 시대가 또 한 번 열리게 될 거라고! 이 시기엔 누구보다도 빠르게 발전하고 적응하는 것이 중요해.

 

민주주의 정치제도 특성상 무언가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엔 사실상 국민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해. 국민의 과반수가 새로운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적응해야 한다는 소리야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쉽지도 않을 거고.”

 

 

고정관념이야. 민주주의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에 국민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진 않아. 합리적 의견의 경우 국민들에 의해 정당히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신속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채택할 수 있어. 물론 국회의원들이 내린 모든 선택들은 추후 국민들에 의해 견제되겠지.

 

한 사람이 통치하는 사회는 물론 그 어떤 제도의 사회보다도 일사분란하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

 

하지만 모든 사람이 통치하는 사회는 한 사람이 통치하는 사회보다 더 옳은 선택을 할 확률이 높아. 대화와 토론으로 잘못된 의견들이 자연스럽게 걸러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야.

 

옳음은 신속함, 강력함 보다 중요시 되어야 할 가치야. 옳지 않은 결정은 아무리 신속하고 강력해도 소용없는 거야. 되려 인류의 재앙이 되고 말지. 역시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

 

 

이러다 해 질 때까지 너랑 싸우고 있어야겠다. 오늘은 그만 헤어지자.”

 

그래 이래서 내가 수민이와 멀어지게 됐지. 우린 의견이 너무도 다르니까.’

 

성철은 수민과 함께 얘기한 것을 후회했다.

 

 

성철이는 왜 자기와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매번 나와의 자리를 피할까? 진심을 다해서 날이 새도록 얘기한다면 정답을 찾아낼 수 있을 텐데.’

 

수민은 성철과의 시간이 끝나버린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성철은 국회의원 사퇴 후 모처럼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날은 집 마당의 화단을 가꿨고 또 어떤 날은 아내와 영화를 보러 나갔다. 집 주변 개천의 시민공원에 산책하러 나가기도 했고 챙겨보는 TV드라마도 생겼다.

 

헌데 아주 편안한 생활만은 아니었다. 은퇴 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족과의 다툼이 잦아졌다. 성철은 가족들에게 요구했고 가족들은 자꾸만 엇나갔다. 성철은 가족들 조차도 내 뜻을 따라주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답답하고 서운했다. 창피하지만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어쨌든 언제나처럼 평범한 하루였다. 아내는 운동을 하러 나가고 자식들은 독서실에 공부하러 갔기 때문에 그 혼자 집에 남아있었다. 확 트인 창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비췄고 성철은 TV앞 소파에 잉여롭게 누워 있었다. 성철은 틀어 놓았던 에어컨 바람이 추워서 에어컨을 다시 끄기 위해 끙끙대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띠리링-

 

 

TV에선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국왕 이무와 이수민 총리대신의 양방향 외교전략이 결국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러가 일본에 대항해 영토분쟁 공조체제를 구축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이 주효했습니다.

…”

 

 

미국 최고의 제약업체 에르겐이 개발한 치매환자를 위한 치료제가 임상시험에서도 그 효능과 안정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밝혀져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약으로 국내에서는 왕립대 의대 줄기세포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이현 왕자가 이와 유사한 연구 중에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항간에는 미허가 임상시험으로 물의를 빚어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최인후 씨를 특별사면하고 그의 의료면허를 다시 회복시켜 그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

 

 

“’임성철의 난의 영향으로 이수민 총리가 소집했던 각 분야 민영화 특별소위원회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민영화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입장이 아직까지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그 실효성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

 

 

뉴스를 듣고 있던 성철이 혀를 끌끌 찼다. 그는 그새 또 더워졌다고 느껴 에어컨을 다시 켰다.

 

 

그 시간 수민은 한-- 3자 회담을 위해 베이징에 머물고 있었다. 중국 역시 무더위가 한창 기승이었다. 수민은 곧 있을 마지막 회담 일정을 앞두고 한 고급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창 밖으로 부채질을 하며 걸어가는 사람, 러닝셔츠만 입어 겨드랑이 털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사람 등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수민 옆에 있던 청와대 비서실장 윤증현이 그녀에게 물었다.

 

 

각하. 민영화 특별소위가 아직까지도 난항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일부 국민들은 총리가 중대한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고안한 묘책이 아니었냐고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습니다.

 

의료민영화 특별소위는 그 중에서도 으뜸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향후 영향력이 지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기술 특허들이 등장하면서 국민들이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의료산업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잃고 마는 것이 아니냐면서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국내 의료업계의 신기술 개발 실적도 좋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총리님께서 제시했던 의료민영화 특별소위를 통한 의료민영화 문제 대타협 방안에 대해 점점 공감하지 못하고있습니다. 덩달아 총리님의 지지도도 계속 하락 중입니다.

 

이젠 결단을 내리심이 어떠신지요?”

 

 

의료민영화를 통해 의료산업에 투자되는 자본량을 늘려 의료기술 수준을 단기적으로 급속도로 높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한다면 결국 일반 국민들은 발전한 의료기술의 혜택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말 것 입니다. 저는 웬만하면 다수를 위한 선택을 하고싶습니다.

 

제가 특별소위를 소집했던 건 대화와 토론을 통한 최선의 의사결정을 위함이었죠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의료민영화 지지도 의료민영화 반대도 아닌 의료민영화라면 어떻게 추진해야 옳은 것인지 또 의료민영화가 아니라면 더 좋은 방안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런 생산적인 의사결정 말입니다.

하지만 어째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성과가 지지부진해서 사실 저도 답답하긴 매한가지 입니다.

 

저도 국민들과 생각이 같습니다. 이젠 제가 결단을 내려야겠지요.

 

내일 한국에 돌아가는 대로 의료민영화를 주제로 한 끝장토론을 준비해주십시오. 참석자들은 의료산업 최고의 전문가들이어야 할 겁니다. 제가 직접 회의를 주관해서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내겠습니다. 결론이 나지 않는 한 대화와 토론에 끝은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참 기쁠 것 같네요 ^^
유머 사이트엔 어울리지 않았던 글이었던 것 같아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ㅠ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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